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는 왜 GC녹십자 대상포진 백신을 샀나…'치매' 시장 큰 그림
입력 2026.07.10 14:09
수정 2026.07.10 14:17
원금 272억의 17배 대박, 미국 릴리가 선택한 가치
'알리글로' 뒤 이을 고마진 SCIG 신사업 속도 낸다
GC녹십자 본사 ⓒ녹십자
GC녹십자가 일라이 릴리에 미국 관계사 큐레보 백신을 넘긴 돈으로 '알리글로'에 이은 신사업에 속도를 낸다.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까지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가 몸값을 끌어올렸다. 녹십자는 이 자금을 차세대 혈액제제와 프리미엄 백신에 투입할 계획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녹십자는 지난 9일 일라이 릴리로부터 큐레보 매각 대금 일부인 2868억원을 수령했다. 규제당국 승인 등 거래 종결 조건이 채워지면서 계약금 중 확정된 몫이 먼저 들어왔다. 나머지 219억원도 조만간 유입될 예정이다.
이번 매각으로 녹십자가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은 최대 4620억원이다. 우선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업프론트)이 3087억원이다. 나머지 1533억원은 큐레보 백신이 정해진 매출 목표를 달성해야 받는 마일스톤이다. 상업화 성과에 달린 조건부 대금이다. 녹십자가 큐레보에 넣은 원금은 272억원 수준이다. 최대 금액 기준으로 17배를 회수하는 셈이다.
앞서 한울회계법인은 녹십자가 보유한 큐레보 지분 가치를 2억6489만~3억3955만 달러로 산출했다. 일라이 릴리와 합의한 3억392만 달러는 이 범위의 중상단이다. 현재 큐레보는 임상 2상을 마치고 3상을 준비하는 단계다. 허가도 매출도 없는 개발 초기 회사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대우다.
이런 대우가 가능했던 건 큐레보 대상포진 백신의 숨겨진 가치 덕분이다. 최근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해외 연구가 잇따랐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탠퍼드 의대 연구팀의 연구다. 연구팀은 이 백신을 맞은 노인의 치매 발병 위험이 7년간 20% 낮았다는 결과를 지난해 4월 네이처에 실었다. 일라이 릴리 역시 부작용이 적은 큐레보 백신으로 접종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다. 대상포진을 넘어 치매·뇌졸중 같은 노년 질환 예방 시장까지 노리는 것이다.
녹십자로서는 반가운 거래다. 녹십자는 사업 구조를 고마진 제품 중심으로 다시 짜고 있다. 국내 혈장제제와 백신 시장은 좁은 데다 약가를 판가에 반영하기 어려워 수익성이 원재료 값에 휘둘린다. 활로는 판가가 높은 수출 제품이다. 그 핵심이 미국 시장에 안착한 면역글로불린 알리글로다.
알리글로는 정맥에 투여하는 정맥주사형(IVIG) 제품이다. 녹십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피하로 투여하는 SCIG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 한다. SCIG는 알리글로보다 마진이 높은 고부가 제품이다. 녹십자는 오창공장에 SCIG 전용 생산 라인을 새로 깔고 임상 3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걸림돌은 돈이다. 공장 증설부터 임상까지 모두 대규모 자금이 소요된다.
녹십자 재무 여력은 빠듯하다. 지난해 연결 매출 1조9913억원, 영업이익 691억원으로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자회사 지씨셀의 영업권 손상차손으로 최종적으로는 순손실 297억원을 봤다. 신약 투자와 재고에 돈이 묶여 잉여현금흐름(FCF)도 3년째 마이너스다. 1분기 말 순차입금은 8716억원, 부채비율은 112.1%다. 큐레보 매각 대금이 신사업 실탄으로 요긴한 이유다.
수익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라이 릴리가 큐레보의 기존 계약을 그대로 넘겨받았다. 백신이 상업화되면 녹십자는 생산 물량 일부를 위탁생산(CMO)으로 맡고, 매출에 연동한 로열티도 받는다. 지분을 넘기고도 대상포진 백신 사업의 한 축을 쥐고 가는 구조다. 매각 대금에 마일스톤과 CMO 매출, 로열티까지 얹힌다.
장부상에도 이점이 있다. 녹십자가 보유한 큐레보 전환우선주(CPS)는 시세에 따라 가치가 출렁이는 '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FVTPL)'이라는 계정으로 잡혀 있었다. 큐레보 몸값이 오르내릴 때마다 녹십자 순이익도 함께 흔들렸다는 뜻이다. 매각으로 지분이 현금화되면서 순이익을 흔들던 변동 요인도 사라졌다.
녹십자 관계자는 "큐레보 매각은 대상포진 백신 파이프라인의 기술력과 상업화 가능성을 인정받은 거래로, 회계적 변동과는 무관하다"며 "대상포진 백신의 치매·뇌졸중 예방 가능성은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연구 주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래 대금은 일라이 릴리가 이 백신의 장기적 시장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