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일하지 못하게 하는 게 노동자 보호일까
입력 2026.09.08 07:00
수정 2026.09.08 07:00
야간배송 월 12회 제한 추진…기사 97.7% “반대”
근무일 줄면 소득 감소…“투잡으로 이어질 수도”
획일적 규제보다 휴식권·건강검진 등 실질 대책 필요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건강권을 지켜주겠다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반대한다.
최근 국회에 발의된 야간배송 근무시간 제한 법안을 둘러싼 풍경이다.
법안은 야간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야간작업을 월 최대 12회, 연속 최대 3일 등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시간 야간노동이 건강에 부담을 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취지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새벽배송 기사들의 상당수는 근무시간 제한에 반대하고 있다.
쿠팡파트너스연합회가 소속 배송기사 33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95.9%가 작업시간을 법으로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데 반대했고, 야간배송을 월 최대 12회로 제한하는 방안에는 97.7%가 반대했다.
가장 큰 이유는 소득이다.
택배기사는 배송 물량과 근무일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일하는 날을 줄이면 곧바로 수입 감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줄어든 소득을 메우기 위해 다른 일을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 조사에서도 작업시간 제한으로 소득이 감소할 경우 다른 일자리를 찾거나 택배 일을 유지하면서 다른 직종을 병행하겠다는 응답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새벽배송 시간을 줄였지만 배송기사는 밤에 대리운전을 하거나 다른 물류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법으로 줄인 것은 '새벽배송 시간'일 뿐 실제 노동시간은 아닐 수 있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투잡을 부추겨 전체 노동시간을 늘리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법안의 취지는 무색해진다.
물론 이를 근거로 야간노동을 개인의 선택에만 맡겨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당장의 소득 때문에 건강 위험을 감수하며 장시간 일하는 노동자가 있다면 국가와 기업이 보호해야 한다. 과로를 막고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일하는 시간을 줄이면 건강해진다'는 단순한 접근만으로는 현실을 해결하기 어렵다.
현장의 요구도 조금 다르다.
배송기사들은 일률적인 작업시간 제한보다 자유롭게 쉴 수 있는 휴무 체계와 주 5일 근무, 건강검진 지원 등을 더 필요한 대책으로 꼽고 있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법은 일을 못 하게 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충분한 연속휴식을 보장하고, 배송 물량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며, 대체인력을 확보하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야간노동에 합당한 보상을 지급하고 필요할 때 스스로 쉴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새벽배송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다.
소비자는 밤에 주문한 상품을 아침에 받는 데 익숙해졌고, 새벽배송은 유통업계의 주요 경쟁력이 됐다. 최근에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허용 문제를 놓고 반대해왔던 일부 소상공인 단체에서도 조건부 수용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대가 변한 만큼 규제 방식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의 건강을 희생해서도 안 된다. 반대로 건강권 보호를 이유로 당사자의 소득과 선택권을 일률적으로 제한해서도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못 일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다.
'일하는 동안 어떻게 안전하게 보호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노동자가 원하지 않는 방식의 휴식을 강제하는 것이 과연 최선의 보호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