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없으면 안되는 약인데"…퇴장방지약, 5년 새 71건 '퇴장'
입력 2026.06.02 14:01
수정 2026.06.02 14:04
최근 5년간 퇴장방지의약품 생산·수입·공급 중단 71건
공급 중단 사유 1위는 ‘채산성 악화’…공급망 취약성 여전
“약가 인상 넘어 생산·공급 체계 전반 손질 필요”
ⓒ클립아트코리아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된 필수의약품마저 생산·공급 중단이 반복되면서 의료 현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공급 유지를 위해 약가를 보전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낮은 수익성과 원가 부담 등 구조적 문제로 인해 생산 중단 사례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022~2026년 5월 퇴장방지의약품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생산·수입·공급이 중단된 퇴장방지의약품 품목 수는 총 71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22년 4건, 2023년 17건, 2024년 27건, 2025년 17건, 2026년 5월 기준 6건이다.
퇴장방지의약품은 환자 치료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수익성이 낮아 제약사가 생산을 기피할 가능성이 있는 의약품을 말한다. 정부는 이들 의약품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00년 3월 퇴장방지의약품 제도를 도입했으며, 현재 630개 품목을 지정·관리하고 있다.
생산·공급 중단 사유(중복 집계)는 채산성 악화가 3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생산라인 철수 및 설비 문제 20건, 기타 생산 이슈 11건, 원료 수급 차질에 따른 생산 중단 10건 순이었다. 수익성 부족이 공급 중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공급 불안 논란을 빚은 ‘아티반’ 주사제다. 로라제팜 성분의 아티반은 소아 급성 경련 환자의 1차 치료제로 사용되는 필수 응급의약품이다. 열성경련 환아의 발작을 신속히 억제하는 역할을 하며 국가필수의약품이자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1982년부터 국내에서 유일하게 아티반 주사제를 공급해 온 일동제약이 지난해 12월 생산 중단을 결정하면서 공급 공백 우려가 제기됐다. 현재는 삼진제약이 품목을 넘겨받아 생산과 공급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공급 공백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아티반 주사제. ⓒ일동제약
생산 중단 배경으로는 강화된 제조 기준과 지나치게 낮은 약가가 동시에 지목된다. 정부가 무균의약품 제조·품질관리 기준(GMP)을 국제 기준에 맞춰 강화하면서 추가 설비 투자 부담이 발생했지만, 약가가 워낙 낮아 투자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현재 아티반의 약가는 앰플당(2㎎) 782원으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껌 한 통 가격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의료계에서는 생산 원가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약가 체계 속에서 강화된 제조 기준에 따른 대규모 설비 투자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제조사가 생산 중단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아티반에 이어 히드로코르티손 주사제(코티소루주)도 이르면 오는 7월 재고가 소진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이 특정 품목에 그치지 않는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아티반을 비롯한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 문제는 의료 현장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며 “이번 아티반 사태가 일단락되더라도 언제든 또 다른 품목에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5월 퇴장방지의약품 약가 기준을 최대 10% 인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복제는 기존 525원에서 578원으로, 주사제는 5257원에서 5783원으로 상향되며 오는 8월부터 적용된다. 아울러 퇴장방지의약품을 직권으로 지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정책가산 제도를 도입해 기업의 생산 지속을 유도할 방침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정부가 내놓은 약가 인상률정도로는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료비와 생산비 상승으로 채산성이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 10% 수준의 약가 인상은 실질적인 유인책이 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형민 인제대 일산백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약가가 100원에서 110원으로 오른다고 해서 현재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며 “약제마다 작용 기전이 달라 대체제가 있다고 해서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필수의약품은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약일 수도 있지만, 매우 드물게 사용하는 약일 수도 있다”며 “다만 그 약이 필요한 순간 공급되지 않으면 환자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홍경택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도 “그동안 당연하게 사용해 왔던 약제들이 실제 병원 현장에서 재고가 소진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필수의약품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결국 부작용 위험이 더 큰 대체 약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동안은 새로운 치료법과 신약 도입에 관심을 기울여 왔는데, 이제는 기존에 당연하게 사용하던 약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며 “현장의 우려가 큰 만큼 이 같은 공급 불안이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