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보조엔진"…신철 BIFAN 집행위원장이 제시한 영화 산업의 미래 [D:인터뷰]
입력 2026.06.07 09:28
수정 2026.06.07 09:28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영화 산업의 주변 기술이 아니다. 제작 현장부터 투자, 배급, 창작 방식까지 영화 생태계 전반을 뒤흔들며 전 세계 영화계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는 가장 빠르게 움직인 영화제 중 하나다. 2024년 세계 영화제 최초로 AI 영화상을 신설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데 이어, 이제는 AI를 활용한 작품을 소개하는 단계를 넘어 창작자 양성과 산업 생태계 구축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BIFAN
지난 5월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영화 마켓에서도 BIFAN의 존재감은 두드러졌다. 신철 집행위원장은 칸 필름마켓의 기술 혁신 프로그램 '칸 넥스트'(Cannes Next)에 아시아 대표 패널로 참석해 AI 시대 영화 산업의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AI 영상 교육센터 부천의 성과를 공개하며 글로벌 영화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신철 집행위원장은 BIFAN이 AI 기술을 활용한 작품을 소개하는 영화제를 넘어 창작자와 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AI를 둘러싼 관심이 기술의 가능성에서 실제 활용과 생태계 구축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BIFAN 역시 영화제의 역할을 새롭게 확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AI로 만든 영화를 상영하는 쇼케이스를 넘어, 실질적인 인재 양성과 미래 생태계의 거점이 되겠다는 것을 천명했습니다. 이번 칸에서 발표해 세계 영화인들을 놀라게 한 성과가 있습니다. 바로 2025년 한 해 동안 'AI 영상 교육센터 부천'을 통해 무려 2901명의 AI 크리에이터를 배출해 냈고, 485편의 작품이 탄생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5년 내 1만 명의 크리에이터를 양성하겠다는 우리의 당초 계획을 훌쩍 초과 달성하고 있는 수치입니다. BIFAN은 기술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작자들이 새로운 도구를 손에 쥐고 미래 영화 산업의 중심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실질적인 '베이스캠프'이자 플랫폼이 될 것입니다."
그는 AI를 인간 창작자를 대체하는 경쟁자가 아닌 창작의 영역을 확장하는 도구로 바라봤다. 신 위원장은 AI가 새로운 제작 수단을 넘어 영화 산업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창작 주체를 확대하며 산업 구조 전반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장 큰 변화는 거대 자본이 독점하던 시각화의 권력이 개인 창작자에게로 넘어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현재의 변화를 '엔진의 결합'으로 봅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영화 제작, 배급, 관람 방식이 앞으로도 영화 산업을 굳건히 이끄는 '주엔진'이라면, AI를 활용한 제작 방식은 창작의 한계를 부수고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는 강력한 '보조엔진'으로 새롭게 장착된 것입니다. 이 보조엔진 덕분에 수백억의 자본 없이도 개인의 상상력이 스크린 위에 경이롭게 구현될 수 있는 진입 장벽의 붕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AI는 영화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큰 논쟁의 대상이기도 하다. 기술 발전이 창작의 영역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또 인간 창작자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
"위기의식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그전에 현장에 널리 퍼져 있는 가장 큰 오해부터 반드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마우스 클릭 한 번이면, 프롬프트 몇 줄 치면 자동적으로 훌륭한 영상이 만들어진다는 이른바 '딸깍'의 신화는 완벽한 환상입니다. 조금이라도 AI 영상 창작을 직접 경험해 본 창작자라면 누구나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창작자의 명확한 비전과 엄청난 노력의 투여 없이는 결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없습니다. AI는 우리가 이제껏 본 적 없는 놀랍도록 '스마트한 도구'인 것은 맞지만, 인간의 개입 없이는 결코 예술적 경지에 달성할 수 없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AI를 활용해 이미지를 깎고 다듬으며 서사를 구축하는 인간의 행위는, 붓을 들고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던 전통적 예술 창작 행위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BIFAN은 기술 자체가 아닌, 그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창작적 고뇌와 예술성에 주목하며 균형을 잡아갈 것입니다."
AI를 둘러싼 논의가 확산되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콘텐츠 산업의 접점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번 칸에서도 기술과 창작의 결합을 둘러싼 다양한 대화가 이어졌다.
"이 거대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 역시 '훌륭한 스토리텔러'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압도적인 기술을 개발했지만, 그것을 예술적 가치로 환산하고 증명해 줄 '인간 창작자'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부천에서의 폭발적인 크리에이터 양성 성과는 이들 기업에게도 무척 매력적인 협업 포인트였습니다. 기술 기업의 최신 AI 툴을 우리 영화인들이 직접 테스트하고 작품으로 빚어내는 실질적인 협업 모델과 인프라 교류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누었습니다."
AI 영화 역시 빠른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기술 시연 중심의 초기 단계를 지나 보다 완성도 높은 서사와 제작 방식이 등장하면서 산업적 가능성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분명한 산업화의 초입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의 AI 영상들이 신기한 이미지를 나열하는 기술 과시용 기믹(Gimmick)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완벽히 도구화되어 탄탄한 서사를 이끌어가는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우리 교육센터에서 나온 485편의 작품들만 보아도, 창작자의 치열한 노력과 비전이 결합되었을 때 실험 단계를 넘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상업적·예술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프리비즈나 특수효과 부문에서는 이미 현장의 핵심 보조엔진으로 활발히 돌아가고 있습니다."
ⓒBIFAN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국 영화와 창작자들을 향한 해외의 관심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칸 현장에서는 한국 장르영화의 독창성과 향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K-장르의 무기는 장르의 문법을 과감하게 파괴하는 역동성과 그 기저에 흐르는 한국 특유의 끈끈하고 짙은 정서입니다. 칸에서도 나홍진 감독의 '호프'에 대해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영화적 성취에 대해 큰 호평이 있었습니다. 한국 창작자들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서사 전개 방식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K컬처가 전세계의 시선을 사로 잡고 있는 현재의 현상을 잘 활용해야 할 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AI라는 새로운 보조엔진이 본격적으로 가동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본의 한계 때문에 머릿속에만 가둬두어야 했던 우리 창작자들의 거대한 상상력이 날개를 달게 될 것입니다. K-장르의 파괴력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신철 위원장은 올해 30주년을 맞은 BIFAN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막바지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 장르영화 축제로 출발한 BIFAN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 어떤 비전과 방향성을 선보일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올해 30주년 BIFAN을 관통하는 거대한 화두는 'WHAT IS HUMAN? — AI 시대의 영화'입니다. AI라는 강력한 도구가 등장한 지금, 역설적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작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관객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30년이 마니아를 위한 판타스틱 축제였다면, 앞으로의 30년은 'New Era, New Skin'(새로운 시대, 새로운 스킨)이라는 슬로건처럼 완전히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진화할 것입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AI 영화제(BIFAN+)를 통해 첨단 기술과 인간의 상상력이 만나는 가장 뜨거운 현장을 목격하시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