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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아닌 ‘미학’에 쏟아진 박수…무대 관습 깨는 장애예술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5.19 06:13
수정 2026.05.19 06:13

연극 '젤리피쉬' 동아연극상·백상예술대상 등 잇따라 수상

올해 초 연극 ‘젤리피쉬’가 동아연극상과 백상예술대상을 잇달아 석권하며 남긴 파장은 한국 연극계에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단순히 특정 작품의 성취를 넘어, 장애예술이 주류 무대의 미학적 기준을 충족하며 비평의 중심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연극 '젤리피쉬'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장애예술이 시혜적 배려나 사회적 메시지 틀 안에서 소비되고, 장애인 창작자의 참여 자체에 의의를 두고, 장애의 극복이라는 감동 서사에 집중하는 등에 그치지 않고, 작품의 완성도와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특히 ‘젤리피쉬’가 거둔 미학적 성취의 저변에는 장애예술 전문 공연장인 ‘모두예술극장’의 체계적인 지원이 자리한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설립한 이 극장은 기획 단계부터 장애 창작자의 접근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연습실 문턱이나 무대 동선과 사투하는 대신, 오로지 작품의 서사와 연출의 정밀함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결과다.


‘젤리피쉬’는 영국 극작가 벤 웨더릴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27세 여성 켈리가 사랑·관계·자립을 통해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경쾌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다운증후군 당사자 배우 백지윤이 켈리 역을 맡아 2시간이 넘는 무대를 이끌고, 저신장 장애인 배우 김범진이 도미닉 역을 연기한다. 그동안 한국 연극 무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배역과 배우의 결합이 작품의 골격을 이룬다.


장애 당사자 배우가 연기한 주인공 켈리의 욕망과 고뇌는 장애를 ‘결함’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무대 위 신체적 다양성은 전형적인 연극 문법을 확장하는 예술적 장치로 기능했다. 공공 인프라가 창작의 기본권을 보장할 때 작품의 완성도가 어디까지 상승할 수 있는지를 입증한 셈이다. 양대 시상식 심사 위원단 역시 “예술적 수월성과 대중적 확산성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심사했다” “관객들이 강요받기보다 객석에서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수작” “공존과 인간의 선함을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고, 연출과 배우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작품” 등 작품성 중심의 평가를 내놨다.


접근성 높은 연극 '해리엇' ⓒ강동문화재단

지난 4월 강동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접근성 높은 연극 ‘해리엇’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 공공극장인 강동아트센터는 제작 단계부터 접근성을 연출의 핵심 언어로 통합하는 실험을 단행했다.


175년을 산 거북이 해리엇의 시선으로 돌봄과 동생의 가치를 다루는 이 작품에서, 자막과 수어 통역은 정보를 전달하는 보조 수단을 넘어 무대 위의 시각적, 청각적 미학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수어 통역 배우의 움직임은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또 다른 신체 언어가 됐고, 음성 해설은 서사의 일부로 배치돼 극의 일체감을 더했다. 이는 장애를 고려한 장치들이 표현의 제약이 아니라, 새로운 무대 미학을 창출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과거 장애예술이 개별 창작자의 분투와 희생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극장의 시스템이 창작을 견인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배리어 프리(Barrier-free) 설비를 갖추는 초기 단계를 지나, 기획 단계부터 장애와 비장애 창작자의 협업을 상수로 두는 제작 공정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시스템 안에서 장애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닌, 무대 위에서 감각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예술적 재료로 기능한다.


한 연극 관계자는 “장애와 비장애 창작자가 대등하게 협업할 수 있는 포용적인 제작 가이드라인이 수립되어야 한다”면서 “연습 공간의 상시 확보, 접근성 매니저의 전문화, 장애 예술인 전용 제작 지원 제도 등 실질적인 행정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예술의 성취’를 특별한 예외로 두지 않고 장애라는 경계를 지우고, 무대 위의 ‘예술적 미학’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공정한 창작 환경이 지속 마련되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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