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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따라간 의사,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다 [내일의 닥터]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입력 2026.06.21 06:00
수정 2026.06.21 06:00

신정훈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인터뷰

“좋은 연구의 출발은 좋은 질문…의사과학자의 강점”

연구와 진료 병행하는 현실…가장 부족한 것은 ‘시간’

“성과 압박보다 믿고 기다리는 환경 필요”



‘내일의 닥터’는 의료산업의 혁신 흐름을 읽습니다. AI·로봇·데이터가 바꾸는 병원 생태계,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끄는 기술·정책·시장 트렌드를 심층 분석합니다.



신정훈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5월 15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제가 참여한 연구 결과가 실제 임상에 도입돼 약이 허가를 받고, 그 약을 제가 직접 처방해 환자가 치료받는 경험을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의학을 공부한 의사. 책과 논문, 엑셀과 워드가 익숙했던 그는 어느 날 방대한 유전체 데이터의 세계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그를 단순한 임상의가 아닌 의사과학자로 성장하게 만든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환자’를 보며 ‘연구’를 꿈꾸다

지난 15일 신정훈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를 만나 고차원적인 두 분야를 아우르는 힘든 길을 걷게 된 사연을 들어봤다.


그는 “레지던트 수련 과정에서 교수님의 추천으로 선천성 대사 이상 질환과 암 발생의 연관성을 연구할 기회를 얻었다”며 “그때 처음으로 데이터 파일 하나가 80GB에 달하는 유전체 데이터를 접했고,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큰 전율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어 “사람의 눈으로는 읽을 수조차 없는 방대한 데이터를 컴퓨터와 코딩으로 분석해 암과 질환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웠다”며 “좋은 컴퓨터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람이 보지 못하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끼면서 의사과학자의 길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현재 신 교수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는 ‘진행성 유방암에서 항체-약물 접합체(ADC) 치료 전후 종양 조직의 유전체·전사체 통합 분석을 통한 내성 바이오마커 규명’이다.


ADC는 최근 5년간 유방암 치료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 치료제로 평가받지만, 치료 효과가 뛰어난 만큼 내성 문제 역시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같은 약을 사용하더라도 환자마다 효과 지속 기간이 크게 다르고, 내성이 발생하는 원인 역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치료 전략 수립에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신 교수는 “어떤 환자는 약의 효과가 2~3개월도 못 가는 경우가 있고, 어떤 환자는 4~5년 이상 치료 효과를 유지하다가 내성이 생기기도 한다”며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지, 내성이 왜 생기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가 연구실이 아닌 진료실에서 답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논문이나 연구 데이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마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연구 질문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환자를 직접 만나고 진료하다 보면 논문이나 데이터만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질문들이 생긴다”며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가까이에서 보며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연구의 출발점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과학자의 가장 큰 강점은 환자에게서 질문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라며 “환자가 던져주는 질문이 결국 새로운 연구를 만들고, 더 나은 치료법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시간과의 싸움’인 의사과학자의 길
신정훈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5월 15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다만 좋은 질문이 좋은 연구로 이어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진료와 연구를 병행해야 하는 의사과학자들에게 가장 부족한 자원은 ‘연구비’보다도 ‘시간’이다.


신 교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절대적인 시간 부족이다. 하루 중 오전에만 8~90명 정도의 환자를 만나는데, 진료를 마치고 나면 연구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치는 경우가 많다”며 “연구와 가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도 반복된다. 이런 고민 자체가 연구를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의미”라고 토로했다.


국내 의사과학자 육성 시스템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최근 과학·공학·의학을 아우르는 융합형 인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의사과학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신 교수는 “의사과학자 양성 시스템이 과거보다 많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의사과학자를 육성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제 업무는 일반 임상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진료와 연구 역할을 보다 명확히 구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현재 연구 지원은 대부분 3년 단위로 이뤄지는데 연구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성과 압박을 받는 경우도 있다”며 “젊은 연구자들이 5년, 10년 단위의 장기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의사과학자 육성뿐 아니라 연구 성과가 실제 환자 치료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치료법과 의료기술은 임상시험을 거쳐 환자에게 적용되지만, 여전히 일부 환자들은 임상시험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문가 입장에서는 임상시험 참여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연구 성과가 환자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환자 교육과 제도적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 교수는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무엇보다 ‘좋은 질문’을 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과학자는 환자를 직접 진료하며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는 만큼, 그 과정에서 발견한 질문들이 새로운 치료법과 의료기술 개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좋은 연구는 결국 좋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처음부터 논문이나 성과를 목표로 하기보다 스스로 정말 궁금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마음으로 연구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호기심을 잃지 않고 연구를 이어가는 것이 의사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조언했다.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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