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 첫 '대법관 제청 반려' 현실화하나…법조계 "위헌 소지"
입력 2026.08.21 10:38
수정 2026.08.21 10:47
손봉기 임명동의안 미제출·재제청 요구 검토…현실화 땐 초유
2003·2009·2023년 갈등에도 정식 제청 이후 반려 전례 없어
법조계 "대통령 임명권 형식적…재제청 요구 법적 근거 없어"
"추천위 재구성 땐 공백 장기화…사회적 혼란 야기 우려"
조희대 대법원장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청와대가 조희대 대법원장이 제청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에 대해 임명 절차를 밟지 않고 다른 후보자를 제청하도록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는 아직 최종 방침을 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재제청 요구가 현실화하면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권한이 정면으로 맞서는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과거에도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갈등은 있었지만 대통령이 정식 제청된 후보자의 임명 절차를 중단하거나 재제청을 요구한 사례는 없었다.
▲靑 '반려 카드' 검토…법원 "협의했지만 합의 못해"
21일 법조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청와대는 전날 언론 공지를 통해 이번 제청을 "대한민국 헌정사 초유의 사태, 협의를 건너뛴 유례없는 일방 통보"라고 규정했다. 다만 반려 여부에 대해서는 "다른 관례들과 법률을 충분히 먼저 검토해야 하는 사안으로 본다"며 확답하지 않았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 후보자를, 다음 달 7일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각각 이재명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이 중 손 후보자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대통령과 대면하지 않고 서면으로 제청했다.
이에 대해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청와대와 협의했지만 합의하지 못했고, 서면 제청 방식은 청와대 민정수석 측과 협의했다고 밝혔다. 손 후보자를 제청하겠다는 뜻은 제청 당일 청와대에 알렸다고 설명했다.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제청을 받은 뒤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할 기한이나 제청을 반려하고 재제청을 요구하는 절차는 헌법과 법률에 따로 규정돼 있지 않다. 사전 협의나 대면 제청 역시 법적 의무가 아닌 관례다.
청와대 전경 ⓒ뉴시스
▲2003·2009·2023년 갈등…정식 제청 뒤엔 모두 수용
과거에도 제청을 둘러싼 갈등은 있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최종영 당시 대법원장이 서성 대법관 후임을 제청하는 과정에서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 부족을 지적하며 거부 가능성까지 검토했다. 하지만 최 대법원장이 김용담 광주고법원장을 제청하자 노 전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2009년에는 후보 추천부터 제청까지 15일이 걸리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 사이의 이견설이 불거졌다. 그러나 이 대법원장이 민일영 청주지법원장을 제청한 뒤 임명 절차가 진행됐다. 2023년에도 대통령실이 특정 성향 후보에 대한 임명 보류 가능성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이 권영준·서경환 후보자를 제청한 뒤 두 사람 모두 임명됐다.
▲"재제청 요구 법적 근거 없어…위헌 소지도"
법조계에서는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에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건 변호사(법무법인 건양)는 "헌법 제104조 제2항상 대통령의 임명권은 형식적이라는 것이 다수 의견으로 보인다"며 "재제청 요구는 법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위헌적이라고 볼 여지도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도 재제청 요구권이 헌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에는 같은 의견을 보였다. 다만 대통령이 실제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을 경우 이를 강제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짚었다.
김 변호사는 "헌법 문언상 대통령의 반려권이나 재제청 요구권이 명문으로 규정돼 있지는 않으나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임명동의안 제출을 보류하거나 거부할 경우 이를 법적으로 강제할 수단이 없다"며 "이 때문에 과거 정부에서는 공식 거부 대신 사전 협의나 조율을 거치는 관행으로 갈등을 풀어왔다"고 설명했다.
▲추천위 다시 꾸리면 수개월…사법 공백 장기화 우려
재제청 과정에서 후보 추천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는지도 쟁점이다. 법원조직법 제41조의2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대법원장이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구성하도록 하고, 후보자를 추천하면 해당 추천위가 해산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다만 대통령이 제청을 반려한 뒤 기존 추천자 명단에서 다시 제청할 수 있는지, 추천위를 새로 구성해야 하는지는 별도로 정하지 않고 있다.
김 변호사는 "기존 절차가 종료된 이상 국민 천거와 추천위 재구성을 거쳐야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된다"며 "이 경우 최소 수개월의 추가 사법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반려나 재제청 요구는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야기할 것으로 보이고 자제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가 손 후보자 제청을 반려하고 재제청을 요구하기로 결정하면 김성수 후보자 임명동의안만 먼저 국회에 제출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올해 3월부터 이어진 노 전 대법관 후임 공석은 새 후보자 임명 절차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