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거래된 SK하이닉스…국경 넘은 RWA 시장
입력 2026.07.22 07:03
수정 2026.07.22 07:03
하이퍼리퀴드 RWA 미결제약정 29억 달러…비트코인 추월
SK하이닉스 ‘밤 가격’, 다음 날 시초가 방향과 85~90% 일치
가격 발견·담보로 역할 확대…권리 검증과 투자자 보호는 과제
미국 국채에서 출발한 RWA 시장이 주식·원자재·비상장기업의 가격을 24시간 형성하고 금융상품의 담보로 활용되는 독자적인 시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한국 증시가 문을 닫은 밤에도 SK하이닉스 가격은 계속 움직인다.
장소는 한국거래소가 아니라 바이낸스와 하이퍼리퀴드 등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이다.
이들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SK하이닉스 무기한 선물은 미국 반도체주와 인공지능(AI), 고대역폭메모리(HBM) 관련 소식을 국내 증시보다 먼저 가격에 반영한다.
밤사이 형성된 가격은 다음 날 실제 주가가 움직일 방향도 상당 부분 예고했다.
22일 코빗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4일부터 이달 2일까지 21차례의 휴장 구간을 분석한 결과, SK하이닉스 무기한 선물의 야간 움직임과 다음 날 국내 증시 시초가 방향은 85~90% 일치했다.
삼성전자 역시 해외 거래 플랫폼에서 무기한 선물로 거래되고 있다.
한국 대표 기업의 가격이 국내 정규장에만 머물지 않고 밤사이에도 형성되는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실물연계자산(RWA)이 있다.
미국 국채와 펀드 지분을 블록체인에 올리는 데서 시작한 RWA 시장은 주식과 주가지수, 금·은·원유 등 원자재를 기초로 한 무기한 선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시장 규모도 단순한 실험 단계를 넘어섰다.
지난 2일 기준 하이퍼리퀴드의 RWA 무기한 선물 미결제약정은 약 29억 달러로, 같은 플랫폼의 비트코인 무기한 선물 약 21억 달러를 넘어섰다.
미결제약정은 아직 정산되지 않고 시장에 남아 있는 선물 계약 규모다.
하이퍼리퀴드에서는 현실 자산을 기초로 한 선물에 비트코인보다 많은 자금이 쌓인 셈이다.
개별 상품별로는 SK하이닉스 무기한 선물의 미결제약정이 약 2억8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마이크론은 약 2억1000만 달러, 스페이스X는 약 1억8000만 달러, 원유는 약 1억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RWA 무기한 선물은 공식 주가가 없는 기업의 상장 전 예상가까지 거래 대상으로 끌어들였다.
세레브라스와 스페이스X는 증시에 입성하기 전부터 무기한 선물 가격이 형성됐다.
각각 지난 5월과 6월 상장한 뒤에는 해당 상품이 실제 주가를 따라 움직이는 주식 무기한 선물로 전환됐다.
오픈AI와 앤트로픽 등 아직 상장하지 않은 기업에도 무기한 선물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다만 실제 비상장주식이나 지분을 사고파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이 예상하는 기업가치를 하나의 가격으로 만들고, 그 가격의 상승과 하락에 투자하는 파생상품이다.
국채·펀드에서 주식·주가지수·원자재·비상장기업으로 확장되는 RWA 시장의 대표 사례와 역할.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코빗 리서치·쟁글
RWA의 출발점이었던 토큰화 채권도 단순한 투자상품에서 금융 인프라로 역할을 넓히고 있다.
디지털자산 데이터 플랫폼 쟁글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온체인 RWA 시장은 약 313억6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미국 국채와 미국 외 정부채를 합친 정부채권형 자산은 약 159억1000만 달러로 전체의 50.7%를 차지했다.
토큰화 국채는 초기에는 스테이블코인을 국채형 상품에 넣어 이자 수익을 얻는 데 주로 활용됐다.
최근에는 가상자산을 빌릴 때 맡기는 담보와 거래소 파생상품의 증거금,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준비자산으로 쓰임새가 넓어졌다.
RWA가 현실 자산을 블록체인으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가격을 형성하고, 자금을 운용하며 다른 금융상품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시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이 커진 만큼 상품의 구조와 가격을 믿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도 중요해졌다.
같은 국채 기반 토큰이라도 채권 자체를 나타내는 상품과 국채를 담은 펀드 지분은 투자자가 갖는 권리가 다르다.
토큰이 몇 개 발행됐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국채나 주식, 금이 실제로 보관돼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가격의 신뢰도 역시 기초자산에 따라 차이가 난다.
S&P500처럼 기존 선물시장이 거의 24시간 열리는 자산은 외부 가격을 계속 참고할 수 있다.
반면 한국 개별주식은 야간에 현물가격이 끊기고, 비상장기업은 참고할 공식 주가 자체가 없다.
한국 자산의 가격이 국내 투자자 보호 체계가 닿지 않는 역외 시장에서 형성된다는 점도 제도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무기한 선물의 국내 도입 여부와 별개로 이미 역외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시장을 어떻게 지켜보고 무엇을 대비할지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