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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의 근원은 개별성”…연상호 감독이 ‘군체’에 담은 AI 시대의 질문 [칸 리포트]

데일리안프랑스, 칸) =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5.17 08:25
수정 2026.05.17 08:35

"전지현, 현장 분위기 메이커"

연상호 감독이 신작 '군체'를 통해 통산 네 번째로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지난 2012년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감독주간)으로 칸과 첫 인연을 맺은 연 감독은 이후 '부산행', '반도'에 이어 '군체'까지 잇따라 초청받으며, '세계 최고의 영화 축제' 칸 국제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쇼박스


영화 '군체'는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에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 벌이는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연 감독은 전작들에서 선보인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한 단계 더 확장했다. 단순히 날뛰는 좀비를 넘어, 감염자들이 집단지성을 활용해 일원화되어 진화하는 모습과 인간의 고군분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둡고 불편한 단면을 날카롭게 응시한다.


16일(현지시간) 칸 팔레 데 페스티벌 테라스에서 좀비물로 다시 돌아온 연상호 감독을 만났다.


“처음 작품을 구상할 때 AI 이야기를 되게 많이 생각했어요. 그때 AI가 막 주목받기 시작할 때였거든요. 그 전까지는 AI라고 하면 바둑 두는 정도만 생각했는데, 막상 깊게 보니까 너무 신기한 거예요. 결국 AI 알고리즘이라는 게 쉽게 말하면 ‘보편적 사고의 총합’ 같은 느낌이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럼 인간은 뭐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보편적 사고의 총합의 반대는 뭘까 생각했을 때, 결국 개별성 아닐까 싶었어요. 소수 의견이나 소수자의 존재 같은 것들 말이죠. 그건 인공지능은 절대 낼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인 것 같았어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전작 ‘지옥’을 작업할 때 느꼈던 우리 사회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들,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았어요. 마침 최규석 작가랑 그런 대화를 많이 나눴고, ‘이걸 영화로 해보면 어떨까’ 하다가 좀비 장르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AI라는 개념을 설정에 넣으니까 오히려 좀비가 진화하는 설정을 만들기가 훨씬 쉬워졌다.


“AI가 발전하는 과정이 보면 굉장히 기계적이거든요. 사람이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방식과 완전히 다르게 결과에 도달하잖아요. 예를 들면 AI가 얼굴은 엄청 잘 그리는데 손가락은 이상하게 만드는, 그런 식의 딥러닝 방식 자체가 인간이랑 너무 달라서 되게 신기하면서도 기괴했어요. 그래서 좀비가 배워가는 방식이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를 해가는 거죠. 그런걸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전 좀비물과는 다를 것 같단 생각을 했습니다.”


좀비의 기괴한 학습 방식을 시각화하는 과정은 연상호 감독에게도 하나의 거대한 도전이었다. 난해할 수 있는 철학적 뼈대를 관객들이 직관적인 재미로 느끼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연 감독은 이처럼 묵직한 주제 의식을 장르 영화라는 그릇에 담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영화가 품고 있는 메시지 자체가 쉽지 않은 이야기였어요. 휴머니즘의 근원이 개별성이라는 메시지니까. 그런데 그걸 장황하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영화 자체는 굉장히 직관적이고 체험 중심의 관람이 되길 바랐거든요. 그 두 가지 목적이 사실 상충되는데, 어떻게 하나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좀비가 진화한다’를 순간적인 시각만으로도 관객이 느끼게 만들고 싶었고요. 그래서 안무팀, 디자인팀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연상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기존 좀비물과 차별화된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안무 방식부터 새롭게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빠르고 거친 동작이 아닌, 하나의 의식처럼 연결되고 집단적으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의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현대무용 팀과 긴밀하게 협업했다.


“전작들에서는 브레이크댄스를 하시는 분들이 많이 참여했는데, 이번에는 군집을 표현해야 하는 이슈들이 있었어요. 브레이크댄스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현대무용 팀들을 섭외하게 됐죠. 현대무용 하시는 분들은 원래부터 몸으로 감정이나 개념을 표현하는 데 익숙한 분들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런 주제를 던졌을 때 이해 속도가 굉장히 빨랐어요.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학습하는 존재를 표현하는 데 현대무용 팀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대본 쓸 때도 ‘좀비가 이런 움직임을 하는 게 맞나’ 싶었던 장면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안무팀이 실제로 구현하는 걸 보고 확신이 생겼어요. 보통 촬영 쉬는 시간에는 다들 지쳐서 쉬게 되는데, 현대무용 팀은 계속 스트레칭하고 몸을 풀더라고요. 몸으로 계속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게 되게 신기했어요.”


좀비의 진화와 맞물려 폐쇄된 공간 속 생존자 그룹이 보여주는 다양한 인간군상 역시 영화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연상호 감독은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는 두 집단의 대비를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가 지켜내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초반에 생존자들도 일종의 협동, 집단 지성 같은 걸 보여주려고 하거든요. 영화 안에서도 ‘우리도 집단 지성을 보여줍시다’ 같은 대사가 나오고요. 또 최현희라는 인물이 초반에 ‘내가 문명 속에서 살기 위해 너무 애쓰고 있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문명이 순식간에 야만으로 변하기 시작해요.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두 집단의 대비였어요. 한쪽은 점점 빠른 속도로 진화를 해나가는데, 다른 한쪽은 순식간에 퇴화를 해버리는 거죠. 그런데 결국 퇴화 끝에 남는 게 뭘까 생각했을 때 저는 결국 인간성이라고 생각했어요.”



ⓒ쇼박스


생명공학 교수 권세정 역을 맡은 전지현에 대해서는 작품 안의 카리스마와 달리 현장에서는 분위기를 이끄는 중심이었다고 전했다. 연 감독은 전지현이 만들어낸 편안한 현장 분위기가 스태프와 배우들의 호흡에도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전지현 배우는 너무 톱스타시잖아요. 그래서 사실 처음엔 긴장도 있었어요. 흔히 말하는 ‘톱스타 기질’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근데 진짜 깜짝 놀랐어요. 현장에서 완전히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시는 거예요. 집에서 간식도 막 싸오시고, 마늘 같은 것도 직접 까서 가져오시고.(웃음) 평소 잘 안 먹는 건강 간식들도 가져오시고요. 그러다 보니까 현장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너무 좋아졌어요. 배우들 분위기가 좋으면 스태프들이 일하기도 편하거든요. 그 에너지가 결국 영화 퀄리티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전지현은 앞으로도 연상호 감독의 작품에 출연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실제로 전지현을 염두에 둔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며, 작업이 주는 행복한 압박감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전지현 씨가 너무 좋다고 하시니까 요즘은 오히려 제가 스트레스예요.(웃음) 전지현 프로젝트를 구상할 때마다 ‘잘돼야 되는데’ 이런 부담이 생겨서요. 계속 작가랑도 ‘이렇게 써서 전지현 배우가 하겠냐’ 이런 말을 하면서 쓰고 있어요. 망하면 안되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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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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