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줄고 자율성 잃고…노동자성 확대의 역설 [규제의 청구서③]
입력 2026.08.08 08:05
수정 2026.08.08 08:05
플랫폼 노동 장점 '유연성' 흔들리나
일자리 감소 우려에 라이더도 반대 목소리
해외선 일감 감소·시급 하락 등 부작용
"속도보다 정교한 입법 필요"
서울 시내 식당가에서 배달라이더들이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와 여당이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종사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근로자 추정제 도입 등 노동자성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라이더의 일자리 감소와 근무 자율성 축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플랫폼 종사자와 특수고용직 등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무 제공자를 보호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 근로자 추정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근로자 추정제가 도입되면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플랫폼 종사자는 우선 근로자로 추정되고, 사업자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근로자로 인정될 경우 퇴직금과 연차휴가, 주휴수당, 사회보험 등 기존 노동법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다만 플랫폼 노동은 일반 근로자와 달리 원하는 시간에 앱을 켜고 끄며 여러 플랫폼의 주문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실제 상당수 배달 라이더들은 전업뿐 아니라 부업이나 단시간 근무 형태로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만약 근로자성이 폭넓게 인정되게 된다면 플랫폼 차원에서 근무시간 관리나 업무 지시, 평가 기준 등 보다 체계적인 운영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라이더들의 업무 자율성을 크게 헤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근로자 추정제를 반대하는 라이더들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배달 라이더들이 모인 커뮤니티 배달세상에서는 근로자 추정제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한 라이더는 "시장을 규제하는 법들이 생길수록 오히려 노동자가 설 자리가 좁아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라이더는 "라이더가 근로자로 간주되면 사용자의 지시나 명령이 이뤄져도 무방하다는 것"이라며 "당장 콜 거절 기능부터 사라지고 강제 출근이 이뤄질 수 있다. 이행을 안 하면 지시불이행으로 해고 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법이 바뀌면 플랫폼은 경제적, 법적 리스크가 가중돼 더 이상 현재와 같이 운영할 유인이 전혀 없다. 라이더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고 플랫폼 노동자가 아닌 소속 직원을 두거나 아웃소싱을 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이더들이 시간 자율성을 중시한다는 점은 과거 각종 운영 실험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그동안 배달 플랫폼들은 정규직 라이더 고용과 배달 스케줄제 도입 등 다양한 운영 방식을 시도해 왔다.
그러나 정해진 근무시간과 업무 방식이 플랫폼 노동의 가장 큰 장점인 '자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라이더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했고, 상당수 제도는 축소되거나 폐지 수순을 밟았다.
앞서 배달의민족 물류서비스를 담당하는 우아한청년들은 올해 4월 경기 일부 지역에서 시범 운영 중이던 라이더 전용 배차 시스템 '로드러너'의 '사전 스케쥴 신청' 기능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기능은 라이더가 사전에 배달 가능 시간을 예약해 일정에 따라 운행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기존처럼 원하는 시간에 앱을 켜고 주문을 수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전에 근무 시간을 예약해야 하는 구조여서 플랫폼 노동의 가장 큰 장점인 자율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폐지를 결정했다.
또 우아한형제들은 지난 2022년 정규직 라이더를 고용하기 위해 설립한 자회사 '딜리버리N'을 3년 만에 청산했다.
당시 우아한형제들은 정규직 라이더에게 약 4700만원 연봉을 제시하고, 4대 보험, 성과급, 육아휴직, 유류비 지원 등 혜택도 제공했지만 지원자는 수십 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채용된 인력 상당수도 프리랜서로 전환하면서 운영 막바지에는 정규직 라이더가 10여명 수준까지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자율성을 선호하는 라이더가 적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종사자를 근로자로 추정하게 된다면 배달 라이더가 자율적으로 근무가 가능했던 기존의 운영방식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플랫폼 역시 인건비와 사회보험료 등 비용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등록 라이더 수를 줄이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배달 실적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공급을 관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경우 결과적으로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일하려는 라이더나 부업 형태로 플랫폼을 이용하는 종사자이 설 자리를 잃게 될 수 있다.
이 같은 우려가 기우가 아님은 해외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20년 근로자성 인정 범위를 크게 확대한 'AB5(Assembly Bill 5)'를 시행했다.
이 법은 플랫폼 기업들이 배달 라이더 등을 프리랜서로 분류해 사회보험 가입과 최저임금 지급 의무를 회피한다는 비판 속에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도입됐다.
AB5는 ▲기업의 지휘·감독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기업의 핵심 사업과 무관한 업무를 맡으며 ▲독립된 사업자로 활동하는 등 이른바 'ABC 테스트'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프리랜서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법 시행 이후 프리랜서들의 일감이 줄거나 계약이 끊기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규제가 오히려 생계를 위협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100개가 넘는 직종이 예외 대상으로 추가되면서 AB5는 '누더기 법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일자리의 총량 뿐 아니라 처우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5년 국제 학술지 인포메이션 시스템즈 리서치에 게재된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 워링턴 경영대학원의 치우 량페이 교수 공동 연구진의 분석은 이를 숫자로 증명한다.
연구진이 글로벌 온라인 노동 플랫폼 업워크의 프리랜서 4만1000명의 근무 기록 약 40만건을 법 시행 전후로 장기 추적 분석한 결과, 캘리포니아 AB5 도입 이후 노동자들의 전체 평균 소득은 약 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착시에 불과했다. 플랫폼 기업들이 정규직 전환에 따른 복지 및 보험료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단가를 낮추면서 노동자들의 평균 시급은 오히려 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노동자성 확대가 미칠 파급력이 상당한 만큼 업계에서는 보다 신중한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올 12월까지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 근로자 추정제 입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노동자 보호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자리와 자율성이 함께 위축되지 않도록 현장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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