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투 미'→'백룸'…유튜브가 키운 북미 호러의 새 얼굴들 [D:영화 뷰]
입력 2026.06.01 14:30
수정 2026.06.01 14:30
온라인 플랫폼이 바꾼 공포영화의 등용문
신작 호러 영화 '백룸'(Backrooms)의 글로벌 흥행 기세가 심상치 않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5월 21일 국내 개봉한 '백룸'은 6월 1일 기준 누적 관객 수 39만 1123명을 기록하며 호러 팬덤의 지지를 바탕으로 장기 흥행 궤도에 안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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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눈길을 끄는 곳은 본진인 북미 시장이다. 1일 박스오피스 집계에 따르면 '백룸'은 개봉 첫 주말을 통과하며 북미 누적 흥행 수익 3841만2634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개봉 전날 진행된 목요일 프리뷰에서만 104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A24 역사상 최고 프리뷰 흥행 기록이었던 '시빌 워'(2024)의 290만 달러를 세 배 이상 뛰어넘는 신기록을 세웠다. 순제작비 1000만 달러 규모의 저예산 영화가 개봉과 동시에 제작비의 수배에 달하는 수익을 거두며 흥행 공식을 새롭게 쓰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반응은 젠지(Gen-Z) 세대의 콘텐츠 소비 방식과도 맞물린다. 온라인상에서는 "백룸에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는 입소문과 함께 영화 속 단서와 세계관을 분석하는 해설 콘텐츠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N차 관람으로 이어지며 흥행에 힘을 보태고 있다. 특히 국내 관객들은 노란 벽면과 끝없이 이어지는 형광등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공간니 부믐 특유의 불안감에 강하게 반응하는 분위기다.
흥행 자체도 놀랍지만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백룸'의 성공이 최근 북미 공포영화 시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유튜브 출신 감독'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백룸'은 노란 벽면과 끝없이 이어지는 형광등 아래 펼쳐진 기이한 공간에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마주하게 된 클락과 메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의 출발점이 기존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확산된 도시괴담이었다.
이 괴담을 영상 콘텐츠로 발전시킨 인물이 바로 케인 파슨스 감독이다. 2005년생인 그는 영화학교나 독립영화제를 통해 경력을 쌓은 전통적인 감독이 아니다. 17세였던 2022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단편 '백룸'을 공개했고, VHS 질감의 영상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는 독특한 연출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후 해당 시리즈는 수억 회 조회수를 기록하며 하나의 인터넷 현상으로 성장했고, A24는 그를 장편 영화 감독으로 발탁했다. 이에 파슨스는 스무 살의 나이에 북미 극장가를 뒤흔드는 흥행 감독으로 떠올랐다.
사실 이러한 흐름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북미 공포영화계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톡 투 미'(Talk to Me)를 연출한 대니 필리포우와 마이클 필리포우 형제다. 이들은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액션 패러디 영상과 인터넷 밈 콘텐츠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이후 첫 장편 영화 '톡 투 미'를 통해 북미 호러 시장의 새로운 얼굴로 자리 잡았다.
특히 '톡 투 미'는 SNS 시대 청소년들의 놀이 문화를 강령술이라는 전통적 공포 장치와 결합하며 젊은 세대의 감각을 호러 문법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창작자들이 자신들만의 언어로 공포를 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였다.
이 같은 흐름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게임 유튜버 출신 마크플라이어의 '아이언 렁'(Iron Lung), 영화 리뷰 유튜버 크리스 스턱만의 '셀비 오크스'(Shelby Oaks) 역시 같은 맥락에서 거론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온라인 플랫폼에서 먼저 관객과 만나며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러한 변화가 공포영화 장르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공포영화는 상대적으로 제작비 부담이 적은 반면 독창적인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도 강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장르다. 실제로 '톡 투 미'와 '백룸' 모두 거대한 스타 캐스팅이나 유명 프랜차이즈 없이도 강한 콘셉트와 온라인 화제성을 바탕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인터넷에서 성장한 창작자들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정서가 공포라는 분석도 나온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는 도시괴담, 밈(Meme), 크리피파스타(Creepypasta), 아날로그 호러(Analog Horror) 문화는 이미 젊은 세대의 일상적인 콘텐츠 소비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끝없이 반복되는 공간, 출구를 찾을 수 없는 구조, CCTV 시점, 저화질 영상이 주는 불안감 역시 이러한 인터넷 문화 속에서 발전한 새로운 공포 문법이다.
이는 영화산업의 인재 발굴 방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과거 영화학교와 독립영화제가 신인 감독의 출발점이었다면, 이제는 유튜브와 온라인 플랫폼이 그 역할을 일부 대신하고 있다. 창작자들은 플랫폼에서 먼저 팬덤과 세계관을 구축하고, 산업은 이미 검증된 관심도를 바탕으로 이들을 상업영화 시장으로 흡수한다. '백룸'은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인터넷 문화에서 성장한 창작자들이 할리우드의 차세대 주역으로 부상하면서, 북미 호러 시장 역시 새로운 세대로의 전환점을 맞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