대선 여론조사 조작 적발 파장…원인과 대책은
입력 2021.09.03 15:01
수정 2021.09.03 15:02
응답 유도·피조사자 연령 왜곡 입력
'콜' 살리려다보니…"예고된 파국"
'역선택 방지 조항'도 같은 맥락 문제
면접원 대신 ARS 등 보완장치 필요
한 여론조사업체가 대선 여론조사 과정에서 전화면접원들이 특정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는 등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가 적발돼 과태료 3000만 원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 업체는 후보단일화 여론조사 등을 맡은 경력이 있는 업체라 정치권에서도 파장이 일고 있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G리서치가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내년 대선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후보자·정당 지지도에 관해 특정 응답을 유도하거나 피조사자의 연령을 다르게 입력하는 등의 위반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3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 관계자들은 "예고된 파국"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대선캠프 관계자는 "전화면접원들은 통화 완료 할당을 채워야 소정의 급여를 받기 때문에 전화가 연결되면 어떻게든 설문을 완료하려 안달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피조사자 연령 왜곡'이 일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60대 이상'의 샘플이 다 찼으면 통화가 연결됐더라도 응답자가 60대 이상이면 "설문 대상이 아니다"라고 통보하고 끊어야 하는데, 애써 연결됐고 응답자도 적극적인데 전화를 끊기가 아깝다보니 다른 연령대로 체크하고 계속 설문을 이어가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업체 차원으로 확장되면 현재 국민의힘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역선택 방지 조항'의 문제가 된다. '역선택 방지 조항'이 생기면 업체나 전화면접원 입장에서는 상대 정당을 지지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그 시점에서 설문을 중단하고 통화를 종료해야 한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여론조사업체 입장에서는 아까운 샘플 하나가 날아가고 결국 조사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며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한사코 '역선택은 이론상으로만 가능할 뿐 실제로는 문제가 안된다'고 한목소리로 말하는데에는 이러한 자신들 업계의 이해관계도 걸려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적발된 여론조사 왜곡·조작 사태는 여론조사를 당내 경선에 활용하는 후진적인 정치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근본적으로 근절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 전직 의원은 "미국·영국·독일 등 어느 나라에서도 당내 경선에 여론조사를 사용하는 나라가 없다"면서도 "우리나라의 경우, 자발적 의사가 아니라 조직 동원으로 입당하는 당원들이 대부분이다보니 당원투표로 후보를 뽑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여론조사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치문화를 단시간 내에 바꿀 수는 없다. 따라서 여론조사를 어쩔 수 없이 당내 경선의 수단으로 활용한다고 해도 여러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그동안 응답률이 높다는 이유로 당내 경선 여론조사에서는 전화면접원 방식을 선호했지만, 결국 인간이 결과 왜곡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게 이번 사태로 드러났다"며 "향후 경선이나 단일화 여론조사에서는 전화면접원 조사 대신 ARS를 활용하는 등 보완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