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란 시대 열렸다’ 될성부른 떡잎에서 메이저 퀸까지
입력 2026.06.29 08:58
수정 2026.06.29 09:39
KPMG 여자 PGA챔피언십서 13언더파 275타로 우승
아마추어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 밟으며 메이저 퀸 등극
커리어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한 유해란. ⓒ AP=연합뉴스
‘될성부른 떡잎’에서 마침내 세계 골프의 중심에 우뚝 섰다. 대한민국 여자 골프의 유해란(25, 다올금융그룹)이 생애 첫 메이저 왕관을 쓰며 통산 4승 고지를 밟았다.
유해란은 29일(한국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의 헤이즐틴 내셔널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 ‘KPMG 여자 PGA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를 적어냈다.
최종 합계 13언더파 275타를 기록한 유해란은 개인 통산 LPGA 투어 4승이자 생애 첫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유해란에 이어 윤이나(-11)가 뒤를 이어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유해란은 학창 시절부터 한국 골프계를 뒤흔든 대형 유망주였다.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로 출전해 단체전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같은 해 국내 최고 권위의 강민구배 한국여자아마추어 골프선수권대회를 제패하며 일찌감치 ‘넘버원’ 자리를 굳혔다. 175cm의 당당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교한 아이언 샷과 탄탄한 기본기는 주니어 시절부터 성인 프로 선수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유해란의 등장은 프로 무대에서도 파격 그 자체였다. 2019년 만 18세 나이에 초청 선수로 출전한 KLPGA 투어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덜컥 우승을 차지하며 골프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우승으로 정규 투어 직행 티켓을 확보한 유해란은 이듬해인 2020년, 공식 루키 시즌에 또다시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국내외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던 2020시즌, 유해란은 상금왕 김효주에 이어 상금 랭킹 2위(약 6억 2800만 원)에 오르며 KLPGA 신인왕을 차지했다. 2021년 2승, 2022년 1승을 추가하며 국내 무대 통산 5승을 거둔 유해란은 한국 무대가 좁다는 듯 세계 무대로 눈을 돌렸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모이는 ‘지옥의 레이스’ LPGA 퀄리파잉(Q) 시리즈 역시 유해란에게는 통과의례에 불과했다. 2022년 12월 열린 Q-시리즈에서 유해란은 8라운드 144홀의 대장정 끝에 단독 1위로 수석 통과하며 한국 선수로는 이정은6(2018년), 안나린(2021년)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메달리스트 영예를 안았다.
커리어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한 유해란. ⓒ AP=연합뉴스
2023년 LPGA 투어에 본격 데뷔한 유해란은 곧바로 연착륙에 성공했다. 데뷔전이었던 드라이브온 챔피언십에서 공동 7위에 오르며 예사롭지 않은 출발을 알렸고, 세계 최고의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도 8위에 오르며 큰 무대 체질임을 증명했다.
백미는 10월에 열린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이었다. 당시 최종 라운드 전반 홀에서 보기 2개를 범하며 흔들리는 듯했던 유해란은 후반 9개 홀에서만 무려 6언더파(29타)를 몰아치는 신들린 샷감으로 생애 첫 LPGA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러한 강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23시즌 LPGA 투어 신인왕을 거머쥐어 한국 골프의 자존심을 다시 세웠다.
많은 선수가 신인왕 수상 이후 이른바 ‘소포모어 징크스(2년 차 징크스)’에 시달린다. 낯선 미국 환경과 매주 이어지는 장거리 이동, 그리고 상대 선수들의 집중 견제 때문이다. 그러나 유해란의 사전엔 슬럼프란 단어가 없었다. 2024년 고진영과의 피 말리는 연장 혈투 끝에 FM 챔피언십을 제패하며 통산 2승을 달성했고, 세계 랭킹을 7위까지 끌어올리며 명실상부 톱클래스 반열에 올랐다.
2025시즌도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지난해 5월 블랙 데저트 챔피언십에서 2위 그룹을 무려 5타 차로 따돌리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통산 3승을 기록하더니, 기어코 이번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는 화룡점정을 찍었다.
커리어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한 유해란. ⓒ AP=연합뉴스
이번 우승으로 유해란은 메이저 우승의 아쉬움을 완벽하게 씻어냈다. 유해란은 2024년 셰브론 챔피언십 5위, 에비앙 챔피언십 5위,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공동 9위 등 메이저 대회 때마다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지만, 정작 우승 문턱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사흘 내내 선두권을 유지한 뒤, 최종일 승부처마다 컴퓨터 같은 아이언 샷과 정교한 퍼트로 경쟁자들의 추격 의지를 완벽하게 꺾어놓았다.
유해란의 가장 큰 무기는 기복 없는 ‘꾸준함’이다. 2023년 US여자오픈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만 10개 대회 연속 컷 통과 행진을 벌였을 만큼, 코스 세팅이 까다로운 메이저 무대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탄탄한 하체에서 비롯되는 드라이버 샷의 안정감과 그린 적중률 톱클래스를 자랑하는 송곳 아이언은 투어 내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여기에 투어 4년 차에 접어들며 장착한 노련한 경기 운영 능력과 위기 상황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포커페이스는 그를 난공불락의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아마추어 무대 평정, KLPGA 신인왕, LPGA Q-시리즈 수석, LPGA 신인왕, 그리고 마침내 달성한 메이저 퀸의 자리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유해란은 이제 세계 랭킹 1위 등극을 정조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