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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재는 정확한 눈…표준과학연구원, 국가 경쟁력 초석 다지다[D:로그인]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6.06.08 07:00
수정 2026.06.08 07:01

추격형 넘어 선도형 연구기관 전환

기술 패권 시대의 핵심 자산 구축

반도체·우주항공 초정밀 측정 기술

안보·수출 경쟁력 강화 숨은 주역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경. ⓒ한국표준과학연구

최근 세계는 급변하는 물결 속에 다양한 생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등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 중립, 디지털 첨단 기술을 접목한 4차 산업혁명 등 저마다 시장 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부와 공공기관 역시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 중입니다.


데일리안이 기획한 [D:로그인]은 정부와 공공기관 신사업을 조명하고 이를 통한 한국경제 선순환을 끌어내고자 마련했습니다.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해 거치는 [로그인]처럼 정부·공공기관이 다시 한국경제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조명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사람들은 매일 시간을 확인하고, 병원에 가면 혈압을 잰다. 시각(時刻)과 시간(時間)은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으로 적용된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과 우주로 쏘아 올리는 위성에도 같은 ‘표준’을 적용한다. 만약 1초라는 시간의 단위가 나라마다 다르거나, 1m 길이가 측정할 때마다 변한다면 인류 문명은 발전을 거듭하기 어렵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원장 이호성)은 이런 ‘표준’을 만드는 기관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하 표준연)은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 측정 기준을 확립하고 이를 산업계와 연구 현장에 보급하는 기관이다. 쉽게 말해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시간, 길이, 질량, 전기, 온도 등 각종 측정의 ‘기준’을 만드는 곳이다.


많은 국민에게는 다소 낯선 기관이지만, 실제로는 국가 경쟁력과 첨단 산업 근간을 떠받치는 핵심 연구기관 중 하나다.


“1초가 달라지면 나라가 흔들린다”


표준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측정 표준’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측정 표준은 모든 측정의 기준점이다. 전국 어디서 자를 사용하든 길이가 같고, 어느 병원에서 체온을 재더라도 결과가 동일한 이유다.


특히 디지털 사회에서는 시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금융 거래, 통신망, 위성항법시스템(GPS), 자율주행차 등은 모두 초 단위보다 훨씬 정밀한 ‘시간 동기화’가 필요하다.


표준연은 대한민국 표준시를 유지·관리한다. 최근에는 기존 원자시계를 뛰어넘는 차세대 광시계 개발에 성공했다. 연구원은 이터븀 광시계 ‘KRISS-Yb1’을 개발해 국제원자시 생성에 최근 3년간 18차례 참여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여도를 기록했다.


이는 향후 국제 단위계(SI)의 시간 단위인 ‘초’를 재정의할 때 우리나라가 세계 측정표준 체계를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위성과 지상 감시 망원경 탑재 비구면 광학거울 개발 장면.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반도체부터 우주항공까지…측정이 곧 기술력


측정 기술은 첨단 산업의 보이지 않는 기반이다. 반도체 회로 선폭은 수 나노미터(㎚) 수준까지 줄어들고 있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세포와 단백질을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우주항공과 국방 분야에서도 초정밀 측정 능력은 필수다.


표준연은 최근 차세대 길이 표준 확보를 위한 연구에서 세계적 성과를 냈다. 연구진은 광 빗(Optical Frequency Comb)을 활용해 양자 한계에 근접한 절대 길이 측정 기술을 구현했다. 측정 민감도와 정밀도는 기존 레이저 간섭계 기반 측정 방식의 한계를 극복한 기술로 평가받는다.


이 기술은 향후 AI 반도체, 양자 기술, 첨단 제조업 등 미래 산업에서 초정밀 거리 측정과 제어의 기준으로 활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반 소비자가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반도체 수율 향상, 초정밀 장비 개발, 첨단 제조 경쟁력 확보의 출발점이 바로 이런 측정 기술이다.


양자컴퓨터 개발에도 뛰어든 국가 연구소


표준연의 또 다른 역할은 양자 기술 허브 구축이다.


연구원은 국내 산·학·연 협력을 통해 국산 초전도 20큐비트 양자컴퓨팅 시스템을 개발하고 클라우드 시연에 성공했다.


표준연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합을 담당하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클라우드 플랫폼을 구축했다. 성균관대와 UNIST가 양자 프로세서 칩 개발에 참여했다.


특히 단일 큐비트 게이트 신뢰도 평균 99.93%를 달성해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한 성능을 확보했다. 이는 향후 국가 양자 경제 실현을 위한 핵심 기반으로 평가된다.


