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주주 견제하면 경영진도 견제되나…고려아연이 드러낸 '3%룰'의 역설
입력 2026.10.05 07:00
수정 2026.10.05 07:00
영풍·MBK 추천 후보 찬성 27.9%로 부결, 최윤범 측 후보 81.8%로 선임
檢·국세청 등 4대 사정기관 수사 속 '독립 감사' 요구 컸지만… 족쇄는 대주주가 차
"지분 크기 아닌 쪼개기 경쟁 변질"… 소유·경영 분리된 자본시장의 입법 맹점 노출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가 9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열린 제53기 임시주주총회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고려아연
지분 41%를 쥐고도 감사위원 한 자리를 얻지 못했다. 고려아연 최대주주 영풍·MBK파트너스 얘기다.
지난달 9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영풍·MBK가 추천한 박유경 후보는 찬성률 27.9%로 부결됐다. 최윤범 회장 측이 내세운 백인규 단국대 교수는 81.8%의 찬성을 얻었다. 승부를 가른 건 지난 7월 시행된 개정 상법의 '합산 3%룰'이다.
최대주주의 의결권은 3%로 묶인 반면, 여러 계열사로 나뉜 제3자 우호 지분은 법인마다 3%씩 살아남았다. 재계에선 "지분을 많이 가진 쪽이 아니라 잘게 나눠 가진 쪽이 이기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 41% 대 18%, 숫자 뒤에 숨은 셈법
이번 결과를 읽으려면 지분율보다 주식을 쥔 '사람과 법인의 수'를 봐야 한다. 영풍이 8월 12일 공시한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참고서류에 따르면 영풍 측 지분은 와이피씨 25.21%, 한국기업투자홀딩스 8.25%, 장형진 영풍 고문 3.46% 등 모두 41.13%다.
최 회장 측은 8월 6일 대량보유상황보고서에서 최 회장 본인(1.55%)과 특별관계자 지분을 합쳐 17.72%로 신고했다. 지분율로는 영풍 측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보유자 수로 따지면 셈법이 달라진다. 최 회장 측 보고서에 이름을 올린 친인척과 재단·법인은 53명(곳)에 이른다. 3%를 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피23파트너스(2.01%)와 케이젯정밀(2.00%), 최 회장 본인(1.55%)이 큰 편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0.01~1% 안팎으로 잘게 쪼개져 있다.
이 차이가 감사위원 선출에서 힘을 발휘하는 건 개정 상법의 '3%룰' 때문이다. 상법 제542조의12 제4항은 감사위원을 뽑을 때 발행주식의 3%를 넘는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한다.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쳐 3%를 따지지만, 나머지 주주는 주주별로 3%씩 인정받는다.
주총을 앞두고 시장 일각에선 "잘게 나뉜 최 회장 측 지분 17.72%는 3%룰을 피해 고스란히 행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지분을 쪼갠 효과는 뚜렷했다. 최 회장 측 우호 주주로 꼽히는 한화그룹이 대표적이다. 한화는 한화에이치투에너지(4.76%)와 한화임팩트(1.79%), ㈜한화(1.14%) 등 세 계열사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 7.69%를 갖고 있다.
3% 한도는 법인마다 따로 적용됐다. 3%로 깎인 건 한화에이치투에너지뿐이고, 나머지 두 곳은 보유 지분을 전부 행사했다. 7.69% 가운데 5.9% 안팎이 거의 손실 없이 표로 남았다. LG화학(약 1.87%)도 한도에 걸리지 않았다.
정리하면 3%룰은 지분을 얼마나 가졌느냐보다 어떻게 나눠 가졌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동했다. 공시상 41.13%를 가진 영풍·MBK 측은 최대주주 합산 제한과 MBK 측의 별도 3% 제한에 걸렸지만, 최 회장 측 사정은 정반대였다.
3%를 넘지 않는 특별관계자 지분 17.72%는 대부분 표로 이어졌다. 한화 세 계열사의 약 5.9%와 LG화학의 약 1.87%를 보태면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은 25%를 웃돈다. 공시상 '41% 대 18%'의 구도가 표결장에선 통하지 않은 셈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과 장형진 영풍 고문 ⓒ데일리안 박진희 디자이너
▲ 감사가 절실한 때, 열쇠는 경영진 우호 지분에
이번 표결은 법의 취지와 결과가 엇갈릴 수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합산 3%룰은 최대주주가 감사위원 선임을 좌우해 감사 기능을 무력화하는 일을 막자는 장치다. 하지만 최대주주와 현 경영진이 맞선 회사에선 사정이 다르다. 견제받아야 할 쪽은 경영진인데, 족쇄는 정작 최대주주가 찼다.
고려아연이 꼭 그런 경우다. 최 회장과 고려아연은 지금 검찰(배임 혐의 압수수색)과 국세청(조사4국 특별 세무조사), 공정위(부당지원 심사), 금감원(회계 감리)의 조사를 한꺼번에 받고 있다. 영풍·MBK 측도 원아시아파트너스 펀드 투자 손실과 미국 폐기물 처리업체 인수, 유상증자 추진 과정을 줄곧 문제 삼아 왔다.
독립적인 감사위원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41%를 쥔 최대주주가 3%룰에 묶인 사이, 감사위원을 고를 열쇠는 합산 규제 밖에 흩어진 경영진 우호 지분으로 넘어갔다.
지분을 잘게 나눠 쥔 쪽이 이기는 구조라면, 경영권 분쟁을 앞둔 회사들 사이에서 우호 지분을 여러 법인에 흩어 두는 전략이 번질 수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모든 선한 정책이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이 고려아연 임시주총을 통해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라며 "경영권 분쟁처럼 최대주주와 경영진이 갈라선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