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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도구삼아” 머릿속 상상력을 스크린에 펼치는 시대 [누구나, 시네마③]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7.19 13:43
수정 2026.07.19 13:43

CJ ENM 등 대형 제작사도 뛰어든 'AI 하이브리드 영화'

제작비 50만 원, 제작 기간 3주. 이 조건으로 완성된 단편영화가 올해 칸국제영화제 기간 중 열린 AI 영화 전문 국제 시상식 'AI 필름 어워즈 칸 2026'(AI Film Awards Cannes 2026) 공식 선정작에 이름을 올렸다. 연출자는 영화가 아닌 공학을 전공했다.


'메신저'·'재난문자'·'춘' 포스터ⓒ


올해 상반기, 영화 전공과 무관한 이력을 가진 창작자들의 AI 영화가 잇따라 해외 영화제 무대에 올랐다. 광고회사 HSAD 소속 박동화 AI 디렉터가 만든 SF 스릴러 단편 '메신저'는 뉴욕 필름 어워즈 2026을 포함해 글로벌 영화제 5곳에서 최우수 AI영화상을 받았고, 'AI Film Awards Cannes 2026' 공식 선정작에도 이름을 올렸다. 러닝타임 8분 5초의 이 작품은 기획부터 촬영·편집까지 약 2개월간 전 과정을 100% 생성형 AI로 완성했다. 박 디렉터는 광고 업계에서 쌓은 스토리텔링 경험을 더 긴 호흡의 서사로 확장해보고 싶었다고 수상 소감에서 밝혔다.


KBS에서 10년간 PD로 활동한 김민정 감독의 AI 웹시리즈 '춘'(CHOON)도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2025년 뉴욕영화제를 시작으로 프랑스, 영국, 인도, 스웨덴 등 8개국 국제영화제를 잇달아 휩쓸었는데, 대부분 'AI 기술 부문'이 아닌 일반 경쟁 부문에서 수상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기술 시연을 넘어 서사와 연출로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공학 전공자인 안태진 감독은 100% 생성형 AI로 만든 단편 '재난문자2: 지하철'을 제작비 50만 원, 제작 기간 약 3주 만에 완성했고, 올해 칸국제영화제 기간 중 열린 AI 영화 전문 국제 시상식 'AI 필름 어워즈 칸2026' 공식 선정작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생성형 AI가 영화 제작 환경을 바꾸고 있다는 진단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미지 생성부터 영상 제작, 편집, 업스케일링까지 하나의 플랫폼에서 처리할 수 있는 올인원 AI 영상 제작 도구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과거 수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리던 제작 공정이 대폭 단축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AI 영상 제작 도구를 활용하면 2분 분량 뮤직비디오는 6시간, 10분 내외 단편은 일주일, 장편영화도 12~16주 안에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파트' 포스터ⓒCJ ENM

대형 제작사도 예외는 아니다. CJ ENM이 지난 4월 30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 '컬처 토크'에서 공개한 AI 하이브리드 영화 '아파트'는 총 제작비 5억 원, 촬영 기간 4일로 완성됐다. 연출을 맡은 정창익 CJ ENM AI스튜디오팀장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제작했다면 최소 5배 이상, 약 25억 원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백현정 CJ ENM 콘텐츠이노베이션 담당은 장르와 소재에 따라 비용 구조 편차가 커 일률적인 수치화는 신중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해외에서도 흐름은 비슷하다.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 7관왕을 차지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러너웨이(Runway)의 생성형 영상 도구로 그린스크린 촬영 장면을 구현해, 소규모 제작진도 대형 포스트프로덕션 업체와 경쟁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란 감독 애쉬 쿠샤는 반정부 시위를 다룬 영화 '드림스 오브 바이올렛츠'(Dreams of Violets)를 기존 CGI 기술로는 수백만 달러가 들었을 작업을 2000달러 이하로 줄였다.


이 같은 변화는 정규 영화 교육을 받지 않은 창작자들에게 특히 체감된다. 대학생 영화 콘텐츠 제작 크루 온더플로어가 필름포럼과 함께 지난달 연 'B전공자 영화제'가 그 단면을 보여준다. 20명이 넘는 크루원 중 영화 전공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이 단체는 비전공자 창작자들의 작품만을 모아 상영했다. 영화제 운영진은 유튜브나 온라인 클래스로 촬영·편집 기법을 익힐 수 있게 됐고, 생성형 AI가 예산 제약이 있는 장면을 구현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밝혔다. 실제로 AI를 활용해 제작한 영화를 접했을 때, 부자연스러울 거라는 예상과 달리 완성도가 높아 놀랐다는 것이다.


