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사태, 진실이 중요하다
입력 2026.10.05 07:07
수정 2026.10.05 07:07
영화 '암살자(들)' 포스터.ⓒ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 '암살자(들)' 사태가 정말 '사태'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커졌다. 영화의 내용에 대한 논란에서 시작해 출연 배우들과 그들이 광고한 브랜드, 영화평론가와 영화 소개 채널 심지어 의례적인 추천 멘트를 한 영화계 인사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공격이 가해진다.
처음에 주연 중의 한 명인 유해진에게 공격이 집중됐는데 급기야 보수 단체가 그의 집 앞에서 규탄 집회를 하기도 했다. 유해진을 광고모델로 내세운 버거킹과 키움증권엔 항의 댓글과 불매 움직임이 이어졌다. 결국 버거킹과 키움증권의 공식 유튜브 계정 유해진 출연 광고 영상들의 댓글창이 모두 닫혔다.
미래에셋증권은 '암살자(들)' 단체관람 행사에 비용을 지원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에 휩싸였고 경찰 고발까지 당했다. 미래에셋증권 측은 "연금 고객 대상 단체 영화관람은 업계 전반의 퇴직연금 마케팅 일환"이라며 여러 영화들의 관람을 지원하는 일반적 고객 서비스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국토안전관리원도 똑같은 논란과 고발을 당했고 같은 내용의 해명을 내놨다.
영화 개봉 후엔 배우와 감독이 무대인사를 통해 홍보하는 것이 관례인데 그것도 취소됐다. 개봉 2주차 주말에 49회에 달하는 무대인사가 예정됐었는데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취소된 것이다. 제작사는 ‘작품을 둘러싼 상황이 출연 배우와 제작진에게 작품 밖에서까지 과도한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는 점을 우려’해서 취소했다고 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암살자(들)‘의 또 다른 주연인 이민호 토크쇼가 예정됐었는데 비슷한 이유로 취소됐고 부산영상위원회의 시사회 역시 취소됐다. 유명 영화 리뷰 채널이나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관련 리뷰 영상도 삭제됐다.
영화 개봉 당시에 이영애·이정재·장동건·김고은 등 영화계 인사 42명의 친필 응원글이 공개됐었다. 영화에 대해 덕담하는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그것들이 영화에 대한 찬사라며 작성자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공격이 폭주하자 응원글 42개가 모두 삭제되는 초유의 사태로 번졌다.
이렇게 뜨거운 사태로 비화한 건 이것이 정치적 투쟁의 전선이 됐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찬반 진영 대결이 된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정치적인 발언을 많이 하던 이들이 현 사태를 주도했다.
영화를 옹호하는 측은 ‘표현의 자유’, ‘영화는 영화로 보자’ 등의 논리를 내세운다. 하지만 이건 부적절한 주장이다. 만약 이 영화가 정말 역사를 왜곡했다면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으로 정당화될 수 없고 단순하게 영화로만 볼 수도 없는 일이다.
영화를 비난하는 측은 패륜적인 역사왜곡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로 정치권이나 평소 정치적 발언을 많이 하던 측에서 이런 주장을 주도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뉴스대담에서 정치 패널들이 진영을 나눠 이 영화의 찬반 논쟁을 펼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중요한 건 진실이다. 이 영화의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그걸 확인하려면 정치 관련자들이 아닌 역사 연구자들이 나서야 한다.
현대사 연구자들 중에 해당 사건을 연구한 이들이 이 영화의 내용과, 2005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누가 육영수 여사를 쏘았는가', 2005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육영수와 문세광', 2021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초대받지 않은 손님: 8·15 저격 사건'의 내용들에 대해 학술적으로 검증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제출해야 한다.
문세광 사건 관련 음모론은 오래 전부터 널리 회자돼 왔다. 이번 영화 사태를 계기로 이 음모론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사실관계가 정리되지 않으면 토론 자체가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현재 영화를 비난하는 측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과거에 문세광 사건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했다고 이야기하는데 반대편에선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주장이 아닌 사실관계에서부터 부딪히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엇갈리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연구자들이 나서서 사실관계를 확인해줘야 한다.
역사적 사실이 확인되면 그걸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소모적 논란이 사라질 것이다. 민주 세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나치게 악마화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편에선 영화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서 관련자들을 하나하나 공격하는 등 공격이 과도하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돌이켜봐야 한다.
어쨌든 역사왜곡은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정당화될 수 없다. 특히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민감한 역사에 대한 잘못된 표현은 주의해야 한다. 그러니 기획단계에서부터 사실관계를 잘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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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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