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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디그라운드㊱] 빅 포니의 음악, 그리고 이야기를 엮은 ‘뮤직 앤 리얼리티’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0.12.03 02:03
수정 2020.12.02 19:03

영화 '뮤직 앤 리얼리티', 12월 10일 개봉

ⓒBig Phony

싱어송라이터 빅 포니(바비 최)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맨하탄의 School of Performing Arts and Music & Art high school에 다니면서 음악이 아닌 비주얼 아트 전공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독학으로 접했던 음악을 졸업할 때 즈음에야 전공으로 택하면서 본격적으로 그의 음악 인생이 시작됐다. 정확히는 파산 전문 로펌에 근무하다가 음악을 위해 2005년 회사를 그만두고, 첫 앨범을 발매하게 됐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빅 포니는 지난 2011년 한국으로 와서 앨범을 내고 벌써 10년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여행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고 이 곳에 정착했다. 그리고 다양한 음악적 활동을 해왔고 지난달 30일에는 ‘뮤직 앤 리얼리티’ 앨범을 발매했다. 이 앨범은 이달 10일 개봉하는 동명의 영화의 수록곡들이기도 하다.


- 미국에서 활동하던 당시는 어땠나요?


당시 자라오면서 다른 아시안 아메리칸 뮤지션은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음악을 업으로 삼는 것은 생각도 못해봤던 일이었습니다. 제가 음악을 계속하기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린 선택이었습니다. 그 후로 5년 정도는 꿈을 좇는 선택이 후회되지 않을 만큼, 느리지만 꾸준히 결실을 내고 있었죠.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지만 살면서 한번쯤은 그토록 큰 위험도 감수했다는 점이 만족스럽기도 했고요(웃음).


- 한국으로 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10년 말, 2011년 초에 서울을 방문하게 됐어요. 처음으로 ‘안전하다’는 기분이 들었고 더 알고 싶은 연결 고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뉴욕에서 자라면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편안함이었습니다. 게다가 미국에 살 때는 몰랐었던 훌륭한 인디 뮤직 씬도 있었습니다. 안정된 기분을 주는 서울에서 그런 새로운 감정들에 대한 곡을 쓰기 위해서 직감을 따라 서울로 이사했죠. 2011년 6월 1일 인천에 도착했고 그때 가진 것은 가방 하나, 기타 그리고 수중에 100만원이 다였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9년 반을 한국에서 살고 있네요. 하하.


-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음악에도 영향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제 음악은 항상 슬프고 우울한 느낌이 있는데, 한국에 온 뒤로도 크게 바뀌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이 훨씬 안전하다고 느껴지기는 했지만 역시 미국에서처럼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기분을 떨쳐내지는 못했죠. 제 음악은 전반적으로 외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어렵듯이 제 음악 또한 제 깊은 곳에서 기원하기 때문에 그런 감정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 하네요.


- 빅포니라는 이름의 의미도 궁금합니다.


빅 포니라는 이름은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자주 언급되는 비유에서 유래했습니다.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가 경멸하는 대상을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저는 매일 스스로가 남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고자 하고, 항상 어떤 말을 하든지 사려 깊게 생각하자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제가 말띠 해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빼면 조랑말이나 말에 특별한 호감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하하.


- 지금의 목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유년기의 대부분을 벽이 아주 얇은 뉴욕의 아파트에 살았고 그 시절에 노래를 배웠죠. (노래 소리 때문에) 옆집 이웃들은 대부분 불만이 많았고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수밖에는 없었어요. 이런 창법을 원래부터 원했던 것은 절대 아니고, 주어진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습니다(웃음).


ⓒ(주)보더리스필름

- 내달 개봉하는 영화 ‘뮤직 앤 리얼리티’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하게도 그동안 제가 만든 음악과 제 목소리가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 쓰였습니다. 저는 언제나 음악과 영상의 관계성을 좋아했고, 단순히 청각적인 형태를 떠나 음악과 영상이 함께 어우러지는 형식이야 말로 사람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죠. 대본을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동안 작곡했던 곡들을 나름의 순서대로 나열해보게 되었고 그게 전체적인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음악들을 들으면서 느껴지는 것들을 시각화해서 글로 쓰면서 ‘뮤직 앤 리얼리티’가 탄생한 거죠. 조금은 자전적이면서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약간의 허구도 가미되었습니다.


- 자전적인 이야기라면, 미국과 한국에서 겪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도 포함되는 건가요?


영화 속 주인공은 한국인으로서 받아들여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언어적인 면에서나 문화적인 면이 번역되고 옮겨지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완전히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음악을 통해 그는 사람들과의 진정한 연결에 가까워지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오직 시간과 인내만이 답을 줄 수 있고 하루아침에 결과를 얻어내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단계들에 도달하는 것은 오래 걸리기도 했지만 매우 보람 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많은 교포분들도 우리가 때때로 많은 한국인들로부터 불공평한 평가를 받는 어떤 부담감이 있다는 것에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외국인들과 비교해 동일한 교육을 받더라도 한국어를 더 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런 압박감이 있습니다. 때로는 외국인이 한국말을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칭찬을 받거나 어떤 득을 보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외국인으로서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따돌림 당했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한국 사회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는 이러한 경험을 영화 속 곳곳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는 어떨까요. 스스로 정리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저 스스로 온전히 미국인이거나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도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사실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아주 많다고 생각 합니다. 저와 같은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혼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지금처럼 훌륭한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하게 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웃음). 그리고 언젠가는 굉장히 비슷한 불안감을 경험할지 모르는 제 아들을 위해서도 그 사실을 믿고, 밀고 나가야겠죠.


