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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 한미 관계의 민낯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8.20 07:00
수정 2026.08.20 10:15

이재명 대통령(오른쪽)이 지난해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기념 촬영을 마친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이슈 만들기


이란 전쟁의 휴전 양해각서(MOU) 시한이 끝나기 무섭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한국을 도마 위에 올리며 기자들의 마이크를 독점했다. 특유의 거침없는 입담으로 연일 서울을 향해 포문을 열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한국 때리기 시리즈'의 제 1탄은 그의 전매특허 소통 창구인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이었다. 도입부는 늘 그렇듯 "김정은과는 아주 잘 지낸다"는 익숙한 자화자찬이었다. 그러나 진짜 본론은 그 뒤에 숨어 있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를 전격 지시한 배경으로 한국 대통령의 이란 문제 협력 거부를 콕 집어 폭로한 것이다.


속내를 한 꺼풀 벗겨보면 "내가 김정은을 쥐락펴락 잘 관리하고 있으니, 내 말을 듣지 않는 한국쯤이야 훈련을 줄이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의 노골적인 압박에 다름 아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은근하게 말 잘들어라는 압박도 겸하고 있다는 점을 북한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적나라함의 수위를 한층 끌어올린 제 2탄은 백악관 약식 기자회견에서 펼쳐졌다. 이번에도 오프닝은 어김없이 김정은 카드였다.


한 기자가 "김정은이 왜 대화 요청에 응답하지 않느냐"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능청으로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고 누가 그러더냐"며 되받아쳤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고, 대답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솟아냈다. 당초에 김정은이 화제의 중심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정상 간의 내밀한 통화 내용까지 여과 없이 생중계했다. 이란 비핵화 작전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에 한국 대통령이 "노 땡큐(No thanks)"라고 거절했다는 것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과장된 제스처를 곁들이며 쏘아붙였다. "우리는 김정은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주고 있는데, 정작 이란 작전에는 손 하나 까딱 않겠다니 참 기이하지 않은가. 그들이 우리를 돕지 않는데 왜 우리가 한국을 지켜주어야 하는가. 이는 공정함(Fairness)의 문제이며 우리 역시 더는 도와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와 내 논에 물대기


트럼프 대통령의 장황한 발언을 굳이 복기하는 이유는 그의 명확한 속내를 읽어내기 위해서다. 그는 김정은과의 친분을 미끼처럼 던져놓고, 정작 칼끝은 한국 정부의 '비협조'와 '무임승차' 논란을 향해 겨눴다.


어제는 김정은과 절친이라 치켜세우더니, 오늘은 김정은이 한국을 위협하는 위험 세력이고 이를 미국이 막아주고 있다며 말을 바꾼다. 결국 핵심은 북한과의 대화 재개가 아니라, 미국에 협조하지 않는 한국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 토로와 사실상의 방기(放棄) 선언이다.


그런데 서울의 반응은 기묘하기 짝이 없다. 상대는 붉은 줄이 그어진 청구서를 들이미는데, 우리는 엉뚱하게 미북 대화의 낭만에 취해 들떠 있는 모양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긴밀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겠다"며 북미 정상 간 우호 관계가 의미 있는 대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상대는 판을 엎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우리는 옆에서 사랑의 세레나데 박자를 맞추고 있는 꼴이다. 묻는 말에는 엉뚱하게 답하고 자기 편한 대로만 해석하는 ‘동문서답(東問西答)’이자 ‘아전인수(我田引水)’의 극치다.


냉정하게 보건대 이는 명백한 외교 참사다. 정상 간 비공개 통화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해 망신을 주는 것은 동맹 간의 기본적 신뢰가 바닥났음을 보여준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주고받은 친서를 흔들며 북한 이슈를 띄운 적은 있지만, 이는 정상적인 공식 소통 채널이 차단되었던 특수한 상황이었다.


반면 혈맹이라 자부하는 한미 정상 간의 대화가 일방적으로 까발려졌다는 것은 양국의 공식 외교망이 사실상 '먹통'임을 자인하는 셈이다. 이견과 불만이 있었다면 물밑 조율을 통해 사전에 풀었어야 마땅했다. 더욱이 보도에 의하면 지난 5월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있지도 않은 가상의 대화를 지어내며 한국에 대한 불만을 토해냈다는 것인데,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양국의 물밑 외교 채널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9년 6월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 남측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한미간의 기싸움인가?


미국의 압박은 지체 없이 실행에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의 훈련 축소 지시 직후 주한미군 사령관은 판문점 일정을 전격 취소하고 국방부 장관을 비공개 면담했다. 그러자 우리 대통령은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를 다시 강조하며맞받아쳤다. 실무적이고 협력적인 뉘앙스를 담은 '전환'이라는 표준 용어 대신, 빼앗긴 것을 찾아오겠다는 감정적 색채의 '환수'를 굳이 고집했다.


미국의 훈련 축소 압박에 전작권 환수로 맞불을 놓은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남는 것은 위험천만한 안보 공백뿐이다. 미리 정해진 일정에 맞추어 실제적인 전쟁수행능력 특히 북핵 대응능력에 대한 철저한 검증 없이 전작권을 넘겨받는다면,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잡는 돌이킬 수 없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경고등은 이미 사방에서 켜졌다. 대미 투자 지연에 대한 미국의 불만, 호르무즈 해협 지원 외면에 대한 섭섭함, 그리고 친중 노선에 대한 워싱턴의 깊은 불신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트럼프 정부의 거친 거래주의에 왜 굴복해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이익을 뒤로 미루는 국가는 없다. 특히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라면 더더욱 자국 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이 현실을 인정하고, 우리에게 유리한 이익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미래를 위한 우리의 선택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구조는 근본적 변화를 겪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와 전쟁을 함께 하는 동맹 조약으로 다시 뭉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2만 5000여 명의 군사를 파병해 7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피를 흘린 대가로, 첨단 미사일 군사기술과 드론 기술, 전쟁 실전 경험 그리고 자금을 챙기며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못 박았다.


민족이라는 굴레마저 내던지고 언제든 불바다를 만들 수 있는 상대로 우리를 규정한 것이다. 중국 역시 러시아로 기울어진 북한을 붙잡기 위해 지난 6월 시진핑 주석이 방북하여 북한의 비핵화 방패막이를 우회적으로 자처했다. 반면 세계사적으로 가장 성공한 동맹관계라는 한미관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주의와 이재명 대통령의 강대국에 대한 피해의식의 결합으로 깊은 곳에서부터 파열음을 울리고 있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K-컬처의 매력과 세계 최정상급 반도체 경쟁력으로 무장한 대한민국이 번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권위주의 진영의 그늘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미래 세계 질서의 새로운 판도는 자유와 창의, 규범을 공유하는 열린 진영이 승리하게 되어 있다. 트럼프의 거친 청구서 앞에서 감정적 자존심이나 막연한 낭만에 기댈 여유는 없다. 냉혹한 국익의 저울 위에서 동맹의 가치를 치밀하게 계산하고 당당하게 활로를 찾는 진짜 외교가 절실한 시점이다.



글/이인배 한반도미래포럼 수석연구위원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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