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백지에 먼저 도장'…초유의 법관 탄핵안 '졸속' 논란
입력 2021.02.01 14:52
수정 2021.02.01 15:20
내용없이 '백지' 상태로 일단 도장부터 받아
초유의 법관 탄핵소추안 '졸속' 처리 지적
당내 비토 기류 있지만…친문 강경파 눈치
이탄희 측 "재판에 나온 내용으로 설득"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탄핵소추안이 구체적인 내용도 나오기 전 백지상태로 의원들의 도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정에 따라 도장을 먼저 받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헌정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소추를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추진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데일리안의 취재를 종합하면, 탄핵안 발의 예정인 이탄희 의원을 비롯해 박주민, 김용민 의원 등은 지난달 29일 탄핵소추안 동의를 얻기 위해 민주당 소속 의원실을 돌며 '도장'을 받았다. 구체적인 탄핵안이 나오기도 전에 도장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법안 내용 없이 도장을 먼저 받는 것이 법 위반이거나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국회 가결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결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중차대한 사안을 내용도 없이 도장부터 찍어달라는 것은 상당히 예의에 어긋난 일"이라고 했다.
탄핵안을 대표 발의한 이 의원 측은 형식상의 문제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도장을 먼저 받은 것이) 핵심은 아니지 않느냐"며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법사위는 법사위원대로 탄핵을 준비했고 발의는 발의대로 준비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법관 탄핵을 놓고 불편한 기류가 적지 않다. 탄핵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게 골자다. 임 부장판사의 임기가 이달 28일로 '소의 이익'이 크지 않고, 민생에 집중해야할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법부 길들이기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민주당 지도부도 당초 법관 탄핵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친문 강경파' 의원들의 요구를 외면하지 못하면서, '허용'한다는 다소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하게 됐다. 연초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언급했다가 친문 지지층으로부터 공격을 당했던 이낙연 대표가 내부 반발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은 1일 발의 후 2일 국회 본회의 보고를 거쳐 오는 4일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범여권이 180석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가결이 유력시된다. 이 의원이 1일 대표 발의한 탄핵소추안에 서명한 의원은 161명에 달한다.
이 의원은 이날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 정의당 류호정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과 함께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헌법행위자는 헌법재판을 받아야 한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판사도 예외가 아니다"며 "정당과 정파의 구분을 넘어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책무에 함께 해주시길 호소드린다"고 가결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