- 음악과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연결이 되나요?


앞서 이야기 했듯이 시나리오가 쓰이기 전에 음악이 이미 선택 되었습니다. 그래서 음악이 줄거리를 구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노래 가사가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극중 인물의 상황 설명이나 대사 없이도 가사를 통해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야기를 전부 설명하지 않고 흘러가도록 한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누구든 음악을 귀 기울여 듣게 된다면 영화의 내용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기존의 음악들을 영화 안에 입히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나요?


영화에 사용된 음악들은 극중 인물들의 감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입니다. 특히 주인공인 바비의 경우 가사나 노래의 분위기 자체가 스크린 속의 그의 모습들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음악을 선택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 기존에 발표하지 않았던 ‘그래서 말인데’ ‘ We’ll Go For A Walk‘ ’Time to Ourselves‘는 이번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곡인가요?


사실 이 곡들은 새로 쓴 곡은 아니고 데모곡으로 갖고 있던 곡들이에요. 영화의 분위기와 잘 맞고, 필요하다고 생각해 영화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제 카탈로그에서 이 음악들을 골라낸 이유는 이 곡들이 세련되게 정리되어있고, 믹싱과 마스터링이 잘 되어있지 않더라도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들이라도 영화의 스토리와 연결점이 전혀 없다면 영화 속에 수록되지도 않겠죠.


- 이번 영화에서 직접 연출과 각본, 음악감독, 주연으로 연기까지 했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시작부터 많은 도움들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들은 절대 제가 혼자서 만들어낸 게 아니죠. 공동 연출인 Steve Lee 감독의 도움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한국 스태프들과 공유할 수 있었어요. 절대로 저 혼자서는 할 수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을 일입니다. 글을 쓰거나 연기를 하는 것도, 편집하는 과정도 같았습니다. 특히 모든 연기자들, Todd와 임화영 배우는 많은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죠. 그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스태프들 모두들 정말 많은 도움을 줬어요.


ⓒ(주)보더리스필름

- 임화영 씨가 여주인공을 맡았습니다. 호흡은 어땠나요?


임화영 씨를 캐스팅하게 된 것은 단순히 그녀가 오디션에서 뿐만 아니라 그녀의 프로페셔널함이 우리 모두를 감동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뮤지션이 아니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캐스팅하는 것이 염려되지 않았습니다. 함께 일하게 되어서 너무나 큰 행운이었고, 임화영 씨가 싱어송라이터였다고 생각하게 할 만큼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는 어떨까요.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여주인공인 이나의 캐릭터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스태프들이 이나의 이야기가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해서 그 캐릭터에 대한 많은 부분을 들어내게 되었습니다. 결국 편집하는 동안 원래 생각했던 깊이를 가진 캐릭터로 되살리기 위해 너무나도 힘든 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았다고는 생각하지만 굉장히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 한국에서 활동한지도 올해로 10년차가 됩니다.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면 어떤가요?


한국에서의 많은 경험을 생각해보면 인내와 끈기야 말로 모든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거의 6년 전에 구상했었고,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년 전에 한국 촬영을 마쳤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루어낸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긴 여정동안 견뎌낼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작품을 극장에 상영하게 되는 기회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이 기회를 당연히 여기지 않고요.


- 영화를 보는, 그 안의 음악을 듣는 관객들에게 관전 포인트를 설명하자면요?


이 영화의 이야기는 한국계 미국인 싱어송라이터의 가사집과 경험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어떤 아이디어들은 이국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이 미스터리한 아티스트의 마음과 창작의 과정에 대한 흥미를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빅포니의 음악적 방향성도 궁금합니다.


저는 안티-팝 음악을 한다는 점에서 남몰래 자부심을 갖곤 했습니다.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들으면서 ‘훅’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대부분의 곡에서 그런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니까요. 비틀즈의 팝음악들을 사랑하지만 누군가 이미 여행했던 길을 따라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곡을 쓰거나 노래를 녹음할 당시에 어떤 무드였는지, 그리고 그들의 예술작품 속에 그 순간을 담아내거나 그런 감정들을 보여주는데 성공했는지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제 작품들에서도 모든 감정들을 통해서 곡을 쓰고 창작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적어도 이런 창작활동들에 진심을 다할 때 결국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다시 매니지먼트나 레이블에 속해서 활동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제 음악을 알리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지난 5년간 저는 영화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고, 이제는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고 공연을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 최소 3장의 앨범을 채울만한 만족스러운 곡들을 써왔고 이제는 그 곡들을 음반에 담고 싶습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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