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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후장대에도 '반도체식 성과급' 바람?…월동 식량 털자는 얘기 [기자수첩-산업]

이소영 기자 (sy@dailian.co.kr)
입력 2026.05.19 07:00
수정 2026.05.19 07:00

"고생한 만큼 받아야"…현장서 커지는 보상 요구

조선·철강은 사이클 산업…중후장대식 해법 필요

HD현대중공업 야드 전경 ⓒHD현대


“버는 만큼 받아야 한다”


최근 산업계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 중 하나다. 시작은 반도체였다. 고성과의 결실을 근로자들에게도 고루 나눠야 한다는 분위기가 제조업 전반으로 번지면서 이른바 ‘중후장대’ 산업 노조에서도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요구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호황의 온기를 고생한 직원들과 나누자는 취지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다만 지금 산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요구를 들여다보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과연 중후장대 산업에 ‘반도체식 성과급 공식’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최근 HD현대중공업 노조는 회사 영업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공유할 것을 요구했다. 증권가 전망대로 올해 영업이익이 3조6000억원 수준에 이를 경우 단순 계산으로 1조원이 넘는 재원이 성과급으로 투입돼야 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역대급 실적에는 역대급 보상’이라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제는 산업의 체질이다.


반도체와 중후장대 산업은 돈을 버는 방식부터 다르다. 삼성전자와 같은 IT·반도체 기업은 기술 경쟁력과 수요 회복에 따라 상대적으로 짧은 사이클 안에서 반등이 가능하다. 하지만 조선·철강·해운 같은 산업은 다르다. 한 번 불황이 오면 수년 간 이어지고, 살아남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기도 한다.


조선업만 봐도 수년 간 적자에 허덕이다 흑자 사이클로 돌아선게 불과 2년 전이다. 세계 발주 절벽과 저가 수주 경쟁 속에서 “일감만 있어도 다행”이라는 말이 업계에 공공연히 돌았다. 철강 역시 중국발 공급 과잉과 건설 경기 침체에 실적이 급변하는 대표적인 경기 민감 산업이다.


그런데 호황기에 영업이익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고정 지급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 어떨까. 기업 입장에서는 사이클 산업 특유의 ‘겨울 대비 체 비축’이 어려워질 수 있다.


실제 중후장대 기업들은 업황이 좋을 때 벌어들인 현금으로 불황기를 버티거나 미래 설비 투자에 나선다. 선사는 고부가 선박 기술 개발과 친환경 선박 전환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야 하고, 철강사는 탄소 중립 대응을 위한 전기로 전환과 수소환원제철 투자 부담을 안고 있다. 지금 벌었다고 해서 지금 모두 나눌 수 없는 구조다.


물론 현장 노동자들의 희생 없이 지금의 실적 개선은 불가능했다는 노조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불황 때 허리띠 졸라매라더니 호실적에도 성과 분배는 변변찮다”는 불만이 고착화된다면 과거와 같은 숙련 인력 이탈 위기가 찾아와 산업 본원 경쟁력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건 ‘어떻게’다. 단기 영업이익에 기계적으로 연동하는 방식이 답인지는 의문이다. 반도체가 만든 성과급 공식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산업마다 체질은 다르다. 이걸 중후장대에 욱여넣는다면 호황기에는 과도한 부담이 되고, 불황기에는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많이 벌었으니 많이 나누자”는 구호만으로는 긴 산업 사이클을 견디기 어렵다. 업황과 투자 계획, 장기 성과를 함께 반영하는 ‘중후장대 산업만의 보상 체계’를 노사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경영진과 근로자 모두의 일자리가 지속가능성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성과보다 내일도 버틸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소영 기자 (sy@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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