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푸어푸', 오늘도 꿈을 향해 물살을 가른다 [D:쇼트 시네마(163)]
입력 2026.06.23 08:35
수정 2026.06.23 08:36
백진연·정수진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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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오소리(백진연 분)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며 입시 학원 강사와 배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담당 학생에게 노래보다 사진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며 사진과 진학을 권한다. 학생의 가능성을 진심으로 고민한 조언이었지만 학생은 상처를 받고 뛰쳐나간다. 결국 학부모의 항의를 받은 오소리는 학원에서 해고된다.
생계마저 흔들린 오소리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우연히 학창 시절 친구의 집에 배달을 가게 된다. 자신의 현실을 들킨 것 같은 민망함에 음식만 건네고 황급히 도망치듯 자리를 떠난다. 꿈을 꾸고 있지만 남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은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한편 오소리는 지원했던 뮤지컬 오디션의 1차 합격 소식을 듣는다. 선배의 조언에 따라 업계 관계자들이 모인 뒷풀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고, 영화는 뮤지컬 형식을 빌려 오소리의 열정과 꿈을 노래로 풀어낸다. 하지만 누구도 오소리를 주목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뜨겁게 노래하지만 세상은 무심하기만 하다.
기대했던 결과는 또다시 실패로 돌아온다. 오디션 탈락 소식을 들은 오소리는 뒷풀이에서 존경하던 선배 배우 진선희에게 어떻게 해야 선배처럼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하다. 술에 취한 오소리는 결국 "문제는 당신 같은 기득권"이라며 감정을 폭발시키고, 급기야 진선희에게 토를 하는 최악의 실수까지 저지른다.
집으로 돌아온 오소리는 자책하지만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다. 다시 다음 오디션을 준비한다. 그런데 그 오디션의 심사위원으로 진선희가 등장한다. 전날의 실수 때문에 움츠러들 법도 하지만 오소리는 다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른다. 결과를 알 수 없더라도 다시 도전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의미 있는 장면을 하나 더 배치한다. 앞서 배달을 갔던 친구의 집에 다시 방문하게 된 오소리는 뜻밖의 고백을 듣는다. 친구는 오소리를 다시 만나기 위해 일부러 계속 배달 주문을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오소리가 멋있다고 이야기한다. 남들 눈에는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끝까지 자신의 꿈을 붙들고 있는 모습 자체가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과거 자신이 진로를 권했던 학생에게도 연락이 온다. 학생은 사진과에 지원했고 합격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오소리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누군가의 인생에서는 새로운 출발점이 된 것이다.
오디션이 끝난 뒤 오소리는 진선희를 찾아가 정중하게 사과한다. 진선희는 후배들의 성공 여부에 특별한 관심이 없고 빈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자신이 여기까지 올라온 방식이라고도 털어놓는다. 그러나 동시에 오소리의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평가하며 격려를 건넨다. 차갑지만 진심이 담긴 한마디가 오소리에게는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된다.
'어푸어푸'는 흔한 성장영화처럼 꿈을 이루는 순간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소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스타가 되지 못하고, 인생을 뒤바꿀 기회를 얻지도 못한다. 대신 실패하고, 창피를 당하고, 상처받고, 흔들리면서도 다시 오디션장으로 향한다.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성공 자체보다 그 과정에 더 가까워 보인다.
제목인 '어푸어푸' 역시 그런 의미를 품는다. 물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허우적대는 소리처럼 오소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계속 헤엄친다. 앞으로 나아가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지만 멈추지는 않는다. 꿈을 가진 사람들의 삶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성공은 보장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다시 다음 무대를 향해 걸어간다.
백진연은 이러한 오소리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완성한다. 생계와 꿈 사이에서 흔들리는 불안, 실패가 반복될수록 커지는 자격지심,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열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특히 뮤지컬 장면에서는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을 넘어 인물이 품고 있는 절박함과 간절함까지 함께 전달한다. 현실에서는 작아지지만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커지는 청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소리는 때로는 미숙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실패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모습마저도 성장의 일부로 바라본다. 진선희의 냉정한 조언과 친구의 응원, 학생의 감사 인사까지 모두 오소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작은 부표들처럼 기능한다.
백진연·정수진 감독은 뮤지컬이라는 형식을 활용해 청춘의 불안과 희망을 경쾌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화려한 성공담 대신 꿈을 향해 오늘도 헤엄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끝이 보이지 않아도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기 위해 계속 발버둥치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꿈꾸는 사람들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지 모른다. 러닝타임 2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