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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교훈 잊었나…10년 전으로 돌아간 생보사 현금보따리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입력 2020.08.14 06:00
수정 2020.08.13 10:30

보유 현금·예치금 올해만 6.3조 줄어…2010년 6월 이후 최소

현금 확보 애 먹던 2008년 기억…코로나19 사태에 재현 우려

국내 생명보험사 현금 및 예치금 보유량 추이.ⓒ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국내 생명보험사들의 현금 자산이 올해 들어서만 6조원 넘게 줄며 10여년 만에 최소 규모까지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저금리 기조가 심화하고 새로운 규제 시행까지 다가오는 가운데 실적 악화에 직면하게 되자, 현금을 마냥 들고 있기 보다는 투자에 나선 결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뒤늦게 현금을 늘리느라 애를 먹었던 생보사들이 이 같은 교훈을 잊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또 다시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국내 24개 생보사들이 보유한 현금 및 예치금은 총 10조4005억원으로 지난해 말(16조7454억원)보다 38.9%(6조3449억원)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액수는 2010년 6월 말(10조2513억원) 이후 최소 기록이다.


주요 빅3 생보사들의 추이를 살펴보면 우선 삼성생명의 현금 및 예치금이 조사 대상 기간 동안 4조8576억원에서 1조1770억원으로 75.8%(3조6806억원)나 감소했다. 한화생명 역시 8456억원에서 3865억원으로, 교보생명도 1조8106억원에서 1조3533억원으로 각각 54.3%(4591억원)와 25.3%(4573억원)씩 현금 및 예치금이 줄었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의 전체 자산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크게 축소됐다. 생보업계의 총 자산 대비 현금 및 예치금 비율은 같은 기간 1.8%에서 1.1%로 낮아졌다. 삼성생명은 1.7%에서 0.4%로, 한화생명은 0.7%에서 0.3%로, 교보생명은 1.7%에서 1.2%로 일제히 하강 곡선을 그렸다.


이처럼 요즘 들어 생보사들이 현금성 자산을 줄이고 나선 가장 큰 배경에는 수익성 개선이 자리하고 있다. 현금은 금융사가 운용하는 자산 형태 중 안전성이 가장 높은 대신, 그 만큼 운용 수익률이 낮다. 결국 현금 보유가 많을수록 보험사로서는 투자 수익 창출 기회를 잃게 되는 셈이다. 생보사들의 지난해 전체 당기순이익이 3조1140억원으로 전년(4조325억원) 대비 22.8%(9185억원)나 감소하며 극도의 실적 부진에 빠져 있는 현실은 생보업계의 이런 고민을 키우는 대목이다.


특히 코로나19가 갑작스레 몰고 온 제로금리 시대는 생보사들로 하여금 더욱 적극적인 자산운용에 나서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시장 금리가 떨어질수록 통상 투자 수익률도 함께 낮아지기 때문이다. 한은은 올해 3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 확대되자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하는 이른바 빅 컷을 단행했다. 이어 지난 5월에도 0.25%포인트의 추가 인하가 단행되면서 한은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치를 다시 한 번 경신했다.


아울러 도입이 다가오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도 생보사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요소다. 2023년 IFRS17이 적용되면 현재 원가 기준인 보험사의 부채 평가는 시가 기준으로 바뀐다. 저금리 상태에서도 고금리로 판매된 상품은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이자가 많은데 IFRS17은 이 차이를 모두 부채로 계산한다. 이 때문에 생보사들은 이미 IFRS17 관련 적립금을 쌓고 있는데, 이는 가뜩이나 영업이 어려운 와중 회사 성적에 추가적인 악재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사가 유동성이 높은 현금 자산을 확보해야 하는 까닭은 가입자들의 보험금 지급 요청에 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금융 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질 때 현금을 쌓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생보업계는 2008년 전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금융위기를 전후해 현금 보유를 눈에 띄게 늘렸다. 생보사들의 현금 및 예치금은 2007년 말에만 해도 7조8584억원으로 10조원을 한참 밑돌았다. 그러다 2008년 말 12조1822억원으로 빠르게 현금 보유량을 늘렸다. 금융위기로 경영 상 어려움에 직면한 와중에도 위기 대응을 위해 힘겹게 현금을 쌓아야 했다.


이 때문에 최근 생보사들의 현금 축소를 둘러싸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보란 비판이 제기된다. 코로나19 여파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어서다. 생보사들이 과도하게 현금 보유량을 줄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갑작스런 계약 해지율 상승 시 유동성 수요가 증가할 수 있으므로 보험사는 이에 대비한 현금 보유 전략이 필요하다"며 "코로나19 장기화로 금융시장의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라도 보험사들의 현금 보유 비율 적정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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