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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영화과를 나와야 하나요?"…다양해진 스크린의 출발선 [누구나, 시네마①]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7.17 13:42
수정 2026.07.17 13:42

전공 불문, 스마트폰 촬영부터 온라인 클래스까지

영화감독의 출발선은 더 이상 영화과만이 아니다. 국어국문학과, 식품영양학과, 물리학과, 역사학과 등 서로 다른 전공을 거친 창작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과 창작 커뮤니티, 생성형 AI까지 제작 환경이 빠르게 변하면서 충무로를 향하는 길 역시 하나의 공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케인 파슨스ⓒ뉴시스/AP


영화감독이 되는 길은 비교적 정형화돼 있다. 영화 관련 대학 학과나 연출·영상 전공,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등에서 영화 제작을 배우고, 단편영화를 연출해 영화제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뒤 제작사와 투자사를 만나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한다. 영화과와 영화학교, 영화제는 오랫동안 한국 영화계의 신인 감독을 길러내는 인재 양성 시스템으로 기능했고, KAFA는 장준환, 최동훈, 민규동 감독 등을 배출하며 대표적인 감독 산실로 자리 잡았다. 봉준호 감독은 대학 시절 영화 동아리 활동과 단편영화 제작을 통해 작품 세계를 다졌고, 나홍진 감독은 공예를 전공한 뒤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진학했다. 출발은 조금씩 달랐지만 전문 교육과 단편 제작, 영화제를 거쳐 장편영화로 나아가는 흐름은 오랫동안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데뷔 공식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 ‘데뷔 공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제 영화를 향하는 통로는 하나가 아니다. 유튜브에는 촬영과 조명, 편집 기술을 알려주는 콘텐츠가 넘쳐나고, 온라인 클래스에서는 시나리오와 후반 작업까지 배울 수 있다. 대학 영화동아리와 창작 커뮤니티에서는 전공과 관계없이 팀을 꾸려 장비를 대여하고 제작비를 나누며 영화를 만든다. 스마트폰 카메라와 대중화된 편집 프로그램만으로도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에는 학교와 현장이 영화를 배우는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온라인 플랫폼과 커뮤니티까지 그 역할을 함께 나누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창작 환경의 변화는 해외에서 먼저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2005년생 케인 파슨스(Kane Parsons) 감독은 10대 시절 유튜브에 공개한 공포 영상 시리즈 '백룸'으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했고, 이를 바탕으로 A24 장편 영화 연출 기회를 얻었다. 영화학교나 기존 제작 시스템이 아닌 온라인 플랫폼에서 먼저 연출력과 팬덤을 증명한 뒤 영화산업으로 진입한 사례다. 창작자가 성장하는 경로가 기존 영화산업 밖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환경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대학생 영화 콘텐츠 크루 '온더플로어' 운영진은 "예전에는 영화를 배우려면 관련 전공으로 진학하거나 사설 교육기관을 찾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며 "유튜브나 온라인 클래스를 통해 촬영 기법과 편집 프로그램을 익히고, 학교 동아리나 창작 커뮤니티에서는 비전공자들끼리 크루를 꾸려 제작비를 나누거나 장비를 대여하며 함께 작품을 만드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변화들이 쌓이면서 비전공자들도 자신만의 시선과 개성을 담은 작품을 만들고 선보일 기회가 훨씬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영화를 공개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영화제나 학교 상영회가 사실상 주요 발표 무대였다면, 이제는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독립 상영회, 창작 커뮤니티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뿐 아니라 영화를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 방식까지 다양해진 것이다.


‘B전공자 영화제’를 주최한 온더플로어 운영진은 이러한 변화를 '창작 생태계의 확장'으로 바라봤다. 운영진은 "스마트폰과 대중화된 편집 프로그램 덕분에 기술적인 장벽은 확실히 낮아졌고, 이제는 영화에 대한 애정과 자신만의 뾰족한 취향이 더 중요해진 것 같다"며 "영화를 만드는 일부터 알리는 일까지 창작 생태계가 다양해졌고, 영화에 대한 진심만 있다면 누구나 적극적인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임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생성형 AI도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도구로 떠오르고 있다. 콘셉트 이미지 제작과 스토리보드, 시각효과, 사운드 작업 등 기존에는 적지 않은 비용과 인력이 필요했던 작업을 개인 창작자도 시도할 수 있게 되면서 제작 환경은 한층 넓어지고 있다.


다만 영화를 배우는 통로가 다양해졌다고 해서 상업영화 연출 기회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장편영화는 수십억 원 규모의 제작비와 투자, 배급, 마케팅이 맞물리는 산업인 만큼 여전히 검증 과정과 제작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창작자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지만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는 문은 아직 좁다"며 "기존 제작 네트워크와 산업 구조 안에서 작품성과 흥행 가능성을 함께 입증해야 하는 만큼 온라인에서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이유만으로 장편 연출 기회를 얻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배경의 창작자가 등장하는 건 한국 영화계에는 오히려 좋은 신호"라며 "지금은 사례가 많지 않더라도 창작자의 출발선이 다양해질수록 그 안에서 새로운 성공 사례가 나올 가능성도 커진다. 중요한 건 영화를 시작하는 경로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투자 위축과 제작 감소로 신인 감독의 데뷔 기회는 이전보다 줄어들고 있다는 진단이 이어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영화를 배우고 만드는 저변은 넓어지고 있다. 영화는 더 이상 특정 학교나 정해진 코스를 거쳐야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직 그 길이 곧바로 충무로의 메인스트림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영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출발선이 생겨나고 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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