상영작 중 하나인 '파프리카 청춘이다'를 연출한 이수현 감독(이화여대 국문과)도 비슷한 경험을 전했다. 감독을 포함한 스태프 전원이 비전공자였던 만큼 프리 프로덕션부터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전 과정이 도전이었는데, 동아리 선배와 유튜브 강의, 챗GPT를 '선생님' 삼아 하나씩 해결해나갔다는 것이다. 학교 전공이나 사설 교육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온라인 학습과 AI 도구만으로 장편 수준의 완성도를 낼 수 있게 된 셈이다.


현업에서 체감하는 온도도 비슷하다. 뮤직비디오를 연출해 온 SNP필름 이유영 감독은 AI가 가장 크게 도움이 되는 영역으로 스토리와 편집을 꼽는다. 특히 예전에는 촬영을 마친 뒤 후반 작업으로 편집한다는 순서가 당연했다면, 이제는 촬영 자체를 생성형으로 만든다는 전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평소 영화 연출도 해보고 싶다고 밝혀온 그는, 언젠가 영화를 만든다면 AI를 전면적으로 활용할 의향이 있다며 이 흐름을 지금은 '과도기'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칸 영화제도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올해 칸 필름마켓은 처음으로 AI 관련 산업 행사를 열었고, 구글·오픈AI·엔비디아 같은 기술 기업들이 칸을 찾았다. '블랙 스완'의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구글 딥마인드와 함께 AI와 실사를 결합한 단편을, 최연소 황금종려상 수상 이력이 있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다큐멘터리 '존 레논'의 10%를 AI로 제작해 선보였다.



틸리 노우드ⓒ틸리 노우드 SNS


물론 이런 흐름이 논란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애쉬 쿠샤 감독은 전통적인 영화제들이 여전히 AI 작품을 다루길 꺼린다고 말한다.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라는 우려와 함께, 예술적 무결성이 손상될 수 있다는 반발도 여전하다. 지난해 10월 데뷔한 AI '배우' 틸리 노우드를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미국 배우조합 SAG-AFTRA는 창의성이 인간 중심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냈고, 여러 배우가 공개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냈다. 시장조사업체 딜로이트는 2025년 TMT(기술·미디어·통신) 전망 보고서에서, 미국·유럽의 대형 스튜디오들이 콘텐츠 창작 영역에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생성형 AI에 제작 예산의 3% 미만을 할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AI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국내 인사조차 "손쉬운 창작"이라는 통념에는 선을 긋는다. 신철 BIFAN 집행위원장은 프롬프트 몇 줄만 넣으면 자동으로 훌륭한 영상이 만들어진다는 이른바 '딸깍'의 신화는 완벽한 환상이라고 잘라 말한다. AI 영상 창작을 직접 경험해본 창작자라면 누구나, 창작자의 명확한 비전과 엄청난 노력의 투여 없이는 결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AI를 활용해 이미지를 다듬고 서사를 구축하는 행위가 붓을 들고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전통적 예술 창작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며, AI라는 도구를 다루는 인간의 창작적 고뇌와 예술성에 방점을 찍었다. 그가 AI를 기존 영화 제작·배급·관람이라는 '주엔진'을 대체할 경쟁자가 아니라 개인의 상상력을 스크린 위에 구현시켜주는 '보조엔진'으로 규정하며 적극적인 활용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회의론과는 결이 다른, AI를 진지한 창작 도구로 세우기 위한 반박인 셈이다.


생성형 AI는 개인의 상상력을 실제 영상으로 구현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혁신적으로 줄여준 셈이다. 비전공자들의 잇따른 해외 영화제 수상과 제작비의 극적인 절감은 자본과 전공이라는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있던 수많은 상상력에게 스크린으로 향하는 티켓을 쥐여주었다. 물론 예술적 무결성에 대한 논란과 전통 업계의 신중론이 여전히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AI를 단순한 '대체재'가 아닌 창작자의 비전을 확장하는 '강력한 보조도구'으로 바라보는 시각 또한 빠르게 힘을 얻고 있다. 기술이 진입장벽을 낮추는 속도는 분명하지만, 그 문이 열린 자리에서 무엇을 만들 것인가는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아 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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