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노란봉투법, 시행령으로 땜질말고 전면 개정해야
입력 2026.08.18 07:00
수정 2026.08.18 08:53
졸속 처리된 법안…모호한 규정으로 논란 ‘자초’
시행령으로 보완하려 하자 위법성 경고 ‘대두’
근본적으로 문제 많아…법 개정이 ‘최선’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인 지난 3월 10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무릇 법률을 제정할 때는 관계자들의 입장과 의견을 충분히 듣고 그들이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법률에 권위가 있고 집행 과정에서도 모순이나 허점을 줄일 수 있다. 만일 이를 무시한 채 국회에서 숫자만 앞세워 졸속 통과시키면 악법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지난해 8월 24일 국회를 통과해 올해 3월 10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 2·3조 개정안)은 그럴 위험성이 높다. 무엇에 쫓기듯 졸속 처리하느라 추상적이고 모호한 규정이 많았는데 막상 시행에 들어가니 어설픔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그 모호함을 시행령으로 보완하려고 하지만 자칫 그런 시도가 불법이나 위법이 된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이럴 바에는 문제 투성이인 노란봉투법 자체를 아예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노란봉투법의 골자는 이렇다. 우선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계약을 직접 맺은 회사뿐 아니라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까지 넓혔다. 또 예전에는 정리해고·구조조정 같은 경영상의 결정 자체는 원칙적으로 노동쟁의 대상으로 인정받기 어려웠지만 노란봉투법은 노동쟁의의 범위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 결정과 사용자의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을 추가했다. 이와 함께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개인별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나누도록 했다.
하지만 시행에 들어가자 본격적으로 문제가 드러났다. 교섭요구 단계에서 교섭안건을 어떻게 특정할 것인지, 노동쟁의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하청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해 원청이 어느 범위에서 대체근로를 할 수 있는지 등이 모호했다. 경영계를 대표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란봉투법에 사용자 개념과 노동쟁의 대상이 너무 폭 넓게 규정돼 있어 정당한 경영 판단까지 노사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실제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중앙노동위원회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잇따라 인정하는 가운데, 기업들은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에 나서는 등 법적 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7월까지 진행된 중노위의 노란봉투법 관련 재심 판정은 총 49건이다.
이 중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된 판정은 29건이었고 18건은 기각, 2건은 취하됐다. 재심에서도 사용자성이 인정되자 한화오션 등은 행정소송을 선택했다. 지난 10일까지 노란봉투법 관련 행정소송 접수는 7건이다. 이 중 기업이 5건, 노동조합이 2건이다. 앞으로도 법적 논란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특히 지난달 14일 삼성전자 초기업 노조가 호남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며 교섭 의제로 삼자, 노동부는 곧바로 "교섭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노동쟁의 대상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고용노동부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해석지침을 보완하는 선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대통령은 지난 11일 다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 기준을 명확히 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다음날인 12일 "시행령·시행규칙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으며 올해 불거진 성과급 교섭까지 포함해 조만간 쟁의대상 기준을 발표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모호한 법률을 시행령 등으로 구체화하려고 하니 국회가 정한 내용을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변경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법적 논란이 생겼다. 입법권과 행정권의 경계 문제다. 무엇보다 모법(母法)에 별도의 위임 규정을 찾기가 힘들다.
경영계나 노동계 모두 명확한 위임 없이 하위 법령으로 법이 보장한 쟁의 범위를 넓히거나 좁힐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입법 단계에서 명확히 했어야 할 기준을 시행 단계에 미루는 바람에 혼란과 갈등의 불씨가 커졌다. 법률이 모호하니까 시행령을 자세하게 만들라고 하지만, 시행령을 자세하게 만들수록 "그렇게 중요한 기준을 왜 국회가 법률로 정하지 않고 행정부가 정하느냐"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헌법 제 75조는 대통령령을 크게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 등 2가지로 정하고 있다. 법률이 정하지 않은 실체적인 권리·의무의 범위를 행정부가 새롭게 설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법제처도 '법률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입법사항을 하위 명령이 규율하면 위임 입법의 한계를 벗어나고 법률 유보 원칙에 위반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중기부, 공정위에 대한 부처 업무보고에서 보고를 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따라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영역은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경우 노동위원회가 어떤 자료를 요구하고 어떤 절차로 판단할 것인가"와 같은 절차적이고 기술적인 사항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서 상당 부분 구체화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원청을 사용자로 볼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기준 자체를 시행령이 새로 만드는 것은 안 된다는 말이다.
지금 노동부로서는 시행령으로 최대한 명확하게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시행령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과 법률을 고쳐야 할 부분을 먼저 구분해야 한다. 가령 '원청의 사용자성'과 '노동쟁의의 범위'처럼 노사 양쪽의 권리·의무를 직접 결정하는 핵심 기준은 국회가 법률로 보다 명확하게 정하고, 시행령은 그 법률을 집행하기 위한 절차와 세부사항에 집중하는 것이 타당하다.
결국 모든 문제의 뿌리는 노란봉투법 자체의 모호성에 있다. 대통령까지 기준을 분명히 하라고 나선 사실 자체가 법의 모호성을 보여 준다.
만일 지금의 구조를 유지한다면 '모호한 법률 → 시행령으로 보완 → 시행령의 위임근거 논란 → 행정지침으로 다시 보완 → 법원에서 최종 판단' 등으로 매우 복잡한 경로를 지나게 된다. 노사 모두 불안하다. 기업 입장에선 "내가 사용자에 해당하는지 모르겠다", 노조는 "어디까지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노동부는 "어디까지 시행령으로 정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게 된다.
그러면 해법은 무엇일까. 원 법률을 다시 손보는 것이 가장 깔끔하다. 전문가들도 시행령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결국 본법을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법에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시행령으로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노동시장의 현실과 맞지 않는 노란봉투법은 시행령 손질만으로 고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모호성과 문제점이 뚜렷하게 확인된 노란봉투법은 대한민국을 '상시 노사분규의 나라'로 만들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경영계와 노동계와 법조계의 의견을 다시 경청하고 이를 반영하여 노란봉투법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 그래서 별칭도 노란봉투법이 아니라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는 의미에서 파란봉투법이나 푸른봉투법으로 바꾸면 어떨까 싶다.
소아마비를 딛고 직업공무원의 정상까지 올랐던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5일 펴낸 '다시 던지는 짱돌, 대한민국 고용노동 개혁시리즈3'에서 "외교를 잘못하면 나라의 주인이 바뀌고 내치를 잘못하면 정권이 교체된다"면서 "노사관계를 예측가능하지 않게 하면 일자리 기반이 무너진다. 사용자의 범위나 교섭 대상이 애매모호하여 노사갈등이 봉기(蜂起)하면 시장의 반란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국민이 궁핍해진다"고 밝혔다. 그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필자만 있지는 않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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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