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파는 BTS처럼…위기의 대학로, ‘골목’ 상권 판다
입력 2026.05.21 01:46
수정 2026.05.21 01:46
작년 대학로 공연 매출 전년 상반기 대비 25.5% 급감
'공연 보는 곳' 넘어 '머무르는 곳'으로
'대-락(樂)로' 캠페인 7월부터 11월까지 진행
대학로 공연예술계가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에 나섰다. 최근 OTT 플랫폼의 등장과 코로나19 팬데믹의 타격으로 대학로 방문객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특히 케이팝과 뮤지컬 등 거대 자본 중심의 문화 편중이 심화하면서 대학로 공연의 2025년 티켓 매출액은 전년도 상반기 대비 25.5% 급감했다.
ⓒ서울문화재단
연극계 침체와 유동 인구 감소라는 이중고 속에서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송형종)은 최근 지자체인 서울시와 종로구를 비롯해 혜화역장(공공), 연극 및 무용협회·소극장·극단·연출가(예술계), 성균관대·홍익대·한성대·정화예대(대학교), 한국연극(매체), 명륜청춘길 번영회(상권) 등 거점 분야별 대표자 21명과 간담회를 열고 지역 리브랜딩 방향성을 모색했다.
이를 통해 ‘공연 보는 곳’을 넘어 ‘머무르는 곳’으로 전환하기 위한 ‘대-락(樂)로’ 캠페인의 시작을 알렸다. 대학로를 기초예술 창작 에너지가 확산되는 거대한 문화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공연 소비 문법이 극장 내부를 넘어 공간과 도시 전체를 점유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산업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대중음악계에서는 방탄소년단의 ‘더 시티(THE CITY)’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앞서 서울 주요 랜드마크에 신보 메시지를 투영해 도심 전체를 축제의 장으로 탈바꿈시킨 이 프로젝트는 실질적인 관광 활성화를 이끌어냈다. 국보 숭례문 미디어 파사드는 관람객 중 외국인 비중이 73%에 달했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아미 마당’은 외국인 비중이 86%를 상회하며 강력한 모객 효과를 보여줬다. 프로젝트 기간 운행된 맞춤형 투어 버스 이용자 수 역시 평소 대비 약 20% 상승하는 등 도시 전체를 하나의 체험형 테마파크로 기능하게 만들었다.
공연계에서도 이미 유사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뮤지컬 전용 극장인 샤롯데씨어터의 경우, 대학로에 위치했던 뮤지컬펍과 협업해 ‘커튼콜 인 샬롯’을 극장 내에 들여와 공연의 감동을 무대 밖에까지 연장했다. 특정 작품의 세계관과 스토리를 레스토랑의 식탁 위 미식 코스로 구현해 내며, 관객이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체험형 테마파크로 소비하도록 유도했다. 뿐만 아니라 로비 공간에 작품에 따라 즉석 사진 포토부스, 를 설치하기도 하고, 보물찾기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며 관객들이 극장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샤롯데씨어터
공공극장의 공간 혁신 사례로 꼽히는 세종문화회관은 제작극장 전환과 함께 세종라운지를 중심으로 공공 라운지를 조성하고, 라운지 음악회 등 일상 속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확장했다. 또 광장과 로비 공간의 개방적 활용을 통해 관객은 물론 광화문 광장을 찾는 시민과 국내외 방문객까지 자연스럽게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서 극장을 관람 전후까지 머무는 체류형 문화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이처럼 자본이 집중된 상업 공연이나 대형 극장에서 검증된 공간 점유의 문법을 대학로라는 기초예술 생태계에 적용하려는 전략이 바로 ‘대-락(樂)로’ 캠페인이다. ‘대-락(樂)로’는 단순히 개별 극장 안에서 작품을 홍보하는 방식을 벗어나, 대학로 일대 전체를 하나의 ‘거대 공용 로비’이자 경험 플랫폼이다.
주요 콘텐츠로 한국연극의 황금기를 이끈 연출가 5인의 대표작을 만나는 ‘쿼드, 연극의 질문들: 진화하는 텍스트’가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열린다. 여기에 공연 전 인근 공간에서 작품을 미리 접하는 쇼케이스 ‘제철연극’, 공연 후 살롱형 문화 콘텐츠인 ‘애프터 시어터’, 예술 창작 재료를 테마로 30여 개 팀이 참여하는 큐레이션 마켓 ‘댕로마켓’ 등이 유기적으로 운영된다. 관객이 대학로에 길게 체류하며 상권과 연계된 부가 서비스를 소비하도록 구조를 짠 것이다.
새로운 문화지구로 나아갈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과제도 적지 않다. 간담회에 참석한 고선웅 연출은 “자본에 잠식되지 않은 공간과 공연의 매칭”을 기대했고, 이은경 편집주간은 “지적 담론의 장이 열린 것”에 기대감을 표했다. 그러나 ‘대-락(樂)로’ 캠페인은 7월부터 11월까지 5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공공 예산과 기획력이 투입되는 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민간 주도로 자생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과 운영 노하우가 현장에 내실 있게 안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1980~90년대 문화의 성지로 불리던 대학로는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에 의해 주요 상권이 이동하는 부작용을 겪은 바 있다. 지역 리브랜딩과 가치 상승이 임대료 폭등으로 이어져 영세 소극장과 창작자들을 다시 외곽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낳지 않으려면 실질적인 상생 방안과 실무적 안전장치가 병행되어야 한다. 대학로가 일회성 팝업 관람지를 넘어 예술가와 상권이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문화적 영토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