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이 필요하다"…비건, '트럼프 유산' 싱가포르 합의 강조
입력 2020.12.11 03:00
수정 2020.12.10 22:09
"작은 거래로는 70년 적대관계 청산 불가"
'트럼프식 빅딜' 필요성 거듭 강조
"8차 당대회 전후로 외교협상 재개되길"
'고별 방한' 중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마지막 대북 메시지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유산인 '싱가포르 합의'를 언급하며 북한의 대화 복귀를 촉구했다.
비건 부장관은 10일 아산정책연구원 강연에서 "합의 내용을 진전시키는 데는 실패했다"면서도 "싱가포르 정상합의의 잠재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내년 1월 제8차 노동당 당 대회를 전후로 외교적 협상을 재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공유한 한반도를 위한 비전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우리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건 부장관은 대북협상의 목적이 미래 세대에게 보다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번영한 한반도를 물려주는 데 있었다며 "이런 야망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회담 이후 공동성명에 담겼다"고 강조했다.
북미 정상은 지난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 △평화체제 보장 △북미 관계 정상화 추진 △6·25전쟁 전사자 유해송환 등에 합의한 바 있다.
비건 부장관은 공동성명과 관련해 "북한과 미국 간 비핵화 완수에 대한 최초의 정상급 약속"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작은 거래나 점진주의로 70년 적대 관계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관점을 반영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해온 '탑다운' 방식의 '빅딜' 협상이 비현실적이라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비건 부장관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우리(북미) 관계의 '근본적 재구성'이라는 보다 큰 관점을 제시한다"며 "이를 위해선 양측 모두의 큰 거래·큰 발걸음·큰 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대북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북측이 장기적인 안보에 대해 깊은 우려를 거듭 표했다며 북측 우려를 덜기 위한 조치로 △종전선언 △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 △외교 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을 경우 관련 조치들을 추진할 수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北, 지난 2년간 많은 기회 낭비"
北 인권에 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아
비건 부장관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비협조적 접근으로 무산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우리가 뭔가 하기 전에 북한이 모든 것을 먼저 하기를 기대하진 않는다"면서도 "우리는 처음부터 북한이 비핵화에 진전을 보일 수 있다면 안전 보장과 제재 완화도 향상시킬 수 있는 주제라는 점을 명확히 해왔다"고 강조했다.
비건 부장관은 "안타깝게도 북한의 카운터파트(협상 상대)는 지난 2년간 너무 많은 기회를 낭비했다"며 "북한은 대화의 기회를 움켜쥐는 대신 협상 장애물을 찾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의 노력은 끝나지 않았고 그래서는 안 된다"며 "외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과 미국이 진지한 외교적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 지금은 양국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비건 부장관은 북한 인권에 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북한에서 억류됐다 식물인간 상태로 송환된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언급하며 "살아있었다면 이번 토요일에 스물 여섯 번째 생일을 맞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건 부장관은 "수만 명의 한국인과 재미교포들은 북한에 남겨진 친척들을 다시 볼 날을 기다리며 고통스럽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며 "일본에서는 요코타 시게루가 (북한에 납치된) 딸 메구미와 재회하기를 수십 년간 기다리다 올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싱가포르 합의를 진전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인권과 같은 가장 민감한 문제도 북한과 논의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