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며 업무파일 지웠더니 징역형…자료 삭제, 형사처벌 어디까지 [디케의 눈물 368]
입력 2026.09.08 18:09
수정 2026.09.08 18:14
업무파일 1609개 삭제…징역 6개월 선고하고 법정구속은 면해
“개인 자료 정리” 주장에…法 "회사 협의 없이 삭제한 고의 인정"
설계도면 등 68개 외장하드 복사…영업비밀 유출까지 유죄 판단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뒤 반납해야 할 업무용 노트북에 저장된 회사 파일 1609개를 삭제한 간부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회사 자료를 무단으로 삭제한 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피고인이 자신의 업무 폴더를 정리한 것이라고 주장한 데다 실제 회사가 입은 손해가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 징역형까지 선고한 것이 적정했는지를 두고 법원의 판단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14단독 강영선 판사는 전자기록 등 손괴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최근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피해 회복과 합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A씨는 2022년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한 회사에서 인도네시아 폐기물 고형연료 생산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간부로 근무했다. 2023년 2월 말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뒤 같은 해 4월10일 업무용 노트북을 반납하기 직전 저장돼 있던 업무 관련 파일 1609개를 삭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재판에서 회사 자료를 고의로 훼손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삭제한 파일 가운데 약 150개는 자신의 개인 자료였고, 노트북을 반납하기 위해 평소 자신이 사용하던 폴더와 파일을 정리했을 뿐이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직접 작성한 자료라고 하더라도 회사 업무 과정에서 만들어져 회사가 효용을 지배·관리하는 자료라면 회사의 전자기록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강 판사는 "삭제된 파일들은 피고인이 회사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소지하게 된 것으로 회사가 효용을 지배·관리하는 전자기록"이라며 "노트북 반환을 요구받자 회사와 협의 없이 자료를 임의로 삭제한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파일 삭제 외에 A씨가 업무자료 일부를 개인 외장하드로 옮긴 사실도 확인됐다. A씨는 파일을 대량 삭제하기 전 발주처 제출용 설계도면 등 68개 파일을 외장하드에 복사했고, 재판부는 이를 회사의 영업비밀을 무단으로 유출한 행위로 판단했다.
수원지방법원. ⓒ연합뉴스
특히 이번 판결에서는 단순한 파일 삭제와 영업비밀 반출을 어느 범위까지 하나의 행위로 평가할 것인지도 쟁점이 됐다. 특히 회사 자료를 삭제한 행위 자체에 대한 형사책임과 별개로, 외장하드로 복사한 자료가 실제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와 그 반출 경위 및 목적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었다.
재판부는 A씨가 회사 업무 파일을 대량으로 삭제하고 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한 영업비밀을 무단 유출했다며 엄정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A씨가 고령이고 벌금형을 초과하는 전과가 없는 점, 회사가 입은 손해 규모가 과중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
김희란 변호사(법무법인 대운)는 "업무용 노트북에 저장된 자료라도 직원이 직접 작성했다는 이유만으로 임의로 삭제하거나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이번 사건은 단순히 파일을 삭제한 데 그치지 않고 회사와 협의 없이 대량의 업무자료를 삭제한 정황과 일부 자료를 개인 저장장치로 옮긴 행위까지 함께 인정되면서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퇴직을 앞둔 직원이 자신이 만든 자료를 개인적인 성과물로 생각해 가져가는 경우가 있지만 해당 자료의 소유·관리 주체와 영업비밀 해당 여부, 삭제 당시의 고의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 형사책임 범위를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초동의 또 다른 변호사는 "퇴직이나 해고를 앞둔 직원이 업무용 컴퓨터에서 자신이 작성한 자료나 개인 파일을 정리하는 행위는 현실에서 드물지 않다"며 "그러나 회사가 관리하는 업무자료를 고의로 삭제하거나 영업비밀을 외부로 반출할 경우 형사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결국 이번 사건은 회사 자료에 대한 직원의 처분 권한이 어디까지 인정되는지, 실제 손해가 크지 않은 경우에도 실형을 선고할 수 있는지를 함께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