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한국 초연 “지금까지 가장 완성도 높은 버전…케이팝 감각도 살렸다” [인터뷰]
입력 2026.07.20 14:19
수정 2026.07.20 14:19
브로드웨이 이후 8년간 축적한 경험 집약…“서울 주요 배역, 이토록 고른 라인업 처음”
전 세계 관객이 이미 엘사와 안나의 얼굴, 목소리, 감정까지 잘 알고 있다. 뮤지컬 ‘겨울왕국’이 감당해야 하는 가장 큰 숙제도 이 익숙함에서 출발한다. 애니메이션의 상징적인 순간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영화와 다른 규칙이 작동하는 무대 위에서 관객이 처음 만나는 작품처럼 다시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겨울왕국’ 해외 제작진 ⓒ에스앤코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한국 초연을 앞두고 만난 협력 연출 에이드리언 사플, 협력 안무 찰리 윌리엄스, 협력 음악 수퍼바이저 세바스티안 데 도메니코, 협력 피지컬 무브먼트 코디네이터 아담 젭슨은 그 해답을 ‘복제’가 아닌 ‘재해석’에서 찾았다. 세계 공통의 작품성과 캐릭터는 지키되, 한국 배우들이 가진 개성과 공연 문화까지 무대 안에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한국 프로덕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여러 배우가 같은 역할을 맡는 멀티캐스트 시스템이에요. 같은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서로의 연기를 보면서 캐릭터를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새로운 해석을 발견할 수 있죠. 혼자 역할을 준비하면 자기 해석만 참고하게 되지만, 한국에서는 배우들이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고 생각해요”(에이드리언 사플)
세바스티안 데 도메니코 협력 음악 수퍼바이저 ⓒ에스앤코
음악적으로는 한국 배우들이 성장해 온 환경 자체가 한국판의 색이 됐다. 세바스티안은 오디션 당시 배우들에게 작품 지정곡뿐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케이팝(K-POP) 곡을 한 곡씩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배우들의 본능적인 멜로디 감각과 프레이징, 군더더기 없이 감정을 전달하는 깨끗한 창법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한국 배우들의 보컬에는 자연스럽게 케이팝의 영향이 느껴졌어요. 목소리의 톤이나 표현 방식, 선호하는 스타일에서도 그런 색이 있었죠. 그래서 한국 배우들에게 익숙한 스타일을 모두 버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성을 기존 작품의 음악 안에 자연스럽게 녹이고 싶었습니다. 특히 뛰어난 목소리를 가진 30명의 한국 배우가 한꺼번에 노래할 때 만들어지는 소리는 매우 특별하고 독창적이에요”(세바스티안 데 도메니코)
에이드리언 사플 협력 연출 ⓒ에스앤코
뮤지컬 ‘겨울왕국’은 영화보다 긴 러닝타임을 활용해 인물들의 관계와 감정에 더 깊숙이 접근한다. 관객이 카메라의 안내 없이 무대 전체를 바라보는 만큼, 조명도 감정의 흐름과 시선을 조율하는 또 하나의 서사 장치가 됐다.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관객이 볼 곳을 정해주지만, 무대에서는 관객이 모든 장면을 동시에 바라보잖아요. 그래서 조명이 감정의 흐름과 깊이를 활용해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새롭게 추가된 12곡의 넘버도 감정의 흐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줘요”(에이드리언 사플)
그 확장은 성인 관객에게 더욱 또렷하게 다가올 수 있다. 애니메이션이 비교적 어린 관객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면, 뮤지컬은 엘사와 안나가 각각 자신과 타인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한층 더 깊게 들여다본다.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화를 보게 된 어른들에게도 분명 깊이 와닿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겉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라도 영화를 보며 느꼈을 감정을 무대에서 더욱 깊이 끌어내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름답고 솔직하며 인간적인 작품이 탄생했죠”(에이드리언 사플)
찰리 윌리엄스 협력 안무 ⓒ에스앤코
제작진은 배우들이 영화 속 인물을 흉내 내기보다 역할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를 바랐다. 안나 역의 세 배우는 엉뚱한 유머, 언니를 향한 진심, 유쾌함과 풍부한 감정의 조합 등 서로 다른 결을 보여줬다. 엘사 역의 배우들은 품격과 고귀함, 깊은 정서를 공유하면서도 대사를 노래로 해석하고 프레이징을 만드는 방식에서 각기 다른 선택을 내렸다.
