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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상부터 고전 소설·LP까지…‘구관’에 줄 서는 청년들 [다시, 오리지널②]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9.25 11:50
수정 2026.09.2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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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연 650만 명 역대 최다

‘뮷즈’ 매출 2년 새 212억서 413억으로

엿새 만에 103만 부 팔린 한강 종이책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관람객 650만명 시대를 연 상징적 공간은 상설전시관 2층 ‘사유의 방’이다. 2021년 개관 당시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이 이곳에서 위로를 얻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후 이곳은 청년 관람객들이 삼국시대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 앞에서 침묵 속에 ‘유물 멍’을 즐기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주말마다 박물관을 찾는다는 대학생 정모(24) 씨는 “스마트폰으로 쇼츠를 종일 넘겨보고 나면 피로감만 남는데, 사유의 방에 서 있으면 1000년이 넘은 유물이 주는 무게감 덕분에 잡생각이 사라진다”며 “변하지 않는 진짜 원본 앞에 서 있을 때 얻는 안정감이 있다”고 말했다.


박물관 문화상품 브랜드 ‘뮷즈’(MU:DS)의 성장은 더 극적이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 따르면 뮷즈의 2025년 매출은 약 413억 3700만원으로 2024년(약 212억 8400만원)의 1.9배에 달했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다만 이 성장의 동력을 ‘원형 선호’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월별 매출은 1~3월 10억원대, 4~6월 20억원대에 머물다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공개된 7월 49억 5700만원, 8월 52억 7600만원으로 뛰었다.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상품도 반가사유상 미니어처가 아니라 ‘케데헌’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까치호랑이 배지’(약 9만개)였다. 구매층 역시 20대보다 30대(35.4%)와 40대(25.9%)가 두터웠다.


국립중앙박물관 상품관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32) 씨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에 한국적인 도깨비와 호랑이 캐릭터가 나오는 걸 보고 실물 유물이 궁금해져 박물관을 찾았고 그 이후로 종종 찾고 있다”며 “옛 유물 디자인이 촌스럽지 않고 책상 위에 두고 쓸 수 있을 만큼 감각적이어서 자연스럽게 굿즈까지 사게 됐다”고 전했다.


뮷즈의 매출 추이는 원형 선호가 최신 대중문화와의 접점을 통해 확장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친숙한 콘텐츠로 문턱을 낮춘 뒤 실물 유물 관람과 소비로 유입되는 구조다.


출판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보인다. 2024년 10월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자, 수상 발표 엿새 만에 예스24·교보문고·알라딘 3사에서 한강의 종이책 103만 2000부가 팔렸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자는 당시 “한 권이 아니라 작가의 작품 전체로 판매가 번져나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작가 전체를 파고드는’ 독서는 출판계 전반의 고전 열풍으로 이어졌다. 국립중앙도서관의 ‘2025년 도서 대출 동향’에 따르면 한국문학 대출은 전년 대비 9.8% 늘었고, 1998년 출간된 양귀자의 ‘모순’은 대출 상위 6위에 올랐다. 교보문고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도 ‘모순’과 함께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등 수십 년간 읽혀온 고전들이 이름을 올렸다.


ⓒ뉴시스

특히 20대가 서점을 직접 찾아 종이책 소설을 구매하는 비율은 2024년 28.5%에서 30.6%로 상승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도 전체 성인 독서율이 정체된 반면 20대 독서율(75.3%)은 상승세를 보였다. 노벨상이라는 권위와 반세기를 버텨온 고전의 생존력이 청년 독자들에게 ‘실패 없는 텍스트’라는 확신을 제공한 셈이다.


극장가 역시 신작 공백을 메우는 수준을 넘어 ‘재개봉 명작’이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흔들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재개봉 영화 편수는 2023년 48편에서 2024년 84편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4K로 재개봉한 애니메이션 ‘코렐라인’(21만 3000명)과 22년 만에 스크린에 걸린 ‘모노노케 히메’(19만 2000명)는 20대 관객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흥행했다.


이 흐름의 정점은 ‘러브레터’다. 2025년 새해 아홉 번째로 재개봉한 30주년 에디션은 11만 5000명을 모았고, 20대 입소문을 타고 1월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이번 판본은 1999년 국내 첫 상영 당시의 세로 자막을 되살리고 오역을 바로잡아 원형의 모습을 복원했다. 고전 애니메이션의 귀환도 이어졌다. 개봉 40주년을 맞은 ‘천공의 성 라퓨타’가 22년 만에 극장에 걸려 관객을 모았고, 흥행 감독의 초기작을 재조명하는 ‘필모그래피 역주행’ 상영도 잇따랐다.


음악과 사진 등 매체 소비에서는 ‘만질 수 있는 실물 형태의 원형’을 찾는 흐름이 이어진다. 인스타그램 내 LP 해시태그 게시물은 1000만개를 넘었고, 온라인 편집숍 29CM에서는 올해 5월 1~12일 턴테이블 거래액이 전년 동기보다 96% 늘었다. 인기 LP의 상당수는 옛 명반뿐 아니라 잔나비, 검정치마, 아이유 등 동시대 청년 뮤지션의 실물 음반들이다. 정가 5만 원대의 잔나비 2집 LP가 중고 시장에서 수십만 원에 거래되는 현상은, 청년들이 원하는 것이 단지 ‘옛 음악’이 아니라 손으로 쥐고 바늘을 올려야 소리가 나는 ‘원형의 재생 방식’임을 보여준다.


서울 동대문구 풍물시장의 LP샵 ⓒ뉴시스

필름카메라 역시 마찬가지다. 필름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면서 중고 거래 커뮤니티에서 코닥 컬러플러스 필름 한 롤 가격이 2019년 3500원 수준에서 2023년 1만 8000원 수준으로 뛰었다. 지난해 7월에는 중국 럭키필름이 2012년 단종한 컬러 필름을 13년 만에 다시 선보였다.


평소 필름카메라를 사용한다는 대학생 박모(23) 씨는 “스마트폰 사진은 수천 장을 찍고도 다시 보지 않지만, 필름은 36장 한 롤을 현상할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 자체가 특별하다”며 “불편하고 돈이 더 들더라도 손에 잡히는 진짜 결과물을 갖는 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문화 영역에서 확인된 원형 선호는 청년들의 일상 미식과 골목 소비로도 이어진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인 1904년 개업 이문설농탕, 1954년 문을 연 종로 빈대떡집 열차집 등 유서 깊은 노포들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며 청년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한 점포를 대상으로 지정하는 ‘백년가게’ 역시 1100곳을 넘기며 신규 지정을 지속 확대 중이다.


결국 박물관의 불상부터 서점의 고전, 극장의 명작, LP와 노포에 이르기까지 청년들이 소비하는 것은 동일하다. 무한히 복제되고 빠르게 휘발되는 디지털 유행 대신, 시간과 권위의 검증을 통과해 실체로 남은 ‘확실한 오리지널’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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