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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끝나도 기록은 남는다…공연 시장 지탱하는 ‘아카이빙의 힘’ [기록하는 팬덤③]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6.20 14:01
수정 2026.06.20 14:01

고물가·티켓값 폭등 장벽 뚫은 ‘회전문 관객’

중소극장 자생력 높이는 입소문 진원지

연극·뮤지컬 업계는 전례 없는 고물가와 티켓 가격 상승이라는 거대한 변수를 맞이했다. 대극장 뮤지컬의 VIP 등급 좌석 가격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5만원을 넘어 19만원까지 치솟고, 중소극장 공연의 관람 비용 역시 동반 상승했다. 경기 침체와 문화비 지출 축소가 맞물려 객석 동원율이 급격히 위축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던 이유다.


2021년부터 2026년까지의 다회차 관람 관객 소비 행태 분석. ⓒNOL티켓

하지만 티켓 예매 사이트의 이용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는 시장의 예상과 다르게 나타났다. 일반 대중 관객의 신규 유입은 다소 둔화했을지언정, 한 작품을 수차례 반복 관람하는, 이른바 ‘회전문’ 관객층, 즉 고관여 팬덤의 재관람률은 이전과 유사한 수준으로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티켓 예매 사이트 놀(NOL)티켓의 예매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근 수년간의 관객 소비 행태를 분석한 결과, 가격 저항선을 뚫고 시장을 지탱하는 회전문 관객의 티켓 소비 파워가 확인됐다.


팬데믹 직후였던 2021년과 비교했을 때, 지난해(2025년)의 재관람(동일 공연 2회 이상 관람) 건수는 무려 43%나 폭증했다. 침체기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든 2024년과 2025년의 재관람 수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으며, 2026년 1~5월 기준 재관람 수 역시 전년 동기 대비 2% 증가하며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일반 관객의 발길이 뜸해지는 불황 속에서도 시장을 지탱하는 ‘콘크리트 소비층’만큼은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관객들의 관람 횟수별 비중이 수년간 놀라울 정도로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재구매 건수 중 동일 공연을 ‘2회’ 관람한 관객의 비중은 2021년 61%에서 시작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 연속 64%를 기록하며 가장 큰 축을 차지했다. 올해 1~5월 역시 62%로 지난해 동기(61%)와 유사한 수준을 보였다. 이어 ‘3회’ 관람 비중은 2021년 19%에서 최근 수년간 17%로 고정됐고, ‘4회’ 관람 비중 또한 8~9%대를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특히 업계가 주목하는 핵심 화력인 ‘5회 이상’ 연쇄 재관람 관객층의 비중은 2021년과 2022년 12%, 2023년부터 2025년까지는 11%를 기록하며 매년 두 자릿수 지지선을 지켜냈다. 고물가 여파가 본격화된 최근 흐름을 보아도, 올해 1~5월 기준 5회 이상 관람 비중은 13%로 지난해 동기(14%)와 다름없는 탄탄한 충성도를 증명했다. 관객 10명 중 1명 이상은 한 작품을 다섯 번 넘게 지켜보는 ‘헤비 유저’라는 의미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놀 티켓 관계자는 “공연 관람이 하나의 팬덤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같은 작품을 여러 차례 찾는 관객도 꾸준히 늘고 있다”며 “특히 팬데믹 이후 재관람 수요가 크게 확대된 가운데 올해 들어서도 증가세가 이어지며 공연을 깊이 있게 즐기려는 관람 행태가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지난해 발간한 ‘공연예술통합전산망 관객 세분화 연구’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뒷받침된다. 연간 공연 관람객의 71.6%는 단발성(1회) 관람에 그치지만, 2회 이상 공연을 예매하는 다회 관람 관객층이 28.4% 규모로 탄탄하게 버티며 전체 시장 매출의 핵심 중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얼어붙은 소비 심리 속에서도 관객들이 끊임없이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드는 숨은 동력의 핵심에는 바로 관객들의 자발적인 ‘기록 행위’가 자리 잡고 있다. 연극과 뮤지컬은 매 회차 배우들의 컨디션, 디테일한 노선 변화, 현장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에 따라 미세하게 결이 달라지는 일회성 예술이다. 고관여 관객들은 첫 관람 이후 자신만의 플랫폼이나 커뮤니티에 무대 위의 동선, 조명의 변화, 배우별 연기 스타일의 차이점 등을 세밀하게 박제한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아카이브는 단순한 감상문을 넘어, 다른 캐스팅 조합의 디테일을 확인하거나 초연 대비 연출적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극장을 다시 찾아야만 하는 구체적인 명분을 만들어낸다. 자신이 기록한 데이터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 다음 티켓을 예매하는 소비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실제 오랜 기간 객석에서 공연을 기록해 온 리뷰어 분더비니는 “기록하기 위해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보고 싶은 공연을 만났을 때 그 좋음의 이유와 배경을 나누기 위해 자연스럽게 기록으로 이어지는 구조”라며 “여러 번 반복해서 보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미세한 디테일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순간들을 소중하게 채집해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다시 극장을 찾게 만드는 또 다른 원동력이 된다”는 설명이다.

