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재판, 檢 ‘무리한 수사’ 논란 속 합병 당시 ‘기업가치’ 두고 공방
입력 2021.03.11 18:54
수정 2021.03.11 19:06
檢, 제일모직 ‘고평가’ 삼성물산 ‘저평가’…주주에 손해 끼쳐
변호인 “국민연금, 고평가 제일모직 왜 매수?…논리 안 맞아”
발표자료 두고 기싸움 ‘팽팽’…공판서 치열한 법정 공방 예고
‘삼성그룹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두 번째 재판에서 검찰과 삼성 양측이 의혹 관련 상반된 주장을 내놓으며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검찰은 이 부회장 측이 경영권 승계 작업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다고 주장한 반면, 변호인단은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는 11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 관계자들의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은 지난해 10월 첫 번째 공판준비기일 이후 5개월 만에 재개됐다. 당시 두 번째 기일이 올 1월로 예정됐었으나, 연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재확산과 법원 정기 인사 등을 이유로 연기됐다.
◆檢 “‘프로젝트G’ 문건 통해 조직적으로 경영권 승계작업”
검찰은 PT 자료를 통해 공소사실의 요지를 설명하고 근거를 제시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이 이 부회장 승계계획이 담긴 일명 ‘프로젝트G’라는 문건을 작성했으며 제일모직(구 에버랜드)과 구 삼성물산 간 합병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다고 봤다.
검찰 측은 “2015년 추진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조직적으로 계획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이라며 “이 부회장과 그를 보좌하는 미래전략실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벌인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당시 이 부회장 측이 제일모직 주가가 고평가되고 삼성물산 주가가 저평가된 시기를 이용해 합병을 강행했다고 봤다. 일부러 합병 비율을 승계에 유리한 1대 0.35로 정하고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주주가치 증대 기회 상실’이라는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과 미전실 임원들이 거짓 정보를 유포하는 한편 중요 정보는 은폐하고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로비 등 불법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삼성전자에 안전한 지배축이 없었던 이 부회장은 추가 비용 없이 삼성물산 최대주주 지위 획득한 뒤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며 “결국 삼성물산 주주들의 부를 이 부회장에게 이전하기 위한 작업이 2012년부터 시작됐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전 부회장은 삼성생명 분할과 지분 매각 관련 거래를 협의하기 위해 워런 버핏을 직접 만났으나 관련 내용을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며 “그런데도 증권신고서 등에서는 해당 지분 관련된 투자위험을 설명하면서 상품 처분계획이 없다고 거짓 기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변호인 측은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특히 제일모직 주가가 고평가돼 있고, 삼성물산 주가가 저평가돼 있었다는 검찰 공소사실 전제에서부터 모순이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변호인 “소환조사 800회에도 영장 ‘기각’…검찰 무리한 수사”
변호인은 “제일모직 주가가 상승한 것은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바이오산업 가치 등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며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 시가총액이 50조원인데, 제일 모직이 가진 지분가치만 해도 20조원이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검찰 주장처럼 제일모직이 고평가돼서 급락할 우려가 있었다면 기관 투자자들의 순매도해 손실 최소화에 나섰을 것”이라며 “그런데 국민연금은 합병 발표 전 제일모직 주식을 4600억원 가량 순매수했다”고 말했다. 만약 제일모직이 고평가됐다면 기관에서 사들일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삼성물산 저평가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변호인은 “건설경기 불황으로 당시 대형건설사들은 모두 순자산가치보다 시가총액이 낮았고 오히려 삼성물산은 다른 건설사들과 비교하면 고평가된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식을 3350억원 가량 순매도했다는 점도 근거로 내세웠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4조5000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검찰 측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통상 분식회계는 자산이 없는 데도 부풀리거나 채무가 발생했는데 감추는 것처럼 경제적 실질에 반하는 것”이라며 “이런 일이 밝혀지면 주가가 폭락하거나 검찰 수사로 회사 자체가 망하는 결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합병 결정에 사업성 고려나 안정화를 위한 목적이 충분하고, 지배구조 안정과 경영권 강화를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려는 합법적인 경영활동이었다는 것이 변호인 측 주장이다.
변호인은 “검찰 압수수색만 수십 차례에 계열사 임직원 소환조사만 400회 이상, 전체 소환조사 횟수만 800회 이상으로 사실상 검찰이 전력 다한 수사임에도 두 차례 구속영장이 다 기각됐다”며 “이제 대등한 당사자의 입장에서 검찰 수사의 무리함과 피고인들의 무고함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날 양측은 PT 발표 자료를 두고도 여러 차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향후 치열한 법정공방을 예고했다.
검찰은 변호인단 발표 자료에 사용한 언론 기사와 공시 등을 계속해서 문제 삼았다. 정식 증거로 채택되지 않은 자료를 인용해 설명할 경우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변호인단은 의견 개진의 한 방식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재판부는 변호인 측에 최대한 해당 부분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중재했다.
이날 재판에는 이 부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 이영호 삼성물산 대표,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 등 11명이 피고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피고인들은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공판준비기일은 재판의 쟁점과 피고인 측의 입장을 정리하는 절차로, 피고인들이 직접 출석할 의무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