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파병, 국익을 위한 선택
입력 2026.09.10 09:30
수정 2026.09.10 09:30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들이 운항하고 있다. ⓒAP/뉴시스
호르무즈 파병의 실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 호르무즈 파병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사전 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한 것이 사실상 파병 방침을 결정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전쟁이 어떤 경우에는 침체한 경제의 돌파구가 되기도 한다. 1950년대 한국전쟁이 일본의 전후 복구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1960년대 월남전은 6.25이 잿더미에서 일어서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월남전 참전은 미제의 용병이라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막대한 외화를 벌고 한국 기업이 벤치마킹할 미국 소비재를 염가로 수입할 수 있었다.
지금 호르무즈 파병에서는 그런 직접적인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파병의 실리는 그 때보다 크면 크지 결코 작지 않다. 실리는 차고 넘친다. 한·미 관세협상과 투자 협상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북·미 대화에 한국 정부가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특히 한·미 동맹이 강화되고 동북아시아 안보 상황이 훨씬 안정될 수 있다. 파병으로 한·미 관계가 개선되고 관세.투자 협상이 순탄해지면 이재명 대통령이 생각지 않던 소득을 얻을 수 있다. 김승원·용혜인 장관 후보자 지명 이후 급속도로 추락하던 지지율에 반전의 계기가 되는 것이다.
명분이 문제다
이란 전쟁은 트럼프의 침략 전쟁이 분명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3년·2004년 두 차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할 때보다 미국이 훨씬 고립된 상태다. 이라크 파병 때는 대량살상 무기라는 명분도 있어서 영국 스페인 등 미국의 동맹국들이 대거 동참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란 비핵화와 미사일 제거는 핑계일 뿐 사실상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공중 폭격과 해상 봉쇄에만 의존한 결과, 그렇게 꺼리던 장기전에 접어들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동맹국들도 냉소적이다.
겉으로 보이는 명분은 분명 당시보다 약하다. 명분론자들은 말한다. 트럼프 나쁜 놈 도와주면 안 된다고. 트럼프 나쁜 놈인 줄 다 안다. 그러면 이란 집권세력과 이란 군부는 착한 놈인가? 비유하자면 이란은 나쁜 놈인데 멀리 있고, 트럼프는 훨씬 힘도 센데 가까이 있는 나쁜 놈이다. 그러면 멀리 있는 나쁜 놈 협박을 먼저 해결하나 가까이 있는 센 놈 협박부터 해결해야 하나? 일단은 가까운 힘센 놈 요구부터 들어주고 다음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일의 선후가 그렇지 않은가?
나무호 피격을 따져라
명분은 찾기 마련이다. 이라크 파병 당시에는 없었던 명분,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강력한 명분이 있다. 지난 5월 4일 이란이 한국의 비무장 상선 나무호에 발포해 지름 5미터의 큰 구멍을 낸 사건이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폭발물 잔해 분석 결과 이란의 ‘누르’ 계열 대함 미사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란은 아직도 공식 사과도 않고, 책임자도 처벌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로서는 이 사건을 문제삼아 이란 정부의 공식 시인과 사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보상을 요구하면서 호르무즈 파병의 명분을 삼을 수 있다. 언론에서 먼저 거론하고 정부가 이를 받는 수순이 좋을 것이다.
호르무즈 파병 거절했다고 트럼프는 두 번, 세 번 이재명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원망한다. 그러면서 파병을 계속 재촉한다. 언제까지 모른 척 할 수만 있겠나? 트럼프로서는 아주 짧은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는 의미의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라는 한자성어가 실감이 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이다. 아마 프랑스에서 귀국하는대로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고립돼 있고 사면초가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파병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실리가 크면 그 자체로 명분이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큰 실리는 명분이 된다
굶어 죽을 사람에게 남의 물건을 탐내지 마라고 강요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을 먹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래야 할 경우가 있다. 20세기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지난 1972년 10월 우루과이 대학 럭비부 선수단을 태운 우루과이 공군 전세기가 해발 3600미터의 남미 안데스 산중에 추락했다. 영하 30도의 고원에서 살아남은 승객들이 먼저 죽은 승객들의 인육을 먹고 72일만에 16명이 생환했다. 완고한 교회조차 그런 비상 상황을 인정했고 이 이야기는 21년 뒤인 1993년 영화 ‘얼라이브’(Alive)와 2023년 다큐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Society of the Snows)로 영상화됐다.
트럼프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3건으로 역전을 노린다. 가장 우선은 오는 24일 시진핑의 미국 방문이고 그 다음은 김정은과의 북미 대화다. 그러나 시진핑이나 김정은은 만만한 협상 상대가 아니다. 트럼프가 별 소득 없이 빈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의 마지막 희망은 한국이다. 죽은 놈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살아있는 동맹국 미국 대통령 소원 못 들어주나? 영어 속담에도 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피 흘리지 않는 동맹은 없다
일본 전국시대 말기, 조그만 지방 번국의 애송이 두 영주가 손을 맞잡았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배신을 밥 먹듯하는 전국시대, 두 애송이 영주는 무려 20년 동안 피의 동맹을 지키며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두 영주의 비밀스러운 동맹이었던 '기요스 동맹'은 그 20년이 꽃길로만 이어지지는 않았다. 도쿠가와 가문은 크고 어려운 전투마다 선봉 돌격대를 맡았고 이에야스는 아내와 결별하고 장남을 할복시켰다. 이런 희생 끝에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일본 전국을 평정하고 도쿠가와 막부를 열었다.
외로이 고립된 미국 대통령을 도와주는 거의 유일한 동맹국 한국, 얼마나 생색내기 좋은 기회인가? 아무리 트럼프가 나쁜 놈이라도, 현직 미국 대통령이다. 미국민의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다. 지난 7월 말 콜로라도주의 애스핀에 모인 미국의 ‘여야’ 전.현직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들도 일치된 목소리를 냈다. “이란 전쟁에서 미국의 동맹국들이 너무 비협조적이었다.” 그게 미국이다.
트럼프를 도와주되 이란에 할 말을 남겨야 한다. 나무호 피격사건을 키워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이란에 사과와 책임자 처벌, 보상을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해상 전력을 보내되 함포나 재밍 시스템 등 자폭 드론에 대응해 국적선 보호에 집중한다고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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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