양자컴퓨터는 인공지능, 신약 개발, 금융 시뮬레이션, 국가 안보 등 미래 산업 전반을 바꿀 기술로 꼽힌다. 표준연이 단순한 표준기관을 넘어 국가 전략기술 연구기관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이미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K-방산 경쟁력 높이는 숨은 주역


최근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는 국방 분야에서도 표준연이 활약 중이다.


표준연은 최근 레이더 스텔스 무기체계 개발에 필요한 핵심 측정 장비를 국산화했다. 기존 해외 장비가 금속 센서를 활용한 것과 달리 미세전극형 센서를 적용해 성능은 높이고 가격은 크게 낮췄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요 성능 지표는 해외 장비보다 우수하면서도 가격은 3분의 1 수준이다. 해당 기술은 KF-21 전투기에 탑재되는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차세대 정찰위성용 영상레이더(SAR) 개발 등에 활용할 수 있다.


관련 기술은 이미 국내 방산기업에 기술 이전이 이뤄지며 사업화 단계에도 진입했다.


이는 측정 기술이 단순 연구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 안보와 수출 산업 경쟁력 강화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전략기술 시대, KRISS의 새로운 임무


표준연은 현재 연구직 307명 등 총 511명이 근무한다. 올해 예산은 2183억원 규모다.


표준연은 앞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측정표준 기관 ▲양자과학기술 허브 ▲미래 전략기술 선도기관 ▲AI·디지털 기반 연구혁신 플랫폼 구축 등을 핵심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양자 기술, 반도체, 첨단 바이오, 우주항공, 국방 분야에서 국가 전략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과거 측정 표준이 산업화 시대의 기반이었다면, 앞으로는 기술 패권 경쟁 시대의 핵심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의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를 움직이다


표준연은 일반 국민에게 익숙한 기관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자동차, 반도체, 통신망, 의료장비, 위성, 국방무기 체계 뒤에는 언제나 정확한 측정 기술이 존재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측정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데이터를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하면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양자컴퓨터도, 우주개발도, 첨단 반도체도 결국 정밀한 측정 위에서 작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표준연은 단순한 연구기관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과 과학기술을 떠받치는 ‘국가의 기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이 직접 체감하기는 어렵더라도, 국가 경쟁력의 가장 깊은 곳에서 시간을 만들고 길이를 재며 미래 기술의 토대를 쌓고 있다.


[인터뷰] “양자와 반도체가 미래…추격형 넘어 선도형 연구로”
이호성 표준연 원장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대한민국이 세계 기술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표준과 측정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2023년 12월 이호성 표준연 원장은 취임식에서 선도형 연구로 전환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추격형 연구에서 선도형 연구로의 대전환이 정부의 요구”라며 “양자 도약 등 국가전략기술 연구를 선도하고 측정의 신뢰성을 통해 한국사회 공정성 회복에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이 원장이 선도형 연구를 강조한 것은 세계적 측정표준기관으로 도약 때문이다. 그는 표준연의 세계화를 위해 ▲임무 중심 연구 ▲수월성 추구 연구 ▲국민 실감 서비스에 집중할 계획임을 밝혔다.


당시 이 원장은 세계 최고의 측정 전문 연구소를 지향하며 국가 임무 중심 연구와 국가전략기술 연구의 허브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글로벌 선도 측정 연구소를 통해 국제공동연구와 국제협력의 리더 역할을 책임지겠다고 했다. 국민과 함께하는 연구소를 위해 산업의 요구를 파악해 과제를 발굴하고 그 성과를 기업에 확산하는 선순환 모델도 약속했다.


실제 이 원장 취임 이후 표준연의 조직 개편과 연구 역량 강화는 양자기술에 집중되고 있다. 이 원장은 여러 차례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양자와 반도체에 대한민국과 기관의 미래를 걸었다”고 강조했다.


양자컴퓨팅과 양자센서, 양자통신 등 차세대 기술이 산업과 안보, 경제 전반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한국이 양자기술 분야 세계 5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국가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표준연은 초전도 양자컴퓨터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50큐비트급 양자컴퓨터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개발한 20큐비트급 초전도기반 양자컴퓨팅 시스템 모습.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 원장은 “양자기술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기술”이라며 “연구원이 가진 측정과 표준 역량을 양자 분야에 접목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분야 역시 중요한 축이다. 첨단 반도체 공정이 나노미터 수준으로 정밀해질수록 정확한 측정과 평가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하고 검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표준과 측정기술은 산업 경쟁력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호성 원장은 1986년 표준연에 입사해 연구 현장과 기관 운영을 두루 경험한 내부 전문가다. KIST유럽연구소장과 한국연구재단 나노융합단장 등을 역임하며 연구 기획과 국제 협력 경험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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