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사이클 공식 깨지나…마이크론 실적에 삼성·하이닉스 촉각
입력 2026.06.25 10:19
수정 2026.06.25 10:19
매출·마진 시장 예상 웃돈 마이크론
"메모리 부족, 2027년 이후까지 예상"
장기계약·가격 하한으로 변동성 완화 기대
7월말 삼성 및 하이닉스 2분기 실적 눈길
미국 버지니아 주 매너서스에 있는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반도체 제조 공장의 입구 표지판. ⓒAP/뉴시스
미국 마이크론의 사상 최대 실적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분기 실적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단순히 매출과 이익이 시장 예상을 웃돈 데 그치지 않는다. 빅테크 고객사들이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AI 메모리 물량을 장기계약으로 묶고 가격 하한까지 설정하면서, 메모리 산업이 과거의 단기 가격 사이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2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2026회계연도 3분기 매출 414억6000만달러(약 63조8000억원)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네 배 이상 증가한 수준으로,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비일반회계기준(Non-GAAP) 주당순이익(EPS)은 25.11달러, 매출총이익률은 84%대까지 뛰었다. 마이크론은 다음 분기 매출 전망치도 490억~510억달러로 제시했다.
실적 호조의 중심에는 AI 서버용 메모리가 있다. HBM과 서버용 D램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데이터센터 관련 사업부가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AI 가속기와 서버 투자가 확대되면서 고부가 메모리의 가격과 물량이 동시에 개선된 것이다.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컨퍼런스콜에서 "AI 수요 확대와 구조적인 공급 부족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급 불균형이 2027년 이후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2028년에는 공급 여건이 점차 개선될 수 있지만, 늘어나는 수요를 공급이 언제 따라잡을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실적에서 더 눈에 띄는 대목은 장기 공급계약이다. 마이크론은 고객사들이 향후 메모리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총 16건의 전략적 고객계약(SCA·Strategic Customer Agreement)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일반적인 장기공급계약(LTA)보다 구속력이 강한 형태다. 일부 계약에는 고객이 일정 물량을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테이크오어페이 조건과 가격 하한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메모리 산업의 성격 변화로 읽힌다. 과거 메모리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급등락하는 대표적인 경기순환 업종이었으나 최근 AI 서버용 HBM과 고용량 D램은 빅테크 고객사들이 장기간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 핵심 인프라 부품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사가 선제적으로 공급을 묶고 가격 하한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제품 경쟁도 차세대로 넘어가고 있다. 마이크론은 2026년 HBM 물량이 고정가격 계약을 통해 이미 상당 부분 판매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HBM4는 주요 고객사 플랫폼에 공급 중이며, HBM4E는 2027년 양산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HBM 경쟁의 무게중심이 HBM3E에서 HBM4와 HBM4E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범용 D램과 낸드 시장에도 긍정적인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AI 서버 투자가 확대되면 HBM뿐 아니라 서버용 D램, 고용량 SSD, 데이터센터용 낸드 수요도 함께 늘어난다. 마이크론 실적에서 클라우드 메모리와 코어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모바일·클라이언트, 자동차·임베디드 부문까지 모두 분기 최대 매출을 기록한 점도 메모리 업황 개선이 특정 제품군에만 머물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요 확대는 투자 경쟁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엔비디아 AI 가속기용 메모리를 공급하는 마이크론은 4분기 설비투자 규모를 약 100억달러로 제시했다. 시장 예상치인 88억9000만달러를 웃도는 수준이다. 미국 내 첨단 메모리 생산 기반을 갖춘 사실상 유일한 업체로서 AI 메모리 수요 확대에 대응해 생산능력 확충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공격적인 투자가 실제 공급 증가로 이어지는 2027~2028년에는 업황 피크아웃 우려가 다시 부각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장기 공급계약 확대와 가격 하한, 수익성 중심의 공급 정책이 자리 잡는다면 과거보다 실적 변동성은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국내 업체에도 긍정적인 신호다. SK하이닉스는 HBM3와 HBM3E 시장에서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 공급을 바탕으로 선두 지위를 확보해왔다. 마이크론이 보여준 고마진과 강한 수요는 SK하이닉스의 2분기와 하반기 수익성 기대를 높이는 요인이다. HBM 공급 능력이 곧 실적과 기업가치로 연결되는 흐름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SK하이닉스의 나스닥 ADR 상장 추진도 같은 흐름에서 읽힌다. SK하이닉스는 다음 달 10일 미국 나스닥에 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대 45조원대 규모로 거론되는 조달 자금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청주 P&T7 첨단 패키징 팹 등 시설투자에 쓰일 예정이다. AI 메모리 수요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진 만큼, 대규모 증설에 필요한 자금을 글로벌 시장에서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삼성전자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HBM3E에서 SK하이닉스보다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HBM4 조기 양산과 공급 확대를 통해 차세대 제품에서 반격을 노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HBM4 양산 출하에 나섰고, 최근 130여일 만에 누적 매출 1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론이 HBM4 공급과 HBM4E 개발 일정을 부각한 만큼 삼성전자로서는 HBM4 시장 확대 국면에서 점유율 반등을 노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마이크론의 실적 발표 이후 시장의 눈은 7월말 예정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분기 실적으로 향하고 있다. AI 메모리 수요가 일시적 기대가 아니라 장기계약과 가격 방어력으로 확인된 만큼, 국내 메모리 기업들도 단순 사이클주를 넘어 AI 인프라 핵심 공급사로 재평가받을 수 있을지가 하반기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