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할 말 하려는' 김무성, 득인가 실인가
입력 2016.08.04 08:33
수정 2016.08.04 08:41
현 정권과 각 세운 이회창·정동영 낙선
전략적 자세 취한 노무현·박근혜 당선
최근 전남 민생 투어로 본격적인 대권 행보를 시작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현재 권력인 박근혜 대통령에 '할말 하는' 모양새다. 대표 재임 시절 그는 청와대와 맞섰다 다시 돌아오곤 했지만 앞으로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김 전 대표는 지난 1일 오전 진도 팽목항을 찾아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고 이어 해남과 강진, 보성 등 전라남도 일대를 돌았다. 3일에는 광주 5.18 국립묘지를 방문했고 청년들과 타운홀 미팅을 가지기도 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평소 보이지 않았던 턱수염이 덥수룩하고 편안한 복장 차림의 모습을 하며 권위적인 이미지를 벗으려 했다.
과거에도 대선을 앞둔 주자들은 '국민 속으로'라는 기치로 민생탐방이나 강연 정치 등 나름대로의 방식을 앞세워 대권 행보를 알린 바 있다. 야권의 유력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벌써부터 히말라야 방문에 이어 독도를 찾았고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을 했던 고 김관홍 잠수사의 유족을 만나 위로하며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그렇기에 김 전 대표의 이번 행보도 대선을 1년 여 앞두고 본격 레이스를 위한 몸풀기로 비춰진다. 그 첫번째 행선지를 호남으로 정한 것은 새누리당의 불모지인 호남의 민심부터 잡고 가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대권 행보를 펼치던 김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이 사드 배치와 관련한 민심 청취 차원에서 4일 오전 대구·경북(TK) 지역 의원들과 만나기로 한 것을 두고서다. 그는 3일 오전 광주 5.18 국립묘지 방문 이후 기자들과 만나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통령께서 특정 지역의 의원들을 만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이 TK 의원들과) 만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8.9 전당대회를 앞두고 박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TK 지역 의원들을 만난다면 '친박계 결집'등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지적에 청와대는 즉각 불쾌함을 드러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국정 현안에 대한 민심을 청취하기 위함일 뿐 전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반박했다. 특히 청와대 내부에서는 김 전 대표가 의도적으로 '대통령 때리기'를 하고 있고, 박 대통령의 국정 행위를 전대 선거용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차례 청와대와 맞선 김 전 대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날 오후 전남대 인근 '광주 청년 아카이브 센터'에서 청년들과 타운홀 미팅을 열고 "권력은 독점할수록 작아지고, 국민은 반발한다. 권력은 나눌수록 커지기 때문에 이제는 제왕적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면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전 대표는 "지금은 대통령을 뽑는 게 아니라 왕을 뽑는다. 진 쪽에는 아무 것도 돌아오는 게 없기 때문에 현 정권이 망해야 기회가 온다고 생각하고 매사에 반대한다"며 "선거에 진 정당에도 권력을 나눠주고, 여야 간 협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헌은 일단 대통령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으로 가고, 그 이후에 4년 중임제, 내각제 등의 방식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표는 당 대표 재임 시절이었던 2014년 10월, 중국 방문 도중 개헌론을 한 차례 언급했으나 박 대통령 거부감을 드러냈고, 그러자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꾼 바 있다. 이후에는 개헌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약 2년 만에 공개적인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개헌에 대해 언급 했다는 것은 다분히 대선을 겨냥한 행동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권력과 불편한 대선 주자, 득인가 실인가?
김 전 대표가 대선을 앞두고 현재 권력과 거리를 두는 모습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과거 대부분의 대통령은 정권 말기 극심한 레임덕을 경험했고 여권 차기 주자들은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를 강조하며 지지를 얻으려 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결과는 엇갈렸다. 15대 대선을 앞두고 여권의 이회창 후보는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김 전 대통령은 국가적 혼란을 이유로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유보시켰고 화가 난 이 후보는 김 전 대통령과 완전히 척졌다. 결국 여권에서는 이인제 후보가 출마했고 보수표가 분산되며 승리는 김 후보에게 넘어 갔다.
17대 대선도 이와 비슷한 구조였다. 여권의 정동영 후보는 당시 인기가 바닥까지 추락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완전한 차별화를 하려 했고 친노 세력과 대립했다. 그 결과는 530여만 표 차 패배였다. 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이 정도의 표 차는 없었다.
반면 정권재창출에 성공했던 노 전 대통령과 현 박 대통령을 보면 대선 후보 당시 대통령과 적당한 거리는 유지하되 완전한 차별화는 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등을 지기 보다 끌어안겠다는 전략을 택해 성공했다.
박 대통령 또한 17대 대선 경선 당시 치열하게 다투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전략적 스탠스를 유지했다. 과도한 거리두기는 영남 지역과 보수 진영의 표 분산을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결국 박 대통령은 불리하던 초반 판세를 뒤엎고 대권을 잡을 수 있었다.
이런 역사에 비춰볼 때 김 전 대표의 최근 행보는 내년 대선에서 어떤 결과를 불러올 지 관심이 모아진다.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김 전 대표의 행동이 시기적으로 조금 이르다고 평가했다. 현재 권력과 일찍 등을 져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김 전 대표는 3일 발언을 떠나서 이틀 전 팽목항에 갔을 때부터 현 정권 각을 세우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대표직을 내려 놓은 이상 현 정부와 각을 세워야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현재권력이 미래권력을 만들 수는 없어도 특정 대상을 안 되게는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김 전 대표의 전략이 좋다고 볼 수 없다"면선도 "문제는 김 전 대표가 이미 현 정권과 너무 많이 등을 졌다는 것이다. 다시 돌이키기 힘들다. 계속 이 스탠스를 유지해 존재감을 과시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도 "역대 대선 정국을 봐도 여권 후보가 현재 권력과 사전에 충돌해서 크게 득을 본 적이 없다"며 "아직 대선이 1년 넘게 남아 있는 상황에서 현재 권력과 많이 멀어져 있으면 이득보다 손실을 볼 게 더 많다. 현재 권력이 차기 판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박 대통령이 심각한 레임덕에 빠져 국민 지지도가 도저히 안 나올 때가 돼야 차별화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지금은 너무 이르다"고 부연했다.
다만 김 교수는 "김 전 대표가 지금 같은 스탠스 보다는 사안에 따라서 전략적으로 합리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나을 것"이라며 "현 정권의 부족한 부분과는 차별화를 두면서도 유연한 전략을 사용하는 방식이 그에게 더 낫지 않을까라고 본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