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방공호에서 마주한 인간의 본질, 뮤지컬 ‘더 라스트맨’ [D:헬로스테이지]
입력 2026.05.26 10:34
수정 2026.05.26 10:35
6월 7일 링크더스페이스 1관서 1차 공연 마무리
6월 9일부터 2차 공연...정민·주민진·김려원·홍나현 출연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덮은 아포칼립스 상황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더 라스트맨’은 표면적으로는 생존 스릴러의 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극의 전개는 외부의 위협인 좀비와의 사투보다는, 지하 방공호라는 폐쇄된 공간에 갇힌 인간의 내면 변화에 집중한다. 작품은 단 한 명의 배우가 무대를 이끌어가는 1인극 구성을 통해 고독이 인간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지키고자 하는 인간성이 무엇인지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네오
극의 배경은 주인공인 ‘생존자’가 스스로를 격리한 지하 방공호 ‘B-103’이다. 좁고 밀도 있게 구성된 무대에는 생존을 위한 통조림, 식수, 방독면, 그리고 외부 상황을 살필 수 있는 모니터 등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주인공은 이곳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버티며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다. 매일 아침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고, 보급품을 확인하며, 일정한 규칙에 따라 생활하는 모습은 재난 상황에서도 질서를 유지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준다.
110분간 지속되는 1인극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작품은 다양한 연출적 장치를 활용한다. 주인공이 기록하는 브이로그 영상은 실시간으로 무대 곳곳의 화면에 투사되어 관객에게 인물의 표정과 심리를 클로즈업해 전달한다. 또한 주인공이 유일하게 대화를 나누는 대상인 반려 인형 조이는 인물의 환상과 실제를 오가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초반의 활기찬 기록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아 분열적 독백으로 변하며, 고립된 인간이 겪는 심리적 붕괴 과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무대는 물리적으로는 닫혀 있으나, 주인공의 상상력과 과거 회상을 통해 심리적인 확장을 꾀한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좀비의 소음과 사이렌 소리는 청각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방공호 안팎의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특히 조명과 음향의 변화는 평범했던 일상의 공간이 공포의 공간으로 변질되는 순간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단순한 재난이 아닌, 현대인이 겪는 사회적 단절과 소외의 은유임을 나타내는 요소다.
ⓒ네오
‘더 라스트맨’은 좀비의 침입을 막는 물리적 방어보다, 내면의 공포와 외로움을 견디는 정신적 방어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극 후반부에 이르러 주인공이 마주하는 진실은 관객에게 ‘살아남는 것’(Surviving)과 ‘사는 것’(Living)의 차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방공호는 안전을 보장하는 요새인 동시에 스스로를 가둔 감옥이기도 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행위는 죽음의 위협을 감수하더라도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상징한다.
‘더 라스트맨’은 좀비물이라는 장르적 재미에 머물지 않고, 고립된 환경 속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취약함과 존엄을 담백하게 그려낸다. 과장된 수식이나 극적인 반전에 의존하기보다, 한 인물의 처절한 생존 기록을 통해 현대 사회의 고독사를 비롯한 여러 사회적 문제를 투영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방공호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그 문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생존자 역에는 김지온, 홍승안, 김이후, 김찬종이 출연 중이며 6월 7일까지 링크더스페이스 1관에서 공연된다. 이어 6월 9일부터 8월 9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진행될 2차 공연에는 정민, 주민진, 김려원, 홍나현이 캐스팅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