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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다음은 어디일까…커지는 스페인, 깨어난 일본, 버티는 한국 [주류가 된 비영어권②]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6.27 14:01
수정 2026.06.27 14:01

스페인어권 제작 급증·일본 실사 약진·인도 내수 파워

“비영어권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다음 성공 사례는 어느 국가에서 나올 것인가”


'오징어 게임'의 성공 이후 세계 콘텐츠 시장의 질문은 바뀌었다. 한국 콘텐츠가 가능성을 본 글로벌 플랫폼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세계 곳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스페인어권은 거대한 언어권을 무기로 세를 넓히고 있고, 일본은 애니메이션과 게임 IP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인도는 압도적인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으며, 중동은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투자 허브를 노리고 있다. 비영어권 콘텐츠 시대가 열리자, 경쟁의 무대도 한층 넓어졌다.


'종이의 집' ·'도쿄 사기꾼들' ·'센강 아래'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넷플릭스


실제로 한국 콘텐츠의 위상은 여전히 견고하다. '오징어 게임' 이후에도 '더 글로리', '중증외상센터', '폭싹 속았수다' 등 한국 작품들이 글로벌 시청 순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 옴디아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넷플릭스 비영어권 콘텐츠 시청 점유율에서도 한국어 콘텐츠는 8.71%(81억9000만 시간)로 1위를 기록했다. 문제는 한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한국이 개척한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들이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 콘텐츠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는 곳은 스페인어권이다. 글로벌 미디어 분석 업체 옴디아(Omdia)의 2024년 상반기 넷플릭스 데이터에 따르면 비영어권 콘텐츠 시청 점유율은 한국어 8.71%(81억 9000만 시간)에 이어 스페인어가 7.11%(66억 9000만 시간)로 바짝 뒤를 쫓았다. 스페인어 시청 시간은 프랑스어·독일어·포르투갈어를 모두 합친 것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작 구성에서도 이 추격은 뚜렷하다. 앰피어 애널리시스에 따르면 2025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TV 시즌 중 비영어권 비중이 52%로 처음으로 영어권을 추월했는데, 스페인어가 21%로 비영어권 1위, 한국어가 20%로 2위를 차지했다. 시청 점유율은 한국이 앞서지만 신규 제작 비중에서는 스페인어가 한국을 추월한 셈이다. 콘텐츠 공급이 수요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이 역전은 예사롭지 않다.


스페인어권 부상은 '종이의 집'이 출발점이었다. 스페인 현지 방영 당시 시청률 저조로 폐지 위기에 몰렸던 이 작품을 2017년 말 넷플릭스가 글로벌 스트리밍 권리를 인수해 재편집·배급하면서 세계적 현상이 됐다. 시즌3는 공개 첫 주 3430만 가구가 시청하며 당시 비영어권 넷플릭스 시리즈 최다 첫 주 기록을 세웠고, 종영 후에도 2025년 상반기에만 1억 시간 이상의 시청 시간을 기록할 만큼 팬덤 유지력이 강하다.


스페인어권의 현재를 보여주는 수치는 아마존 프라임에서 나왔다. 아마존이 공개한 2024년 비영어권 인터내셔널 오리지널 Top 10(자국 외 시청 기준)을 보면 1위 '네 잘못이야'(스페인), 2위 '아포칼립스 Z'(스페인), 3위 '맥스턴 홀'(독일), 4위 '시타델: 허니 버니'(인도), 5위 '레드 퀸'(스페인), 6위 '내 남편과 결혼해줘'(한국), 7위 '환승연애3'(한국), 8위 '베티 라 페아: 더 스토리 컨티뉴스'(콜롬비아), 9위 '라이크 어 드래곤: 야쿠자'(일본) 순으로, Top 9에 스페인어권 작품만 4편이 포함됐다. 특히 '네 잘못이야'는 2024년 12월 공개 직후 170개국 이상에서 1위를 기록하며 아마존 프라임 역사상 출시 기준 최다 시청 인터내셔널 오리지널이 됐다. 전체 스트리밍의 90%가 스페인 외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스페인어권 콘텐츠가 더 이상 스페인어 사용자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2025년 1월 5일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드라마 시리즈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쇼군' 팀이 수상패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뉴시스/AP


일본은 다른 방식으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오랫동안 일본 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은 애니메이션에 집중돼 있었다. '드래곤볼', '원피스', '귀멸의 칼날' 등 세계적인 IP를 앞세워 해외 시장을 공략했지만, 실사 드라마와 영화는 상대적으로 내수 시장 의존도가 높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글로벌 플랫폼들이 일본 콘텐츠 투자 규모를 확대하면서 실사 드라마와 영화 역시 해외 시청자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이 '쇼군'이다.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2024년 에미상에서 25개 부문 후보에 올라 18관왕을 차지했다. 단일 시즌 기준 에미상 최다 수상 기록이며, 비영어권 작품 최초로 드라마 시리즈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히로유키 사나다와 안나 사와이 역시 일본 배우 최초로 남녀 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외에도 골든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 등 전미 시상식에서 60개 이상의 상을 수상했다. 다만 '쇼군'은 일본어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미국 FX와 디즈니가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순수한 일본 콘텐츠의 성과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아리스 인 보더랜드'·'퍼스트 러브 하츠코이' ·'극악여왕' 스틸컷 ⓒ넷플릭스

