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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매치 첫 상대·붉은 악마·개구리 점프’ 멕시코와의 78년 인연史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26.06.18 12:58
수정 2026.06.18 12:58

2026 FIFA 북중미월드컵에서 한국과 멕시코가 A조 1위 자리를 놓고 맞대결을 펼친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19일 오전 10시(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개최국 멕시코와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한국은 체코를 2-1로 꺾었고, 멕시코 역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2-0으로 물리치며 나란히 1승을 기록 중이다. 이 경기 승자는 32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며 조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두 팀은 지금까지 15번이나 만났다. 역대 전적은 8승 3무 4패로 멕시코 우세. 특히 월드컵에서는 두 차례 맞대결을 벌였는데 그때마다 멕시코가 모두 승리했다. 하지만 멕시코는 월드컵 본선 맞대결을 떠나 대한민국 축구의 출발점과 성장 과정 곳곳에 등장하는 '운명의 상대'다.


1998년 멕시코전에서 하석주는 바뀐 룰을 숙지하지 못해 득점 후 3분 만에 퇴장 당했다. ⓒ 연합뉴스

▲ 1948년 런던의 기적, 태극기 달고 감격적인 첫 승


한국 축구와 멕시코의 인연은 무려 78년 전인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를 지나 정부 수립조차 온전치 않은 상황에서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KOREA’라는 국호와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출전한 대회였다.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성금과 지원 속에 부산에서 출발해 도쿄, 홍콩, 뉴델리 등을 거쳐 20박 21일 만에 런던에 입성했다. 그리고 마주한 첫 상대는 멕시코였다.


모두가 한국의 일방적인 열세를 점쳤으나, 투혼으로 무장한 한국은 난타전 끝에 5-3으로 승리하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멕시코는 그렇게 한국 축구사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첫 승리 상대로 남아있다.




▲ 1983년과 1986년, 멕시코 땅에서 피어난 '붉은 악마’


올림픽에서의 첫 만남 이후 한동안 접점이 없던 두 팀은 1980년대 들어 멕시코에서 다시 한번 변곡점을 맞이한다.


한국은 1983년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현 FIFA U-20 월드컵)에서 고(故) 박종환 감독을 필두로 돌풍을 일으켰다.


끈질긴 압박과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강호들을 연파한 한국은 마침내 세계 4강이라는 신화를 창조했다. 당시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빈 모습에 세계 축구계는 경외감을 담아 'Red Devils(붉은 악마)'라는 강렬한 별명을 붙여줬다. 오늘날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상징이 된 ‘붉은 악마’ 브랜드가 멕시코 땅에서 탄생한 것. 이 대회 4강 신화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이전까지 한국 축구의 최대 성과로 평가된다.


멕시코에서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3년 뒤인 1986년, 이번에는 성인 대표팀이 멕시코로 향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32년 동안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한 한국 축구가 마침내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바로 그 대회 '1986 멕시코 월드컵'이었다. 이 대회를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아시아 축구의 절대 강자로 자리 잡았으며, 지금까지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대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 조별리그에서도 패했던 한국. ⓒ AP=뉴시스

▲ 하석주 백태클 퇴장과 블랑코의 개구리 점프


역대 월드컵 무대에서 대한민국이 세 번 이상 만난 국가는 총 4개국이다. 스페인(2무 1패)을 필두로 우루과이(1무 2패), 벨기에(1무 2패), 그리고 전차군단 독일(1승 2패)과 3번 맞대결을 펼쳤다. 한국은 이들을 상대로 객관적인 전력 열세 속에서도 극적인 무승부를 거두거나, 세계 축구사를 뒤흔든 ‘카잔의 기적’(독일전 2-0 승)을 연출한 바 있다.


이제 멕시코는 대한민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세 차례 맞대결을 벌이는 역대 5번째 국가가 된다. 앞선 4개국과의 대결에서는 비록 상대 전적은 밀릴지언정 전패를 기록하진 않았다. 하지만 멕시코는 다르다. 앞선 두 차례의 월드컵 맞대결에서 한국은 멕시코에 2전 전패를 당하며 벽을 느끼고 있다.


월드컵 본선에서의 첫 만남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이었다.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당시 대표팀은 역대 최강의 전력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부푼 기대감 속에 프랑스 땅을 밟았다.


출발은 좋았다. 전반 28분, 왼발의 달인 하석주가 찬 날카로운 프리킥이 멕시코 수비벽을 맞고 굴절되며 그대로 멕시코의 골망을 흔들었다. 대한민국 축구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기록한 최초의 선제골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5분 만에 하석주가 백태클로 다이렉트 퇴장을 당하며 수적 열세에 놓였다. 결국 한국은 멕시코의 파상공세를 이겨내지 못하며 1-3 패했다. 특히 이 경기에서는 멕시코의 간판 스타였던 콰우테모크 블랑코가 양발 사이에 공을 낀 채 껑충 뛰어오르는 일명 ‘개구리 점프 드리블’로 한국을 농락, 결과 이상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월드컵 본선에서 멕시코와 세 번째 맞대결을 벌이는 한국 축구. ⓒ AP=뉴시스

▲ 한국과 멕시코 사이에 불고 있는 훈풍


두 번째 만남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이었다. 1차전에서 스웨덴에 0-1로 패하며 벼랑 끝에 몰렸던 신태용호는 반드시 멕시코를 잡아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마주했다.


하지만 당시의 멕시코는 1차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1-0으로 꺾으며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멕시코는 확실히 한국보다 조직력과 정교함에서 한 수 위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결국 치차리토에게 2골을 내준 한국은 후반 추가 시간 에이스 손흥민이 환상적인 왼발 감아차기 중거리 슈팅으로 만회 골을 터뜨렸으나 1-2로 패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경기 이후 두 나라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당시 멕시코는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스웨덴에 0-3으로 대패하며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 몰렸으나 같은 시각 한국이 독일을 꺾어주며 기적적인 멕시코의 16강 진출이 이뤄졌다.


당시 멕시코에서는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하늘을 찔렀고 ‘한국인 모두는 우리의 형제’라는 분위기까지 형성됐다. 양국의 훈훈한 기류는 월드스타 BTS를 통해 더욱 끈끈한 상황이다.




▲ 세 번째 맞대결, '고지대'와 '일방적 응원' 넘어라


한국과 멕시코는 과거의 좋았던 기억을 뒤로 하고 이제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 돌입해야 한다.


이번 맞대결은 과거 두 차례의 경기보다 훨씬 더 가혹할 전망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경기가 치러지는 장소가 바로 멕시코의 홈그라운드이기 때문이다. 수만 명의 관중이 내뿜는 일방적인 응원과 함성은 그 자체로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고지대라는 물리적인 변수도 극복해야 하는 축구대표팀이다.


78년 전 가난했던 시절, 런던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눈물의 첫 승을 거뒀던 한국은 이제 아시아의 호랑이이자, 유럽 빅리그를 호령하는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보유한 강팀으로 성장했다.


1998년의 허망한 퇴장과 굴욕, 2018년의 아쉬운 전력 차이를 뒤로하고 이제는 멕시코와 대등하게 맞설 힘을 갖췄다. 원정 경기와 고지대라는 벽이 가로막고 있지만, 한국 축구는 위기 때마다 발현되는 투혼과 기적의 DNA를 갖추고 있다.


이번 세 번째 맞대결은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월드컵 멕시코전 잔혹사에 종지부를 찍을 절호의 기회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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