분더비니가 그린 인스타툰 '보고 또 보는 관객을 회전문 관객이라고 하는 이유' 中 ⓒ분더비니

결국 관객의 자발적인 기록 욕구가 재관람이라는 소비 행위를 자극하고, 그 소비가 다시 새로운 기록을 낳으며 견고한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선순환은 티켓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할수록 더욱 강력한 경제적 안전망으로 작용한다. 소비자들은 비용 부담이 커질수록 실패 확률이 낮은 안전한 선택을 지향하게 되는데, 현장성과 고비용이라는 장벽을 가진 공연 예술의 특성상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축적한 방대한 아카이브는 잠재적 관객들에게 가장 강력한 신뢰 지표가 된다. 기획사의 막대한 마케팅 자본이 투입된 공식 홍보물이 작품의 장점만을 부각하는 것과 달리, 관객들이 직접 작성한 분석 자료나 상세 리뷰 등은 철저히 수용자의 시선에서 가감 없이 작성되기 때문이다.


특히 홍보 예산이 부족한 중소극장 창작 뮤지컬이나 연극 생태계에서 ‘기록 행위’는 빛을 발한다. 관객들의 정밀한 리뷰와 자발적인 공유 문화는 대형 마케팅을 대체하는 입소문의 진원지가 되고, 정보가 부족해 관람을 망설이던 관객들이 예매를 결심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결과적으로 관객 개개인의 자발적인 아카이빙은 중소극장 생태계의 자생력을 높이고 공연 산업 전반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무형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화함에 따라 공연 제작사들 또한 관객의 기록 문화를 적극적으로 마케팅과 기획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제작사가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관객은 이를 소비하는 일방향적 구조였다면, 현재는 관객의 아카이빙 활동을 장려하고 이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양방향 비즈니스로 진화하는 추세다. 언론 중심의 프레스콜을 넘어 영향력 있는 기록자들을 초대해 양질의 콘텐츠 생산을 유도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 뮤지컬 홍보사 관계자는 “관객들이 물리적으로 관극을 기록할 수 있도록 제작사 차원에서 공식 티켓북, 대사 필사 노트, 가이드북, 관람 인증 스탬프 북 등을 기획 상품으로 제작하기도 한다”면서 “관객의 자발적인 기록 행위가 단순히 개인의 취미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고 소비를 촉진하는 실질적인 산업적 동력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봤다.


무대 위의 찰나를 활자와 물질로 박제해 나가는 관객들의 기록학은, 결국 고물가 시대라는 거친 흐름 속에서 소멸해 가는 무대 예술의 수명을 연장하고 공연 시장의 경제적 하한선을 끝까지 지켜내는 가장 강력한 안정판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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