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 읽는 나라, 20대만 역주행…'텍스트힙' 진짜일까
입력 2026.07.19 04:00
수정 2026.07.19 04:00
경험과 취향으로 독서 소비… 리커버·굿즈 열풍
도서관 대출은 최하위… 지적 허영 속 긍정론도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성인 독서율이 역대 최저로 주저앉은 가운데 유독 20대만 역주행하고 있다. 독서를 취향으로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다. 출판업계에서도 새로운 독서 문화에 호응하고 있다. 새로운 표지의 리커버판을 출시하고 굿즈를 만드는 등 트렌드에 발 빠르게 올라타는 모양새다.
15일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 연간 종합독서율은 38.5%로 나타났다. 2023년보다 4.5%포인트 떨어진 역대 최저 수준이다. 20대만 75.3%로 0.8%포인트 올랐다. 60대(17.4%)와 비교하면 무려 네 배에 달하는 수치다.
최근 2030세대가 만들어가고 있는 독서 문화는 이전과 다르다. 독서를 '감상'이 아닌 '경험'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예쁜 카페를 찾듯 독립서점에 가고 소품샵에서 문구를 고르듯 책을 산다. 책의 내용과 사는 과정을 모두 따진다.
달라진 분위기는 소설 분야에서 먼저 드러났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소설 판매는 전년 대비 19.3% 늘었다. 종합 베스트셀러 10위 중 8권이 소설로 집계되기도 했다. 독자들의 선택 기준도 '장르'가 아닌 '팬덤'으로 이동했다. 1위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3월 영화 개봉과 함께 역주행했다. 3위 '자몽살구클럽'은 싱어송라이터 한로로의 세 번째 EP와 연결된 소설이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유튜브 채널 민음사TV가 소개하면서 신간이 아닌데도 6위에 올랐다.
그런 만큼 도서 디자인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위즈덤하우스 '위픽'은 단편소설 한 편을 책 한 권으로 만들었다. 크기는 시집에 불과하지만 하드커버 양장으로 제본했다. 표지에는 소설 속 문장을 넣었다. 2023년 시작한 이 시리즈는 지난해 100권을 넘겼다.
기존 책에 새로운 표지를 입히는 '리커버'도 판매 전략이 됐다. 지난 1년 동안 교보문고 소설 베스트셀러에 오른 양귀자의 모순과 한강의 채식주의자, 구병모의 파과, 최진영의 구의 증명이 모두 리커버판으로 출시됐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은 리커버 출간 직후 종합 3위에 올랐다. 위즈덤하우스 등 5개 출판사가 연 리커버 팝업에는 주말 이틀 동안 무려 5000명이 몰렸다.
시각적 요소가 무기가 되면서 굿즈 시장도 커졌다. 다산책방 '다소 시리즈'는 손바닥만 한 판형에 가방에 매달 수 있는 고리를 냈다. 스티커로 표지를 꾸미는 '책꾸'도 가능하다. 문학동네 계열 난다는 일반 시집의 3분의 1 크기인 휴대용 시집 '더 쏙'을 내놨다. 소장과 휴대를 겨냥한 설계다.
가격이나 편의는 더 이상 소비를 결정하는 잣대가 되지 않는다. 책을 찾아 나서는 일 자체가 놀이다. 올해만 2월 군산 북신을 시작으로 제주북페어, 더현대 서울의 디어마이리더 북페어, 마포인디북페스타가 이어졌다.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는 18개국 538개사가 참가했고 11월 언리미티드에디션은 지난해 251팀이 참여했다. 독립서점도 발굴 대상이다. 동네서점 지도 기준 운영 중인 독립서점은 지난 3월 처음 1000곳을 넘어섰다.
독서가 혼자 하는 취미라는 것도 옛말이다. 민음사는 지난 4월 유료 멤버십 '민음북클럽' 16기를 모집했다. 정규 오픈 1시간 만에 1만명이 몰려 서버가 다운됐다. 모집 인원을 지난해 2만명에서 2만5000명으로 늘렸는데도 첫날 마감됐다. 가입비 5만원을 내면 독서 모임과 회원 전용 커뮤니티를 쓸 수 있다. 누적 회원은 11만명이다.
열기가 닿지 않은 곳도 있다. 도서관이다. 빌린 책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인증할 거리가 되지 않는다. 도서관 정보나루 집계에서 올해 상반기 청소년 및 성인 대출은 100명당 6.49권으로 최근 3년 중 가장 적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인 2024년 상반기보다 18만여건 줄었다. 대출 기반 독서율에서 20대는 모든 지역에서 최하였다. 사는 책은 늘고 빌리는 책은 줄어난 것이다.
보여주기식 소비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작 읽는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다. 독서로 이어진 만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유행을 문화의 자연스러운 순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20대 여성 김모씨는 텍스트힙을 독서 문화의 입구로 봤다. 김씨는 "지적 허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독서 자체가 각광받다 보면 그중에서 정말 책을 읽는 사람도 늘어난다"며 "어떤 식이든 관심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국제 도서전을 방문했던 20대 여성 박모씨도 같은 생각이다. 박씨는 "설령 굿즈를 사러 온 것이라도 책에 대한 관심이 곁다리로 늘어난 것 아니냐"며 "문화란 원래 유행의 물결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주변 출판계 관계자들도 그렇게라도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에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효용을 짚는 목소리도 있다. 30대 남성 이모씨는 "독서는 트렌드에 편승하면서도 자기만의 색과 세계관을 가질 수 있는 취미라 좋다"며 "글을 읽을 때 집중하다 보면 숏폼 같은 짧은 콘텐츠에 무뎌진 감각을 환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