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지 부족해 참정권 훼손…투표 못한 국민들, 국가배상 가능할까 [법조계에 물어보니 727]
입력 2026.06.08 16:55
수정 2026.06.08 16:55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규명 수사 착수…국가배상소송 가능성도
법원, 과거 공무원 과실로 투표권 침해 유권자들에 국가 배상 수차례 인정
선관위도 준비 부족 인정…국가배상 책임 성립 가능성 적지 않다는 관측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 일대에 모인 청년들이 태극기와 피켓 등을 들고 있다.ⓒ데일리안 어윤수 기자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공무원의 과실로 선거권이 침해된 경우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법원 판례가 이미 존재하는 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시 투표용지 준비 과정의 미흡함을 사실상 인정한 만큼 국가배상 청구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단순한 행정 착오를 넘어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 행사와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행정상 과실보다 무겁게 평가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8일 법조계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당일 전국 67개 투표소에 투표용지가 추가 송부됐다. 이 가운데 실제로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50곳으로 집계됐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가 일시 중단됐다가 재개되기도 했다.
지역별로는 서울 35개 투표소에서 추가 송부가 이뤄졌으며 서울 송파구가 15곳으로 가장 많았다. 선관위는 투표용지 준비 및 예비용지 배분 과정에서 준비가 부족했던 점을 인정한 상태다.
국가배상법은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국민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배상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선거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투표용지 수요 예측이나 배분 과정에서 과실을 범해 유권자들의 투표권 행사에 실질적인 장애가 발생했다면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5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에서 대국민 사과문 발표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 뉴시스
법조계에서는 국가배상 책임 성립 여부를 가르는 핵심 쟁점으로 선관위 측 과실과 투표권 침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꼽는다. 실제로 투표를 하지 못하고 돌아간 유권자가 존재하거나 장시간 대기 끝에 투표를 포기한 사례가 확인될 경우 손해 발생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과거에도 공무원의 실수로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한 유권자들에게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담당 공무원의 착오로 수형인 명부에서 이름이 삭제되지 않아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지방선거에 참여하지 못한 허모씨에게 국가가 총 6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공무원의 명부 관리상 과실로 선거권 행사가 제한됐다고 판단했다. 대전지법도 2015년 수형인 명부에 죄명이 잘못 기재돼 교육감 선거에 참여하지 못한 부녀에게 각각 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선관위가 공식적으로 '수요 예측 및 용지 배분 실패'를 인정한 만큼 공무원의 과실이 매우 명백하므로 200만원 이상의 위자료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시간 대기 후 투표한 유권자의 경우는 결과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했다면 헌법상 선거권 자체를 침해당한 것은 아니므로 위법한 손해'로 인정받기 어렵다"며 "대기 과정에서 선관위 측의 행정 통제가 마비되어 현장 안전사고를 겪었거나, 선관위 직원의 모욕적인 언사나 명백히 차별적인 대우가 결부되어 별도의 인격권 침해가 발생했다면 그 부분에 대한 위자료 청구는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검사 출신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 또한 "실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를 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국가의 부실한 관리로 인한 참정권 침해를 이유로 국가배상이 가능할 것 같다"며 "선거구에서 일했던 공무원이 선관위에 투표용지 부족에 대해 미리 언급을 하며 조치를 요구했음에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아 결국 투표를 하지 못했으므로, 국가의 과실은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둘러싼 형사적 책임 규명도 본격화되고 있다. 대검찰청은 7일 언론 공지를 통해 "검찰은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국민의 참정권 행사에 지장이 초래된 사안에 관해 신속하게 검경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하고, 경찰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효율적으로 수사함으로써 이번 사태와 관련한 국민적 의혹을 엄정히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선거관리 실무 과정에서의 과실 여부와 업무 처리 경위 등이 수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