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음악은 급증, 제작비는 폭등…음악산업이 찾은 해법은 ‘신뢰와 투자’ [현장]
입력 2026.09.04 17:48
수정 2026.09.04 17:49
2026 MWM, ‘AX 시대 음악산업의 새로운 가치사슬’ 주제로 개최
텐센트뮤직 신규 등록곡 중 AI 음악 44.1%…“별도 표시·정산 필요”
RBW “신인 2년 유지에 최대 150억원…주목적 뮤직펀드 마련해야”
인공지능(AI)이 음악을 쏟아내고 신인 아티스트를 키우는 비용은 수십억원대로 치솟았다. 기술의 속도와 자본의 격차가 동시에 커지는 상황에서 음악산업 관계자들은 인간 창작자의 권리, AI 활용의 투명성, 중소 기획사의 다음 기회를 보장할 투자 구조를 새로운 가치사슬의 핵심으로 꼽았다.
4일 서울 마포구 상암 큐브컨벤션센터에서 ‘2026 MWM 콘퍼런스’가 열렸다. 한국대중음악산업협회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AX(AI Transformation) 시대: 음악산업의 새로운 가치사슬’을 주제로, AI가 음악의 창작과 유통, 소비, 투자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다뤘다.
가장 눈에 띈 것은 AI 음악의 증가 속도였다. 도라 진 텐센트뮤직 비즈니스 총괄은 자사 플랫폼에 등록된 신규 음악 가운데 AI 음악의 비중이 2023년 5.2%에서 2025년 21.4%, 올해 상반기 44.1%까지 늘었다고 밝혔다. 약 2년 만에 8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한국대중음악산업협회
그는 “AI 음악과 사람이 만든 음악을 구분 없이 같은 시스템 안에서 경쟁시킨다면 추천과 노출, 수익 배분이라는 플랫폼의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며 “AI 음악을 허용할지 막을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원칙으로 관리하고 인간 창작 생태계를 지킬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텐센트뮤직은 합법적으로 확보한 데이터를 AI 학습에 사용하고, AI 생성 여부를 표시하는 투명한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라 진 총괄은 “인간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한다고 AI를 거부할 필요도 없고, AI의 발전을 위해 인간의 권리를 양보해서도 안 된다”며 “기술과 사람의 검토를 함께 활용해 권리 침해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AI로 음악 자체가 흔해질수록 아티스트와 팬이 쌓은 관계는 더 중요해진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는 “AI는 음악을 만들 수 있지만 한 아티스트가 오랜 활동을 통해 팬과 쌓은 서사와 신뢰, 소속감은 대량 생산할 수 없다”며 음악 플랫폼도 단순 배급 채널에서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연결하는 서비스 플랫폼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대중음악산업협회
고윤화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 연구원은 케이팝(K-POP)이 공동 창작과 글로벌 네트워크, 데이터 기반 기획, 강한 팬덤을 이미 갖춘 만큼 AI를 실험하기에 적합한 산업이라고 봤다. 다만 AI가 인간을 대체하기보다 각 창작자의 역할을 확장하는 인프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고 연구원은 “AI가 산업 전체에 스며들수록 더 중요한 것은 투명성과 신뢰”라며 “누가 만들었는지, AI가 어디까지 개입했는지 알 수 있어야 팬들도 음악을 해석하고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AI 시대에 다시 써야 할 가장 중요한 케이팝 공식은 기술이 아니라 창작자와 아티스트, 기획사, 플랫폼, 팬 사이의 신뢰”라고 강조했다.
ⓒ한국대중음악산업협회
기술이 팬 경험을 넓히는 사례도 소개됐다. 이승준 어메이즈 창업자는 VR 콘서트가 높은 티켓값과 지역적 한계로 실제 공연을 보기 어려운 팬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관에 VR 장비를 마련해 팬들이 별도의 헤드셋을 사지 않고도 함께 공연을 관람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는 AI를 제작 효율을 높이는 도구로 활용하면서도 “아티스트가 직접 땀 흘려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담는 진정성이 있어야 팬이 돈을 내고 볼 가치가 생긴다”며 기술보다 기획과 실제 퍼포먼스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한국대중음악산업협회
AI와 함께 이날 주요 화두로 떠오른 것은 제작비였다. 김진우 RBW 대표는 마마무를 준비하던 시기에는 앨범 한 장에 약 4억~5억원이 들었지만, 현재는 신인 아티스트가 데뷔 후 2년간 활동을 이어가는 데 제작비와 마케팅비를 합쳐 적게는 60억~70억원, 많게는 100억~150억원까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한 아티스트가 잘못되면 100억원이 사라지고, 한두 번이면 회사도 휘청할 수 있다”며 “영화처럼 여러 투자자가 자본과 위험을 나누는 구조가 음악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대형 기획사와 중소 기획사의 자본 격차가 커지면서 신인은 노래에 대한 평가를 받기도 전에 대중에게 발견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전에는 이 정도를 투자하면 노래가 좋다거나 나쁘다는 평가라도 받았지만, 이제는 아예 보이지 않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음악산업에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투자하는 ‘주목적 뮤직펀드’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김 대표는 “마마무도 여러 번 앨범을 낼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지금의 브랜드가 됐다”며 “현재는 한 장을 내고 자금이 모두 소진되는 중소 기획사가 많다. 다음 카드까지 볼 수 있도록 음악에 주목적으로 쓰이는 정책 자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벤처투자 측은 현재 IP와 수출, 문화기술 분야의 펀드를 통해 음악 프로젝트 투자가 가능하다면서도, 음악 분야에 자금이 충분히 유입되지 않는다면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해 하이브리드형 문화 펀드 등의 조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날 콘퍼런스에서 AI와 투자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다. 콘텐츠가 무한히 생성되는 시대일수록 창작자의 권리와 아티스트의 고유한 서사를 지킬 기준이 필요하고 자본이 일부 기업에 집중될수록 다양한 음악을 지속적으로 시장에 내놓을 투자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음악산업의 새 가치사슬을 만드는 출발점은 결국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를 운용할 원칙과 신뢰, 다음 창작을 가능하게 하는 자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