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g 감량 부른 극한의 퍼포먼스…서사 대신 ‘감각’에 집중한 ‘콰이어 오브 맨 [현장]
입력 2026.10.02 08:47
수정 2026.10.02 08:47
9명의 배우 16곡 넘버에 피아노·트럼펫 등 악기 연주, 탭댄스까지 동시 소화
이충주 “필모그래피 통틀어 가장 고된 연습…관객에게 전해지는 에너지는 확신”
2027년 1월 3일까지 놀(NOL) 씨어터 대학로 우리투자증권홀
영국의 동네 펍(Pub)을 그대로 옮겨놓은 무대 위에서 9명의 남자가 악기 연주와 탭댄스, 합창을 쉴 새 없이 소화한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과 웨스트엔드를 거친 뮤지컬 ‘콰이어 오브 맨’(The Choir of Man)이 비영어권 최초의 한국어 프로덕션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이지영 한국 협력 연출은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놀(NOL) 씨어터 대학로 우리투자증권홀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이 공연에는 별다른 서사나 스토리가 뚜렷하게 엮여 있지 않지만, 관객이 무대 위 공동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몰입하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극의 배경인 펍 ‘더 정글’(The Jungle)을 매개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다는 점이다. 본 공연 시작 20분 전부터는 관객이 무대에 올라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음료를 마시는 ‘프리쇼’(Pre-show)가 열린다. 바맨 역의 유성재는 “관객에게 양질의 맥주를 제공하기 위해 직접 보건소에 가서 보건증까지 발급받았다”고 전했다.
ⓒ데일리안 박정선 기자
보어 역의 강리운은 “관객과 호흡하는 프리쇼를 겪고 나면 공연이 끝났을 때 정말 친한 친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라며 “처음 만나는 어색한 공간에서도 조금만 마음을 열면 즐겁게 몰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성인 인증 팔찌를 착용한 관객은 프리쇼 기간뿐만 아니라 본 공연 중에도 배우들이 건네는 주류를 마시며 극의 일부가 된다.
펍의 편안한 분위기와 달리 배우들이 감당하는 퍼포먼스의 강도는 매우 높다. 9명의 배우는 약 100분의 러닝타임 동안 퇴장 없이 무대를 지키며 16곡의 넘버를 부른다. 동시에 피아노, 트럼펫, 기타, 아코디언, 밴조 등의 악기를 직접 연주하고 군무와 탭댄스까지 소화해야 한다.
포엣 역의 이충주는 “‘원스’ ‘브로드웨이 42번가’ 등 여러 작품을 길게 연습해 봤지만 내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단언컨대 가장 힘든 연습 과정을 거친 작품”이라며 “대사량의 폭탄 속에서 위치를 이동하며 피아노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16곡의 노래를 소화해야 해 육체적 한계를 느꼈지만, 그만큼 관객이 받아 가는 감동이 크다”라고 밝혔다.
극한의 안무 강도로 인한 체중 감량 일화도 이어졌다. 보어 역의 이연승은 “연습 전 100kg이었는데 현재 90kg으로 10kg이 빠졌다”라고 말했고, 하드맨 역의 김방언 역시 “삼시 세끼에 야식까지 챙겨 먹어도 8kg이 빠졌다”라고 전했다.
오민영 음악감독은 “배우들이 16곡의 넘버와 악기 연주, 동선을 모두 외워서 라이브로 소화하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며 “각 캐릭터마다 요구되는 음역대와 연주해야 하는 지정 악기가 달라 캐스팅 과정부터 까다로웠지만, 배우들이 완벽한 합을 이뤄냈다”라고 평가했다. 문병권 안무감독은 “퇴장 신이 거의 없어 몸을 갈아 넣어야 하는 공연”이라며 “오전 연습임에도 펍에서 실제 술을 마시고 즐기는 듯한 날 것의 에너지를 묘사하도록 디렉팅했다”라고 설명했다.
ⓒ데일리안 박정선 기자
작품은 기승전결을 갖춘 서사 대신 음악과 공간이 주는 ‘감각’ 자체에 집중한다. 퀸(Queen)의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웰컴 투 더 정글’(Welcome to the Jungle), 시아(Sia)의 ‘샹들리에’(Chandelier) 등 귀에 익은 팝이 펍 밴드의 라이브 연주로 흐른다. 이 연출은 “시인 역할의 스피치 외에는 뚜렷한 인과관계가 없으나, 어느새 관객들이 배우들의 스피치에 몰입하게 되는 독특한 힘을 지닌 작품”이라고 짚었다.
비영어권 최초로 시도되는 한국어 공연인 만큼 철저한 현지화 과정도 거쳤다. 원작 작가 벤 노리스(Ben Norris)는 한국 배우들이 연습 전 직접 작성한 ‘집’에 대한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한국 공연만을 위한 대본을 새로 구성했다. 배우들은 무대에서 극중 이름이 아닌 자신의 실제 이름을 쓰며 관객과의 거리를 좁힌다.
뮤지컬 ‘콰이어 오브 맨’은 결국 펍이라는 일상적 공간에서 개개인의 상처를 털어내고 연대하는 과정을 그린다. 김방언은 “단순히 술을 마시고 노는 극이 아니라, 누군가는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춤추고 노래하며 아픔을 이겨내는 이야기”라며 “공연이 끝날 즈음엔 스스로를 보듬고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뮤지컬 ‘콰이어 오브 맨’은 2027년 1월 3일까지 서울 대학로 우리투자증권홀에서 공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