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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의무 5억, 관계 37억… 경북 영덕이 다시 쓴 지방재정의 방정식

유명준 기자 (neocross@dailian.co.kr)
입력 2026.07.20 10:56
수정 2026.07.20 10:57

인구 3만 2천명 영덕군, 지방소멸 대응 최전선에서 선명한 실적 남겨

일본, 20204년 고향납세 1조 2727억엔 기록…'한 번의 기부' 아닌 '평생의 관계'로

지방 소멸 해법 고민하는 중앙정부·전국 지자체, 영덕 사례 눈여겨 봐야

숫자 두 개를 나란히 놓아보자. 경북 영덕군 주민들에게 거둔 주민세는 약 4억 3000만 원이었다. 지난 해, 영덕이 전국에서 받은 고향사랑기부금은 약 37억 3000만 원으로, 정주 인구가 낸 세금의 여덟 배가 넘는 돈이, 영덕에 주소를 두지 않은 사람들의 손끝에서 모였다. 지방재정을 '거주민 몇 명'으로만 계산해 온 오랜 상식이 이 한 줄에서 무너진다.


더 놀라운 것은 이 37억 3000만 원이 전국 군(郡) 단위를 통틀어 가장 많은 액수라는 사실이다. 인구감소지역 89곳의 평균 모금액이 7억 6000만 원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영덕의 성취가 얼마나 이례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인구 3만 2000명의 작은 군이 대한민국 지방소멸 대응의 최전선에서 가장 선명한 실적을 남긴 것이다.


지난해 3월 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마을이 산불로 전소돼 폐허가 돼 있다ⓒ뉴시스

우연이 아니라 실력이었다


물론 계기는 아팠다. 2025년 3월, 청송에서 옮겨붙은 불길은 서너 시간 만에 25㎞를 삼키며 영덕 해안까지 밀려왔고, 주택 1000여 채가 사라지고 2069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러나 영덕은 이 재난을 슬픔으로만 흘려보내지 않았다. 불이 난 지 이틀 만에 고향사랑기부 긴급 모금이 열렸고, 사이트 접속자는 평소의 스무 배로 뛰었다.


이 속도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영덕은 진작부터 사람을 주민등록표 안에 가두지 않는 지역이었다. 찾아오는 이, 잠시 머무는 이, 지역의 문제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까지 모두 영덕의 힘으로 셈해온 안목이 있었다. 여기에 고향사랑기부 민간 플랫폼 위기브와 손발을 맞춰온 경험이 더해지면서, 재난 이틀 만의 전국 최초 긴급 모금이라는 결과가 만들어졌다. 절박함을 성과로 바꾸는 근육을, 영덕은 이미 단련해두고 있었던 셈이다.


일본은 그 다음을 보여준다


이 대목에서 시선을 이웃 나라로 돌릴 만하다. 2024년 일본 고향납세는 1조 2727억 엔을 기록하며 2년 연속 1조 엔을 돌파했다. 하지만 우리가 배울 것은 그 총액이 아니라, 일본이 '한 번의 기부'를 '평생의 관계'로 바꿔낸 방식이다.


홋카이도 히가시카와정은 기부자를 아예 마을의 '주주(株主)'라 부른다. 특산품만 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숙박권과 지역화폐 포인트를 얹어 실제로 마을을 찾아오게 만들었고, 그렇게 인구 8500명 중 절반이 이주민인 마을이 됐다. 한때 파산했던 유바리시는 기부자와 옛 근무자를 '유바리 라이커스'로 묶어, 언젠가 돌아올 이주 예비군으로 관리한다. 일본이 2019년부터 관계인구를 지방창생의 핵심 축으로 삼은 데는 이런 축적이 있었다.


영덕의 '시즌2'는 이렇게 설계돼야 한다


영덕군은 지난 해 전체 인구수를 웃도는 약 3만 3000명의 새로운 우군이 생겼다. 잿더미 앞에서 영덕을 떠올리며 지갑을 연 이 사람들은 세금 고지서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자산이다. 관건은 산불이 잊힌 뒤다. 재난은 강렬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반짝 모금으로 끝내지 않으려면, 영덕은 이 3만 3000명을 '한 번 도와준 사람'에서 '영덕의 지분을 쥔 제2의 영덕인구'로 끌어올려야 한다.


방향은 세 갈래다. 먼저, 이들에게 거주민에 준하는 지위를 안겨야 한다. 기부자를 영덕의 '주주'로 등록하고 방문 때 지역화폐·숙박·특산 혜택을 연결해 '내 마을'이라는 감각을 심는 일이다. 다음으로, 이 관계를 세금 내는 관계로 익혀가야 한다. 정부가 만지작거리는 생활인구·복수주소제와 맞물리면, 오늘의 기부자는 내일 영덕에 머물고 소비하며 지방재정을 채우는 주체가 된다. 마지막으로, 고향사랑기부를 '재난 특수'에서 떼어내 평상시의 실익과 공익 프로젝트로 옮겨 심어야 한다. 일본 미야코노조시가 재난이 아닌 '아이 키우기 좋은 마을'을 앞세워 195억 엔을 모으고 그 돈으로 보육료와 의료비를 무상화한 것처럼(데일리안), 영덕도 청년·돌봄·바다와 숲의 회복 같은 상시 의제를 지정기부로 엮으면 기부는 해마다 돌아오는 관계가 된다.


이제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응답할 차례다


영덕의 사례가 값진 것은, 지방소멸 대응이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현실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개인 전액 세액공제 한도를 10만 원에서 단계적으로 상향하고 지정기부를 제도의 중심에 세우는 고향사랑기부제 '시즌2'의 청사진이 필요하다면, 그 밑그림은 책상이 아니라 영덕이라는 현장에 이미 그려져 있다. 검증과 정산은 공공이, 기부자 발굴과 현장 확산은 민간이 나눠 맡는 협업의 효능도 영덕이 몸소 보여줬다.


전국의 지자체가, 그리고 지방 소멸의 해법을 고민하는 중앙정부가 영덕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덕의 37억 원은 불행이 남긴 우연한 잔액이 아니다. 오래 벼려온 관계의 안목이 위기의 순간에 터져 나온 성과이자, 잘 돌보면 해마다 다시 여무는 씨앗이다. 대한민국이 지방의 내일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묻는다면, 대답은 그리 멀지 않다. 인구 3만 2000명의 영덕이, 그 답을 먼저 살아내고 있다.


고두환 대표ⓒ방규현 기자

사회적기업 ㈜공감만세 대표이사 고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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