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사태마다 빌리는 '시한부 검찰'의 손 [기자수첩-사회]
입력 2026.06.17 07:00
수정 2026.06.17 07:00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검·경 합동수사본부 출범
'검찰청 폐지' 검찰개혁 추진하면서도…조직 역량에는 의존하는 모습
'중대범죄수사청' 대안으로 제시하지만…수십년 축적된 전문성 자동 이전 안 돼
잇따른 합수본 출범, 국가가 여전히 검찰 수사력 필요로 한다는 증거
제 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지난 3일 개표사무원들이 투표용지를 분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 50개 투표소에서 수천 장의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장시간 대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일 철저한 진상 규명을 지시했다. 대통령 지시 이틀 만에 검찰 12명, 경찰 15명 규모의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졌고, 수사는 빠르게 진행 중이다.
최근 신천지·통일교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정교유착 합수본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적 파장이 크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검찰과 경찰을 결합한 합수본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결국 국가적 관심사가 집중된 고난도 사건에서는 검찰의 특수수사 역량이 여전히 핵심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묘한 장면이 연출된다. 현재 검찰청은 불과 몇 달 뒤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조직이다. 정부와 여당은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한 검찰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정작 국가적 위기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검찰의 수사력을 찾고 있다. 조직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면서도 조직의 역량에는 의존하는 모습이다.
지난 1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시민들이 7일째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고 있다. ⓒ데일리안 진현우 기자
물론 정부는 검찰을 대신할 중대범죄수사청 등 새로운 수사기관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정부가 아무리 새로운 조직을 설계하더라도 실제 수사를 수행할 인력이 따라오지 못한다면 제도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실제로 앞선 대검찰청 태스크포스 조사에서는 응답한 검사 910명 가운데 중수청 근무를 희망한 검사가 단 7명(0.8%)에 그쳤다. 검찰 수사 기능을 이어받을 핵심 기관으로 구상된 조직에 정작 현직 검사들은 발길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국가의 수사 역량은 건물이나 간판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온다. 법률 개정만으로 기관은 만들 수 있지만, 수십 년간 축적된 수사 경험과 전문성까지 자동으로 이전되지는 않는다. 더욱이 최근 잇따른 합수본 출범은 국가가 여전히 검찰 수사력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거 관리 부실 의혹이든, 정치와 종교의 유착 의혹이든,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검찰의 전문성과 조직력을 동원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검찰이라는 간판이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된 인적 자원과 수사 시스템의 가치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검찰 개혁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국가 형사사법 체계 전체를 재설계하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검찰청을 없앤 이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지금의 수사 역량을 이어받을 것인지 국민에게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국가적 중대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조직의 손을 빌리는 현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아직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