오히려 주목할 부분은 글로벌 플랫폼들이 일본 시장 자체를 새로운 콘텐츠 허브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 '극악여왕', '도쿄 사기꾼들' 등을 잇따라 선보이며 일본 실사 콘텐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자국 제작 실사 콘텐츠의 독자적 성과도 확인된다.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시즌2는 2022년 12월 공개 첫 주말 4일 만에 6120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비영어권 TV 글로벌 1위에 올랐고, 시즌1·2 합산 8000만 시청 시간은 당시 '오징어 게임' 첫 주 기록(6300만 시간)을 넘어섰다. 시즌3도 2025년 9월 공개 첫 주 글로벌 1위를 이어갔다. 2025년 4월~2026년 3월 기준 일본 콘텐츠의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 시간은 84억 시간으로 한국(121억 시간)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뤼팽'·'맥스턴 홀' 포스터ⓒ넷플릭스·아마존 프라임


유럽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프랑스의 '뤼팽'은 오마르 시 주연의 범죄 드라마로 2021년 첫 공개 이후 꾸준한 글로벌 팬덤을 쌓아온 작품이다. 2023년 10월 공개된 파트3는 공개 4일 만에 비영어권 TV 글로벌 1위에 올랐고, 2024년 1월까지 누적 5000만 완주 시청을 달성했다. 프랑스산 넷플릭스 영화 '센강 아래'는 2024년 공개 14일 만에 7380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그해 넷플릭스 전체 영화 부문 6위에 올랐다.


독일에서는 아마존 프라임의 '맥스턴 홀: 너와 나의 세계'가 2024년 5월 공개 첫 주에 프라임 인터내셔널 오리지널 역대 최다 첫 주 시청 기록을 세웠다. 120개국 이상에서 1위에 올랐고, 시즌2는 2025년 11월 공개 직후 42개 주요 시장에서 1위를 기록하며 시즌3까지 제작이 확정됐다. 독일어로 만들어졌지만, 영국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설정한 이 작품은 로컬 언어와 글로벌 설정을 결합하는 또 다른 방정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도는 규모 자체가 다르다. 아마존 프라임의 인도 구독자는 현재 6590만 명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시장이다.아마존 프라임 인도에 따르면 현재 인도 콘텐츠 시청의 약 25%는 인도 외 지역에서 발생한다. 글로벌 플랫폼에서 인도 콘텐츠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아마존 프라임 인도 오리지널 부문 책임자인 니킬 마독은 올해 인도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콘퍼런스(FICCI Frames 2025)에서 "2024년 한 해 동안 인도 콘텐츠가 프라임 비디오 글로벌 톱10에 매주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다. 영화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는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화제작으로 떠오르며 오스카 주제가상까지 수상했다.


인도의 강점은 압도적인 내수 시장이다. 한국과 스페인 콘텐츠가 글로벌 수출을 통해 성장했다면, 인도는 자국 시장만으로도 세계 최대 규모의 시청층을 확보할 수 있다. 인도 OTT 시장은 2024~25 회계연도 기준 약 46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으며 2029년까지 연 8~9%의 성장이 전망된다. 글로벌 플랫폼들이 인도를 단순한 제작 기지가 아닌 전략 시장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이처럼 '포스트 오징어 게임'의 무대는 더 이상 한국의 독무대가 아니다. 촘촘한 다국적 연합을 무기로 한국의 턱밑까지 추격한 스페인어권, 강력한 IP를 실사화로 연결해 낸 일본, 압도적 내수 규모를 자랑하는 인도까지 비영어권 콘텐츠 시장은 바야흐로 절대 강자 없는 '춘추전국시대'로 진입했다.


특히 글로벌 플랫폼들이 치솟는 제작비 부담을 이유로 한국의 신작 드라마 발주를 줄이고 예능이나 기제작 라이선스 구매로 눈을 돌리는 사이, 경쟁국들은 정교한 자본력과 차별화된 로컬 문법을 앞세워 빈틈을 매섭게 파고들고 있다. 한국 콘텐츠가 개척해 놓은 비영어권 스트리밍 시장의 영토에서 정작 주인공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한 흥행 공식의 답습을 넘어 제작비 효율화와 장르 다변화라는 새로운 생존 방정식을 시급히 풀어내야 할 시점이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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