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자유'보다 '살 권리'…법원이 여권 반납 인정한 이유
입력 2026.08.29 01:05
수정 2026.08.29 01:05
이미 출국했어도 반납명령 가능…"제도 우회 막아야"
사전통지 생략도 적법…"가자지구행 가능성 명백"
이동의 자유 제한보다 생명·신체 보호가 우선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다가 석방된 한국인 활동가 김아현(활동명 해초)씨가 2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으로 귀국하고 있다. 2026.05.22.ⓒ뉴시스
가자지구로 향하는 구호선단에 다시 타려던 활동가 김아현씨(활동명 해초)에게, 외교부가 여권을 반납하라고 한 것이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김씨가 반납명령을 전달받기도 전에 이미 다시 출국한 상황이었지만 이 경우에도 여권 반납명령을 내릴 수 있고, 미리 알리지 않고 처분한 것도 문제없다는 판단이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구호선단을 타고 가자지구로 향하다 이스라엘군에 붙잡혀 현지에서 수감됐다가 이틀 만에 석방됐다. 이후 다시 가자지구행 구호선단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외교부는 지난 3월25일 김씨에게 여권 반납을 명령했다. 하지만 김씨는 명령이 전달되기 전인 3월 중순, 재차 구호선단에 탑승하기 위해 이미 출국한 상태였다. 외교부의 반납명령은 같은 달 27일 김씨에게 전달됐다.
여권법에는 반납명령을 받고도 따르지 않으면 여권의 효력이 상실되도록 돼 있다. 김씨는 명령서를 직접 받고 여권을 낸 게 아니라, 반납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권의 효력이 상실됐다. 이후 다른 나라에서 다시 가자지구행 배에 탔다가 5월에 또 이스라엘군에 붙잡혔고, 풀려난 뒤에는 외교부가 발급한 여행증명서를 이용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씨 측은 "정부가 미리 알려주지도, 내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고 처분했다"며 "이미 출국한 상태였으니 급하게 처분할 이유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여권 반납명령이 이동하고 행동할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① 미리 알리지 않은 것 — 문제없다
법원은 정부가 사전통지나 의견 청취 절차 없이 처분한 것이 위법하지 않다고 봤다. 김씨가 이미 프랑스로 출국했고, 가까운 시일 내 가자지구로 향할 것이 명백하게 예상되는 상황이었다는 게 이유다. 가자지구에 다시 들어갈 경우 김씨의 생명과 신체에 심각한 위험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컸기 때문에, 국민의 안전을 위해 서둘러 처분할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② 이미 출국한 사람도 처분 대상이 되나 — 된다
여권법에는 “처분 당시 반드시 국내에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법원은 이 점을 근거로, 이미 출국한 상태였더라도 여권 반납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봤다. 만약 위험지역으로 나가기 전에만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해석하면, 처분 대상자가 처분을 피하기 위해 먼저 출국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우회할 수 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③ 자유를 너무 많이 제한한 건 아닌가 — 아니다
여권 반납명령이 김씨의 행동과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도 있지만, 법원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지키려는 공익이 더 크다고 봤다. 김씨가 처한 위험의 정도와 이 처분으로 지키려는 공익의 무게를 함께 고려하면, 여권 반납 외에 같은 정도의 보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김씨 측이 여권법 조항 자체가 헌법에 어긋난다며 낸 헌법소원은 지난 5월19일 헌법재판소 사전심사 단계에서 각하돼 본안 판단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김씨는 정부와 법원이 내세우는 '안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며 항소의 뜻을 밝혔다. 항소심에서는 이미 출국한 사람에게 여권 반납명령을 내릴 수 있는 법적 근거, 사전통지를 생략할 수 있는 긴급한 상황의 범위, 여권 반납 외에 다른 방법으로 위험을 막을 수 있었는지가 다시 다뤄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