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왜 또 한국 총수들 찾나...'AI 깐부' 2라운드
입력 2026.06.04 12:49
수정 2026.06.04 12:49
최태원 이어 구광모까지 연쇄 회동
HBM·로봇·소버린AI로 협력 확대
엔비디아 생태계서 韓 기업 존재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일(현지 시간)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정보기술(IT) 박람회 ‘컴퓨텍스 2026’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타이베이=AP 뉴시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오늘(4일) 한국을 찾아 방한 일정을 시작한다. 지난해 경주에서 열린 2025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을 계기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이른바 '깐부 회동'을 가진 데 이어 이번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등과의 회동이 거론된다.
4일 재계에 따르면 황 CEO의 이번 행보는 친목 차원을 넘어선다는 평가가 나온다.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생태계가 반도체를 넘어 로봇과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 소버린AI, 데이터센터로 확장되면서 한국 기업들의 전략적 가치가 커진 영향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AI 반도체용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망을 책임지고 있고, 현대차·LG·네이버는 피지컬AI와 AI 인프라 영역에서 엔비디아의 주요 협력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황 CEO는 최근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 기간 한국 기업들을 위한 별도 행사인 '코리안 파트너 나이트'를 열었다. 행사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 네이버클라우드, 두산로보틱스, 국내 AI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엔비디아가 컴퓨텍스 기간 한국 파트너만을 위한 별도 자리를 마련한 것은 이례적이다.
가장 직접적인 접점은 메모리 반도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컴퓨텍스 현장을 찾아 황 CEO의 기조연설을 참관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SK하이닉스가 향후 5년간 웨이퍼 생산능력을 두 배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AI 서버 확산으로 HBM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핵심 HBM 공급사로 자리 잡았다. 삼성전자도 최근 컴퓨텍스에서 8세대 HBM5 실물 모형(목업)을 공개하며 차세대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협력 범위는 반도체에 그치지 않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만남이 성사될 경우 자율주행, 로보틱스, 스마트팩토리 협력이 주요 의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그룹은 로봇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보유하고 있고 엔비디아와 AI 인프라 협력 구상을 공유한 바 있다. 자동차가 소프트웨어와 AI 중심 제품으로 바뀌면서 엔비디아의 차량용 컴퓨팅 플랫폼과 현대차의 제조·모빌리티 역량이 맞물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구광모 LG그룹 회장과의 접점도 주목된다. LG전자는 스마트팩토리와 로봇, 가전 AI를 강화하고 있고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LG이노텍은 센서·카메라, LG CNS는 클라우드·데이터센터 역량을 갖추고 있다. 엔비디아가 강조하는 피지컬AI가 현실 세계의 제조·물류·로봇 영역으로 확장되는 만큼 LG그룹과의 협력 여지도 넓다.
네이버와의 협력은 소버린AI와 AI 인프라 분야에 맞춰질 가능성이 있다. 황 CEO는 방한 기간 네이버 제2사옥 '1784' 방문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 CEO가 김택진 NC소프트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과의 회동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AI 협력 범위가 게임업계로 확대될 가능성도 언급된다.
두산과의 접점도 생겼다. 황 CEO는 오는 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두산 베어스 홈경기에서 시구자로 나설 예정이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시타를 맡는다. 두산 역시 협동로봇과 에너지, 산업장비 분야에서 피지컬AI 적용 가능성을 가진 기업으로 꼽힌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최태원 SK그룹 회장.ⓒSK하이닉스 페이스북
다만 기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엔비디아와의 협력은 곧 대규모 투자 부담을 뜻하기도 한다. HBM 생산능력 확대에는 막대한 설비투자가 필요하고 AI 데이터센터는 전력 확보가 관건이다. 로봇과 자율주행, 소버린AI 역시 단기간에 수익을 내기 어려운 장기전이다. 엔비디아 생태계에 깊이 들어갈수록 기술 협력 기회는 커지지만 동시에 공급망 종속과 투자 부담도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황 CEO의 방한을 한국 기업들이 AI 공급망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가늠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깐부 회동'이 AI 팩토리와 반도체 중심이었다면, 이번 방한은 피지컬AI와 소버린AI까지 협력 범위가 확대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AI가 데이터센터 안에만 머물던 시대가 지나고 공장, 자동차, 로봇, 가전, 물류, 클라우드로 내려오고 있다"면서 "이번 이벤트를 보는 기준은 누가 젠슨 황을 만나는지가 아니라, 누가 엔비디아 생태계 안에서 반복 매출을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