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HD현대중공업, 교섭의무 없어"…하청노조 "강력히 규탄"(종합)
입력 2026.05.21 18:16
수정 2026.05.21 18:16
구법 사건엔 '묵시적 근로계약' 기준 유지…하청노조 패소 확정
노란봉투법 시행 뒤 하청노조 1101곳 원청 교섭 요구
HD현대중공업 하청노조도 개정법 근거 원청 교섭 추진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원들이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단체교섭 청구 소송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따른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대법원이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에 대한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2017년 제기된 소송인 만큼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법 2·3조가 직접 적용되지 않았고, 대법원은 구 노동조합법상 기존 판례인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관계 기준을 유지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하청노조 측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원청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단체교섭 의무를 지는 사용자로 볼 수 있는지였다. 하청노조는 HD현대중공업이 작업 배치와 공정 운영, 산업안전, 고용 안정 등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만큼 원청도 교섭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원들이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단체교섭 청구 소송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따른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대법원 다수의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개정 노동조합법 2·3조 시행 전 사안에는 구 노동조합법 2조가 적용되고, 이 경우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는 기존 판례처럼 명시적 또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청이 하청노조에 대해 지배·개입하지 않을 의무 등 소극적 의무를 부담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까지 부담한다고 해석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전원합의체 내부에서도 판단은 갈렸다. 이흥구·오경미·신숙희·마용주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원청이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하청노조에 대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하청노조는 2016년 HD현대중공업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2017년 1월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HD현대중공업이 하청노조에 대해 단체교섭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대법원도 원심을 확정했다. 2018년 12월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7년 넘게 계류된 끝에 하청노조 패소로 마무리됐다.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원들이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단체교섭 청구 소송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따른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그러나 소송이 진행되는 사이 법적 환경은 달라졌다. 지난 3월10일 시행된 노란봉투법은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면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했다.
실제 개정법 시행 이후 원청을 상대로 한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는 빠르게 늘고 있다. 법 시행 이후 지난 8일까지 약 두 달간 하청노조 1101곳이 원청 408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소속 조합원 수는 15만1800여명에 달한다. 반면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한 원청 사업장은 38곳에 그쳤다.
HD현대중공업 하청노조 측이 이번 판결에서 판례 변경을 기대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사건 자체는 노란봉투법 시행 전 제기됐지만, 개정법이 이미 원청 사용자성 판단 기준을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으로 넓혔고 최근 하급심과 노동위원회에서도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흐름이 이어졌다는 게 노조 측 판단이었다.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법이 개정이 됐고 또 수많은 하급심 판결이 그를 증명하고 있고 노동위 최근에 개정된 노조법에 따라서 노동위가 사용자성을 수많이 인정했다"며 승소를 예상했다고 설명했다.
금속노조는 선고 직후 서울 서초구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반발했다. 노조는 2017년 시작된 소송이 대법원에서만 7년 넘게 계류된 끝에 패소로 마무리된 데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오세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도 "3월12일부터 원청 교섭이 열렸다"며 "교섭을 하겠다는 현대중공업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고 아직도 본교섭이 시작돼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는 판결 이후에도 원청 교섭 요구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노조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오늘의 판결이 우리의 투쟁을 멈추게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HD현대중공업을 향해 "판결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향후 성실하게 교섭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