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세포 시점’으로 찾은 내 안의 자존감,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 [헬로스테이지]
입력 2026.08.06 12:30
수정 2026.08.06 12:31
8월 23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네이버웹툰에서 누적 조회수 35억 회를 올리고 김고은 주연의 드라마로도 성공한 ‘유미의 세포들’이 뮤지컬 무대에 올려졌다. 만화의 컷 구성이나 드라마의 3D 애니메이션 연출 대신, 무대 예술이 선택한 건 ‘전지적 세포 시점’이다. 30대 직장인 유미의 일상을 뼈대로 삼되, 인물의 행동보다 그 행동을 유발하는 내면의 반응과 갈등 자체를 무대 연출의 주연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샘컴퍼니
이야기의 외형은 회사원 유미가 이직을 고민하고, 남자친구 구웅 및 그의 친구 새이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는 전형적인 일상극이다. 하지만 유미의 행동이 촉발되는 순간 무대의 시선은 세포 마을로 전환된다.
무대는 LED 스크린과 레이저, 와이어 연출을 통해 세포 마을의 시각적 공간을 세우고, 그 위에서 배우들이 세포의 성격을 직접 연기한다. 작가 세포의 탭댄스 박자에 맞춰 유미가 타이핑을 하고, 응큼 세포가 주도하는 쇼 형태의 파티가 열리며, 선택의 순간마다 세포들이 모여 맷돌을 굴리는 연출은 관념적인 고민의 과정을 눈에 보이는 동작으로 직관적으로 나타낸다.
이번 각색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원작에 없는 뮤지컬 오리지널 캐릭터 ‘견습세포 109’의 배치다. 고유한 이름도, 정해진 역할도 없이 번호로 불리는 109세포는 프라임 세포인 사랑 세포를 동경하며 마을을 서성인다.
유미가 남자친구 구웅, 그리고 그의 친구 서새이 사이에서 오해를 겪으며 관계의 균열을 맞이할 때, 세포 마을은 대홍수와 이별 시계 작동이라는 비상사태에 직면한다. 이 과정에서 극은 사랑 세포의 복잡한 내면을 입증한다. 지난 이별의 상처와 대홍수의 기억에 사로잡힌 사랑 세포는 유미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오히려 유미에게 자책과 양보를 강요한다.
상실의 공포 때문에 주체성을 깎아내리는 사랑 세포의 모습은 109세포의 여정과 대비를 이룬다. 109세포는 숨겨진 진실을 읽어내는 명탐정 세포와 두려움의 위치를 기억하는 불안 세포를 동반해 마을 밖으로 쫓겨났던 두려움 세포를 복원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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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후반부에 밝혀지는 109세포의 정체는 유미의 생일인 1월 9일을 뜻하는 ‘자존감 세포’다. 이는 자존감이 후천적으로 획득하는 기술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내면에 존재했던 원형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자신의 역할을 모르던 109세포가 제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은, 유미가 자기 삶의 주권을 회복하는 성장 서사와 정확히 맞물린다.
배우들의 역할 분담과 음악적 구조도 이 구도를 차분히 받친다. 유미 역의 티파니 영과 김예원이 현실적인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아주면, 사랑 세포 역의 김소향·유리아, 109세포 역의 최재림·정택운은 가창력과 감정을 실은 넘버로 서사의 밀도를 높인다. 여기에 명탐정, 불안, 출출, 이성 세포 등의 앙상블이 더해져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머릿속 소동을 속도감 있는 리듬으로 만든다.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은 “내 삶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라는 원작의 메시지를 과장된 감정선 없이 전한다. 설렘과 열정뿐만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까지, 내 안의 모든 감정이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해 작동한다는 사실을 무대 위 세포들의 움직임으로 증명한다. 대형 IP의 이름값에 안주하지 않고, 무대라는 매체 특성에 맞춘 시점의 전환과 오리지널 캐릭터 배치로 독자적인 무대 언어를 구축해 낸 수작이다. 8월 23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