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는 사라졌지만 키링은 남았다…가방 밖으로 나온 ‘나’ [가방에 매단 취향③]
입력 2026.08.21 14:00
수정 2026.08.21 14:00
20대 62.5% “키링은 취향의 수단”… 소액 소비로 찾는 일상의 작은 행복
20대 후반 직장인 A씨의 가방에는 산리오의 토끼 캐릭터 우사하나와 게임 ‘별의 커비’의 커비, 리락쿠마 등이 함께 달려 있다. 서로 다른 작품에서 온 캐릭터들이지만,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는 한눈에 드러낸다. 휴대전화 역시 기성품 케이스를 그대로 쓰지 않는다. 레진과 입체 스티커를 이용해 직접 꾸미며 자신의 취향을 더한다.
팝마트 현장.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A씨가 처음부터 가방을 꾸미기 위해 키링을 산 것은 아니다. 그는 “예전에는 열쇠에 키링을 정말 많이 달고 다녔는데, 집 열쇠가 도어록으로 바뀐 뒤부터 가방에 주렁주렁 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열쇠를 찾고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던 물건은 열쇠가 사라진 뒤에도 남았다. 다만 자리를 가방으로 옮기면서 역할은 ‘실용’에서 ‘표현’으로 달라졌다. 같은 디자인의 가방도 어떤 인형과 캐릭터를 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물건이 된다.
실제로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10월 전국 만 13∼69세 남녀 12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0.8%는 키링을 자주 착용한다고 답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착용한다는 응답도 34.0%였다.
특히 20대의 62.5%는 키링을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인식했다. 최근 6개월 안에 키링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48.8%였으며,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디자인(80.7%·중복응답)이었다. 본래의 쓰임보다 어떤 모습이고 자신의 취향과 얼마나 잘 맞는지가 중요해진 흐름이다.
황진주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겸임교수는 이를 소비자가 소유물을 통해 자신을 형성하고 표현한다는 ‘확장된 자아’ 개념으로 설명했다.
황 교수는 “키링 자체는 열쇠고리지만 지금은 작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매개체”라며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캐릭터 브랜드, 색상 등을 달면서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자아상을 가방 밖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키링을 달면 같은 가방도 나만의 가방이 되고, 가방 자체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완성된 상품을 구매한 뒤에도 키링의 종류와 개수, 배열을 직접 선택하는 과정에서 가방은 다시 개인화한다.
말랑키링. 행운의 의미를 더해 구매 욕구를 높였다. ⓒ데일리안 전지원 기자
고가의 상품을 한 번 구매하는 소비가 작은 상품을 여러 차례 구매하는 방식으로 분산됐을 가능성도 있다. 황 교수는 “고가의 일회성 소비에서 소액의 반복적인 소비, 나에게 작은 행복을 줄 수 있는 소비로 분산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키링을 통한 정서적 만족은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트렌드모니터 조사에서 응답자의 60.9%는 취향에 맞는 키링을 달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답했고, 52.4%는 키링이 작은 행복이나 위안을 준다고 평가했다. 가방에 매달린 작은 물건을 보거나 만지는 행위가 짧고 반복적인 만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다만 키링의 인기와 함께 늘어난 가챠·블라인드박스의 반복 구매를 하나의 소비심리로 묶어서는 안 된다. 가방에 단 키링이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면,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에는 불확실성 자체를 즐기는 별도의 구조가 작동한다.
황 교수는 “가챠는 확률과 기대감까지 구매하는 구조”라며 “원하는 상품을 바로 사는 것과 달리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불확실한 상태가 긴장감과 몰입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엇이 나올지 기다리는 기대감과 포장을 여는 순간의 긴장, 원하는 상품이 나왔을 때의 성취감까지 경험적이고 정서적인 가치로 얻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매의 효용이 최종적으로 손에 넣는 상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봉 전후의 감정에도 생긴다는 것이다.
키링은 가방에 달린 뒤 ‘나’를 보여주는 언어가 되고, 캡슐이나 상자를 열기 전에는 결과를 기다리는 경험이 된다. 열쇠가 없어져도 키링이 남은 이유는 그 작은 물건이 더 이상 열쇠만 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키링에는 소유자의 취향과 팬덤, 그날의 기분과 자신을 보여주려는 욕구가 함께 매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