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소비하지 않으려”…이창동이 ‘가능한 사랑’을 다시 꺼낸 이유
입력 2026.09.13 06:08
수정 2026.09.13 07:11
10여 년 전 정리해고 사태서 출발…오랜 고민 끝 새로운 이야기로 완성
“조여정에게 산 좋은 꿈, 행운 가져온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이 ‘가능한 사랑’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영화에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질문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 차례 제작을 접었던 작품을 다시 꺼내든 그는 영화가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함께 나누고 치유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했다.
이 감독은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에서 열린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폐막식 수상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가능한 사랑’을 만들게 된 과정과 작품에 담은 고민을 밝혔다. ‘가능한 사랑’은 이날 은사자상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이창동 감독ⓒ뉴시스/AP
작품의 출발점은 10여 년 전 한국에서 벌어진 대기업 정리해고 사태였다. 이 감독은 “노동자들이 파업했고 그것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충격도 있었고, 제 자신도 많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이 이야기를 극영화로 옮기기 위해 프리프로덕션까지 진행했지만 결국 멈췄다. 이 감독은 “제가 과연 그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자격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 접었다”고 밝혔다.
시간이 흐른 뒤 다큐멘터리 감독이 이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는 설정을 더하면서 작품은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이 영화의 소재로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고민했다. 이 감독은 “종종 영화가 타인의 고통 또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 속에 가지고 오면서 영화를 위해 소비하는 수가 많은데, 과연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영화에 담아야 되는지 그 질문을 제 스스로에게도 하고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에서는 또 다른 가능성도 발견했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작업 그 자체가 어쩌면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서로 그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변화하는 극장 환경 속에서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전했다. 이 감독은 “점점 우리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영화에 대한 고민이 깊어가고 있는 시대라고 생각한다”며 “사람들이 극장에 모이기도 힘들어하고 또 각자 영화를 통해서 서로 나누던 것이 점점 관계가 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상황에서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관객과 좀 더 깊이 만나고 싶고, 저희의 질문과 관객의 생각들이 만났으면 좋겠다. 이 상은 그런 걸 격려하는 상이라고 생각한다”고 심사위원대상의 의미를 짚었다.
기자회견에서는 배우 조여정에게 샀다는 ‘좋은 꿈’에 관한 질문도 나왔다. 이 감독은 “조여정 씨가 좋은 꿈을 꿨다고 꿈을 팔기는 했다. 한국에서는 그런 풍습이 있다. 그 꿈이 이런 행운을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호석과 아내 미옥,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와 남편 상우 등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부부가 만나 각자의 삶과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설경구, 전도연, 조여정, 조인성이 출연했다. 오는 23일 국내 극장에서 개봉한 후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