“한 안나는 굉장히 독특하고 엉뚱하면서 정말 재미있어서 영화 속 안나처럼 보이기 위해 무언가를 억지로 덧붙일 필요가 없었고요. 또 다른 배우는 언니와의 관계에서 깊은 진심과 따뜻함을 보여줬어요. 세 번째 배우는 두 사람의 장점을 모두 가진 듯한 모습을 가지고 있죠. 엘사 세 배우도 음악적인 해석은 모두 달라요. 관객은 ‘렛 잇 고’(Let it go)를 세 가지의 전혀 다른 해석으로 만날 수 있을 거예요”(에이드리언 사플)
아담 젭슨 협력 피지컬 무브먼트 코디네이터 ⓒ에스앤코
스벤과 올라프는 배우와 캐릭터의 경계가 더욱 복잡한 배역이다. 거대한 퍼펫 안에 몸을 넣고 연기하는 스벤은 기술보다 먼저 체력과 근지구력이 요구된다. 별도의 퍼펫 리허설 주간을 거쳐 손의 움직임부터 새로 익히고, 스틸트를 착용한 뒤 배우의 머리보다 약 75㎝ 앞에 있는 스벤의 머리와 몸통을 단계적으로 결합한다.
“매일 스벤을 연기하는 건 마라톤을 뛰는 것과 같다고 말하곤 해요. 사람은 두 발로 걷는 데 익숙하지만 퍼펫을 조종하려면 손의 움직임부터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훈련해야 하죠. 스벤은 구조상 절대로 뒤를 돌아볼 수 없어서 배우가 공간적 한계를 정확히 이해해야 하고, 다른 배우들도 동선을 배려해야 해요. 크리스토프가 스벤의 목을 흔들어주는 것처럼 퍼펫 혼자 할 수 없는 움직임을 다른 배우가 자연스럽게 도와주기도 합니다. 배우와 퍼펫, 다른 배우들이 함께 만드는 교감이 아름다운 순간을 탄생시키죠”(아담 젭슨)
뮤지컬 ‘겨울왕국’ 해외 제작진 ⓒ에스앤코
한국 초연은 이미 완성된 브로드웨이 작품을 전달받아 조립하는 과정만은 아니다. 오리지널 프로덕션부터 참여한 창작진은 초연 당시 어떤 장면이 실제 객석에서 작동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끊임없이 답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시행착오는 한국 프로덕션의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브로드웨이 개막 후 여러 나라에서 발견한 해석과 기술적 개선이 서울 무대에 집약됐고, 주요 배역의 균형에서도 역대급 라인업을 갖췄다는 평가다.
“한국 공연은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축적한 아이디어와 경험이 모두 집약된 프로덕션이라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저희는 이번 한국 프로덕션이 지금까지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은 버전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나라에서 뛰어난 배우들이 이 역할들을 맡았지만 서울처럼 주요 배역 전체가 이토록 고르게 뛰어난 라인업을 갖춘 경우는 제 기억에 없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찾아본 한국 공연 시장의 규모는 브로드웨이에 견줄 만큼 엄청났어요. 뮤지컬을 이토록 사랑하는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대됩니다. 온 가족이 함께 오세요. 멋진 굿즈(MD)도 정말 많아서 아이들이 부모님을 더 좋아하게 될 겁니다(웃음)”(에이드리언 사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